오래 한 사람 이길 장사 없다

by 김대일

1. 2021년 추석 대목

명절 앞 대목이다. 메뚜기도 한 철이랬다고 제 아무리 역병이 기승을 부린다손 대목 특수를 어쩌지 못한다. 사람들은 명절이 가까워지면 유독 제 몸 다듬는 데 신경을 쓴다. 불과 일주일 전에 깎았는데 명절 앞이라고 머릴 또 깎는다. 명절이니 으레 그래야 한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커트점이 요맘때 바쁜 이유다. 그러니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아니나다를까 대목 앞둔 엊그제부터 제법 북새통을 이뤘다. 제법이 어느 정돈지 감이 안 올 테니 이렇게 설명하겠다. 머리 커트에 염색까지 원하는 손님이 있다 치자. 기술 좋은 원장이 5분 만에 커트를 끝내면 염색약 바르는 데 5분(숙련된 작업자가 염색 도포하는 데 3~5분 걸리는 바 내 기술도 수준급으로 올랐다), 염색 물드는 데 20분, 머리 감는 데 5분, 도합 35분 가량 걸린다. 그런 손님 30~40명이 물밀듯이 밀려든다면? 커트+염색 손님 수만큼 커트만 하려고 찾은 손님까지 점방을 들락거리면 정신머리는 진작에 달나라로 가고 없다.

초짜 시다로 기껏 했던 일은 손님을 의자에 앉혀 커트보를 두르고 분무기 뿌려 원장이 커트하기 편하게 사전 준비를 해 두거나 커트를 끝낸 원장이 뒤로 빠지면 뒷면도를 한 뒤 커트보를 거두는 허드렛일이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염색 바르는 기술을 배운 뒤로는 원장이 커트하면 곧바로 염색약 바르고 머리 감기는 구색이 갖춰졌다. 염색약 바르고 머리 감기고, 바르고 감기고, 또 바르고 "샴푸하시겠습니다!" 세면대로 불러내 머리 감기다 해 저무는 날이 허다했다. 그러나, 말이 쉽지 진짜 고역인 게 5분마다 끝나는 커트 손님을 받아 5분 안에 염색을 끝내야 다음 손님이 안 밀린다. 아무리 수준급 도포 기술을 가졌다손 5분마다 발라 제끼자니 손아귀가 찢어질 듯 아린다. 머리 감기는 건 어떻고. 매번 구부정하게 허리 숙여 손님 머리를 감기다 보면 끊어질 것만 같다. 제아무리 질기고 두꺼운 장갑을 껴도 독한 염색약에 금세 삭아 버려 양손은 축축하게 젖어 늘 퉁퉁 부어 있다. 주부 습진을 고민해야 하고 아침마다 허리 잡고 끙끙 앓은 지가 좀 됐다.

(이하 생략)



2. 2022년 추석 대목

오늘은 개업한 지 달수로는 여덟 번째 접어드는 첫날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기 장사하는 게 속 편하다고들 하는데 개업 이래 반 년 만에 내 거시기가 안 보이게 배가 볼록해진 게 편하긴 무지 편한가 보다. 그럴 만도 하지. 달마다 지불해야 할 월세, 공과금만 따박따박 잘 입금시키면 간섭할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요는 이 빌어먹을 세상은 자유를 구가하는 데 드는 비용을 결코 지불 유예하는 법이 없다는 데 있다.

한 단골이 평소에 50명씩 머리를 깎아 매달 4~5백 만원씩 벌어가는 줄 알았다며 뜬금없이 부러워하길래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 다리 건너면 커트점, 그 옆에는 면도까지 해 주는 이발소, 이발소 바로 맞은편에는 '커트 전문'이라는 활자를 대문짝만하게 박아 넣은 미장원 등등등. 먹고 먹히는 정글 속 약육강식의 세계도 아니고 커트 손님 한 사람 받자면 치열한 경쟁을 무한정 벌이는 이 바닥 엄혹한 현실을 알지 못하면 15년 업력을 앞세워 주변 업계를 완전히 평정해 순풍에 돛을 단 커트점(부친 점방을 일컫지만 가족끼리 다 해 처먹는다는 소리 듣기 싫어 아는 원장님이라고만 둘러댔다. 아무튼)도 이런저런 비용 다 떼고 월 수입 1백만 원 가져가기까지 4년 넘게 걸렸다는 엄살이 엄살로만 들리지 않는다는 내 말에 그제서야 손님은 부모 여읜 상갓집 문상객 표정을 지으며 안쓰러워했다. 자기는 앞으로도 매달 한 번씩 내 점방에서 머리도 깎고 염색도 할 테니 지금보다 요금을 올리면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지 않겠냐며 재차 오지랖을 떨길래 요금을 올리는 건 문제가 아니다, 올릴 만하다고 수긍을 한 손님들이 꾸준하게 찾는 게 관건이지. 그러자면 다른 점방에 견줘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기술적 우수성을 담보해야 하는데 아직 그만한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다고 덤덤하게 대답했지만 해 놓고는 의기소침해졌다. 그러자 "사장 솜씨가 엉망이면 내가 여기 올 이유가 없잖아요"라며 간살을 떨어서 간사스럽게도 살짝 우쭐했지만 손님하고 이렇게 웃고 떠드는 여유란 게 결국 내 돈주머니 경중에 따라 느끼는 기분이 달라진다는 현실이 서글퍼져서 또다시 우울해졌다.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어제는 9월 마감일이었다. 추석 연휴가 낀 대목 특수로 내심 기대가 컸었지만 실망이 더 컸다. 전달과 비교해 매출액과 손님 수는 약간 늘었으되 마냥 좋아할 수 없었다. 허수가 있어서다. 무엇인고 하면 첫째, 9월 초 무역상한다는 손님이 35,000원 하는 탈모 예방 샴푸를 한꺼번에 6개 구입하는 바람에 210,000원이라는 영업외 수입이 생겼다. 머리를 깎든 샴푸를 팔든 점방 안에서 수입이 생겼으면 그만이지 싶지만 머리 깎아 번 돈으로 장사 수완을 헤아리는 게 깎새 숙명이고 보면 그저 이변일 뿐이다. 운으로만 여기고 말아야 한다.

둘째, 커트 손님은 늘었지만 염색 손님이 줄었다. 5천 원 하는 커트 손님 10명이 는 반면 7천 원 하는 염색 손님 7명 빠지면 손님 늘었다고 마냥 좋아할 만한 계제가 아니다. 염색 손님이 줄 거라는 예상은 진작에 했다. 집에서 간편하게 혼자 샴푸만 해도 염색이 되는 약이 인기를 끄는 마당에 굳이 점방에서 시간, 돈 들여 염색할 까닭이 없다. 하여 염색 손님보다 커트 손님으로 점방이 북적거려야 길고 가늘게 장사 해먹을 수 있다. 두 가지 요인을 허수라고 감안해 결산을 다시 해보면 오히려 역성장이다.

실 성적표를 받아들고는 목하 고민에 빠졌다. 월세와 고정 공과금을 제한 이문이라는 게 한 사람 월급보다 못한 상태가 이어진다면 얼마나 버틸지 자신이 별로 없어서다. 서두른다고 될 장사였음 부자 아닌 사람이 없을 거라고 부친은 다독이지만 다달이 쥐좆만한 수입을 앞에 두고 허탈해하는 나를 위로하진 못한다. 무슨 수를 쓰긴 써야겠지만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요금을 올릴까도 고민했지만 그나마 모아둔 집토끼마저 다 도망갈 거라면서 부친은 극구 반대하셨다. 타 점방과 견줘 기술이 우월하지 않은 상태에서 요금 인상은 독이라는 냉정한 평가에 더 할 말이 없어졌다.


명절 대목이란 걸 본격적으로 겪기는 성미 까다로운 여자 원장 밑에서 일을 배우던 이태 전서부터다. 평달보다 못한 대목을 심심하게 맞이하는 와중에 그 당시 추석 대목 무렵은 어땠을지 문득 궁금해져서 뒤져 봤다. 그러다가 점방 열고 처음 맞았던 작년 추석 대목엔 또 어땠는지 궁금해 연달아 찾아 읽었다.

여자 원장은 우는 소리를 늘어놓았었다. 예전보다 매상이 못하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일하느라 죽을 맛이었는데. 명절 대목이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줄 알았다. 내 점방을 차리면 대목 준비를 단단히 해서 한몫 챙길 포부가 대단했다. 하지만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점방만 차리면 다 되는 줄 착각했던 게다. 우는 소리가 진절머리가 났지만 매상이 그 정도 되기까지 여자 원장은 꽤 만만찮은 시간과 공을 들였을 게다. 그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결론에만 눈독을 들이니 작년과 올해 무료한 대목을 견디지 못하는 게다. 부친이나 여자 원장처럼 오래 한 사람 앞에 이길 장사는 절대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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