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을 무척 좋아한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막내딸이다. 2년 전이니까 중학교 2학년 때 찍혔다. 같은 펜싱부 친구가 찍어줬다는데 사진술을 따로 배웠는지 여간내기가 아니다. 막 펜싱에 입문할 당시 막내딸을 사진에다 고스란히 담아서다. 부산 아시아드경기장 한가운데에 선 펜싱복을 입은 소녀가 창공을 향해 (보이진 않지만) 칼을 겨누는 장면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걸 스스로 발견해 실컷 즐기고 있다는 행복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녹록하지 않을 선수 생활일지언정 당당하게 맞서겠다는 결기를 호소력 짙게 연출해 앙리 카리티에 브레송이 밝힌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 어린 사진가가 신통할 수밖에.
막내딸은 지금 목포에 가 있다. 전국체전 펜싱 사브르 고등부 단체전에 출전하기 위해서이다. 오늘이 시합이다. 결과에 상관없이 아마도 오늘이 펜싱을 접기 전 마지막 공식적 시합이 되지 싶다. 몇 달 전부터 펜싱을 그만두겠다고 밝힌 막내딸은 다른 미래를 타진 중이다. 여자 사브르 펜싱부로 꽤 유명한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1년이 다 되도록 중심을 잡지 못한 막내딸. 집에서 먼 통학거리부터 조형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목적고등학교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따위 외부적인 요인을 들먹이자면 끝없다. 하지만 이 모든 건 핑계일 뿐 펜싱을 향한 열정이 사그라든 게 결정적이다.
사랑의 열병은 차갑게 식어 버렸고 그 빈자리를 지독한 염증과 회의가 채워 매일매일이 권태롭다면 이쯤에서 끝내는 게 신상에 이로운 처신으로 현명하겠다. 아비된 자로 막내딸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존중할 테지만 난생 처음으로 강권이 아닌 스스로 하고 싶은 걸 발견해 기꺼워 마지않던 놀이가 지겨운 노동으로 변질되는 걸 지켜보고 있자니 안타까우면서 허탈했다. 도전했다 좌절하고 다시 재도전하는 반복이 인생이고 그런 시련을 거치면서 점점 단단한 사람이 되어 간다는 조언은 썩 설득적이지 못해 아비는 입에 담지 않겠다. 예정된 실패가 유예될 뿐인 도전은 결코 값진 경험일 리 없고 그것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실패로 인해 남는 건 자양분이 아니라 좌절감, 열패감으로 점철된 자기비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돼먹지 않은 조언일랑 개나 줘 버리고 여간해선 꺼지지 않을 성싶던 열정이란 불길이 왜 그리도 허망하게 사그라들었는지 그 내밀한 까닭부터 캐내는 게 우선이다. 만에 하나 부모된 자들이 "오로지 너를 위해서" 열정이 더 활활 타오르게 하려는 구실로 밀어 넣은 불잉걸이 외려 불길을 잡는 차디찬 얼음이었다면 자녀 양육법을 전면적으로 수정함이 마땅하다.
피사체를 부각시킬 줄 아는 멋진 구도와 사진을 찍을 무렵 피사체가 품었을 심정을 함축한 메타포는 이 사진이 가진 미덕이다. 망각이라는 서랍에다 격납시키고선 그저 심심풀이 오징어 씹듯 옛 추억을 떠올리는 데만 소모하기에는 너무 아깝지만 사진의 용도가 여기까지일 공산이 크다. 훌륭한 사진일수록 마가 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