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갓김치에 맛을 들인 지는 7~8년 전부터다. 경험은 전무하고 생리에도 안 맞는 사우나찜질방 관리과장 자리에 연연하느라 눈칫밥을 먹던 때였다. 뭘 해도 어중간한 40대 초반 오갈 데 없는 처지를 불쌍히 여긴 용이가 겨우겨우 마련한 자리라 뼈를 묻겠다는 심정으로 용을 썼다. 하지만 종 부리듯 아랫사람한테 갑질을 일삼는 이른바 로얄 패밀리로 불리던 사주 일족의 단작스런 행상머리에 골머리를 썩였다. 불의를 보고 분기탱천하려는 젊은 기운을 부박한 먹고사니즘으로 죽이려 하니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게 일상이 돼 고스란히 스트레스로 남았다. 그 스트레스란 놈이 어찌나 고약했던지 살이 쪽쪽 빠져 총각 때보다 더 호리호리해지는 다이어트 효과를 누리긴 했다. 밥맛은 없고 사는 재미는 더 없이 고역살이 같은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와중에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그나마 마음 달래 주던 게 직원 식당을 맡은 이모가 담궈 내어 주던 갓김치였다.
알싸하면서 사각사각한 식감에 황홀해하는 관리과장을 흐뭇해하면서도 애처로워하던 이모가 "과장님, 갓김치 먹고 싶음 언제든 말씀만 하시쇼" 에둘러 건넨 응원은 수천 수백 마디 상투적 격려보다 더 가슴 찡했다. 톡 쏘는 갓김치처럼. 경북이 고향이라던 이모가 여수 돌산 갓김치로 상징되는 전라도 김치에까지 정통하게 된 손맛 내력을 파헤치는 건 당시 무척 흥미로운 관심사였으되 2년을 채 못 채우고 제 발로 회사를 나간 뒤로 요원해진 건 두고두고 아쉬운 패착이었다. 무난할 것만 같던 일상에 느닷없이 감정의 거센 파고가 들이닥쳐 내 마음 나도 모르게 허물어지기 직전일 때, 흔히들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그때, 정성껏 담궈 내놓은 갓김치로 잠시나마 숨 돌릴 수 있게 해준 이모의 마음이 다른 어떤 것보다 그립다.
부쩍 갓김치가 땡기는 걸 보니 스트레스란 놈이 다시 폭주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다행히 마누라가 주문한 갓김치가 어제 왔다. 이모 손맛을 기대하진 않지만 하얀 쌀밥에 얹어 부지런히 저작하다 보면 한시름 덜 여유가 생기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