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TC 동기, 선후배만 거의 50명인 단톡방에서 조용히 나온 지 며칠 됐다.
혈연 관계가 아니면서 친형제에 버금가는 우애를 과시할 듯이 말끝마다 행님, 동생한다. '우리가 남이가!' 단일 대오를 부르짖을라치면 행님, 동생 끝에 '개새끼'라는 멸칭까지 과격하게 덧붙인다. 결속 다지기 용으로는 그만인 일종의 암호 격인데다 이들 사이에서는 상투적으로 쓰는 표현이지만 남이 들으면 오해하기 십상이다. 아무튼 무음으로 해 두지 않으면 생활하는 데 지장이 생길 만큼 단톡방은 늘 시끄럽게 깨똑거린다.
하루도 안 빠지고 등산을 즐기는 이는 직접 찍은 아침 풍경 사진에다 감성적인 글줄을 덤으로 게시하는 게 일상이고, 고등학교 교장은 엄근진을 내던져 버리고 학교 행사 때마다 컨셉에 맞는 깜짝 분장을 하고서 찍은 사진을 올림으로써 꼰대 교장이 아님을 인정받으려고 한다. 꼭 이들이 아니라도 50줄 이짝저짝인 단톡방 중년남들은 일상이 무료해지는 건 죽기보다 싫어서 틈만 나면 혼자서든 끼리끼리든 필사적으로 즐거워지려 애쓴다. 놀고 즐기는 잡사면 그게 뭐든 시시콜콜하게 인증샷을 곁들인 활자를 일단 올리고 본다. 함께하지 못한 이들이 댓글로나마 부럽고 아쉬운 티를 내 기가 막힌 짝짜꿍을 연출한다. 그렇게 그들은 공감을 위한 말풍선을 남발하고 별일 아닌 것에 수십수백 개 말풍선이 나타났다 이내 묻혀 버린다 속절없게도. 소모적인 말 잔해에서 혹시 건질 만한 게 있는지 뒤져 보다가 어이없어 한 적이 허다했다. 천편일률적인 줄 뻔히 알면서 지겹지도 않은지 같은 짓을 되풀이하는 꼴이 하도 어리석어서 말이지.
나이 먹을수록 사람이 아쉽대서, 혹시 죽을 만큼 외롭다고 호소하면 그 중 달려올 누군가를 여망하는 이기적인 속셈에서 단톡방을 고수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단톡방을 뻔질나게 들어가 곱씹어봤자 저 안드로메다 외계 행성 언어인 양 알아먹지 못하는 말풍선에 더 이상 절망하기 싫어서 해방을 꾀하기에 이르렀다. 며칠 전 어느날 문득 탈퇴했다. 막상 나오려니 살짝 미안했지만 '조용히 나가기'란 기능 덕에 퇴장에 부담을 덜었다. 이 기능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2년 전 이맘때도 그 단톡방을 나가려다가 만 적이 있었다. 그때 남긴 소회는 이러했다.
나를 좋아하건 안면만 튼 채 무덤덤하게 지내건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고맙고 망극한 나이가 됐다. 알바하고 밤 늦게 퇴근하다 한산한 공원 벤치에 퍼질러 앉아서 나도 모르게 신세 한탄을 할 때, 이런 돌연한 감정 기복을 가족들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내 주변머리가 한탄스러울 그 때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하다못해 휴대폰으로 넋두리를 늘어놓을 만한 사람 하나 없다는 것만큼 처량하고 비참한 것도 없다. 그러니 주말마다 모여서 등산을 가든 골프를 치든 뒷풀이로 막걸리, 소주, 맥주, 양주를 동이째 섞어 마시든 그 모든 야단법석을 최신형 휴대폰 카메라 앵글에다 담은 인증샷을 주야로 올리든 나는 새치머리 염색약을 바르느라 손목이 나갈 지경이고 염색한 머리 감겨 주느라 허리가 빠지는 한이 있어도 단톡방을 절대 나가지 못하겠다. 설령 그렇게라도 해서 외롭지 않으려는 게 정답이 아닐지라도.
2년이 지나고서야 스스로를 기만하는 대신 외로움을 택하기로 했다. 성미는 가탈스러워져 마음 맞는 사람 찾기 어렵고 설령 만난다손 그것이 우정의 맹아로 진전되리라는 희망이 얼마나 순진한 발상인지 눈치챈 지 좀 됐다. 게다가 우정이라는 그물망을 촘촘하게 메우겠다고 남발하는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말들의 상찬 앞에서 내내 소화불량으로 고생할 게 뻔하다면 차라리 아니 만나는 게 신상에 이롭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땐 일종의 카타르시스 같은 전율까지 일었다. 듣기 좋으라는 빈말이 괴롭다고 느껴지는 순간 이미 소음騷音일 뿐이라서 소음消音이 마땅하다. 하여 멀찍이 떨어져서 차라리 외롭게 즐기기로 했고 그 선택에 아직까지 후회는 없다. 대신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 등장하는 배구공 윌슨같이 묵묵한 대화 상대를 찾아 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