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혁명하기

by 김대일

겁대가리없이 책이란 걸 내겠다고 했을 때 활자만으로는 지면이 밋밋하다면서 조건 없이 제 사진 수십 장을 건넨 친구는 아마추어이긴 해도 개인 전시회까지 연 엄연한 사진가다. 특히 그가 찍은 흑백 사진은 제법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구석이 있다. 책에 수록한 몇 장을 빼고 나머지는 외장 하드에 고이 모셔 두고 생각날 적마다 꺼내 보곤 하는데 지금 내 앞에 그 사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워 본 적이 없으니 즉물적 실감에 의한 품평이 전부이겠으나 나름 기준이라는 건 있다. 가공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인 이미지로 프레임에 격납된 피사체. 그것은 실체에 근접해 진실을 표방하려는 노력의 산물로써 정의내리는 사진이란 예술이다. 조작과 왜곡이 판을 치고 실체와 허상을 분간하지 못하는 지경일지라도 본연한 본질은 절대 부정되어서는 안 되니 내가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진의 미덕은 핍진성이다. 사진은 객관적이라는 꼬리를 달고 있다는 발터 벤야민의 표현처럼 말이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피사체에 열광하면서도 대상 이면에 숨겨진 뭔가에 주목하고 싶다. 암호를 해독하듯 사진이 함축한 진실을 탐구하려는 시도로써 사진 보는 내내 조바심이 나면서도 즐겁다. 보이는 것 너머를 보고자 하는 욕망, 어쩌면 그것은 벤야민의 표현을 빌면 사진으로 혁명하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 사진이 삶의 일부가 되었을 때 삶은 변하고 있었고, 벤야민은 삶이 더 변할 수 있다는 데 내기를 걸었다. 그가 사진에 ‘혁명적 사용 가치’가 있을 가능성, 사진이 사회의 해체와 재건에 일조할 가능성을 구상해 본 것은 그 때문이었다. (에스터 레슬리Esther Les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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