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일 Dec 29. 2023

훈련

   바깥양반 얌전하게 머리를 깎는 동안 점방 내부를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기웃거리던 아내분이 선반 위에 쌓아둔 책더미를 보더니만,

   "추리소설 매니아이신가 봐요."

   쓸데없이 아는 체를 하려 들었다.

   "그건 아니고 읽다 보니 재밌어서요."

   온라인 중고서점에서 주문한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 댓 권이 간택을 기다리는 중이긴 했다. 추리 세계로 입덕? 그건 아니고 추리소설, 특히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수상한 면면을 살피면서 사건 실마리를 찾아가는 자체적으로 벌이는 두뇌게임이 솔찮게 재미져서이다. 사람 심리를 탐구하는 데 심리학 서적보다 소설이 재미까지 더해 유익할 때가 있다.

   세련된 교양인으로 젠체하려 동원할 소품으로 소설책만 한 게 없다. 요것 봐라 정신이 팔리면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는 신선놀음이 따로 없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견실한 호모 부커스로 스스로를 앙양하는 행복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거기에 더해 현실세계에서는 맞닥뜨려 본 적 없지만 어딘가에서 활보하고 다닐 성싶은 기상천외한 캐릭터들을 원없이 만나는 즐거움을 소설을 읽는 이유로 슬쩍 끼워 넣겠다.

   깎새 팔자란 게 이발의에 가지런히 놓여진 뒤통수만 쳐다보는 게 다일 성싶지만 머리통 이고 오는 사람과 결국 부대껴야 하는지라, 깊이와 너비를 전혀 어림잡을 수 없는 그 '감정'이란 걸 타고난 사람이라는 존재와 부대껴야 할 직업적 운명이라서 밴덕맞을 이들로 인해 뒤틀리고 꼬일지 모를 유약한 배알에 맷집을 단디 키워 보려는 꿍꿍이로 소설을 읽는다면 이 무슨 뚱딴지같은 비약인가 싶겠지?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는 유행가 가사가 마음에 그렇게 착 감길 수가 없음에도 그런 너와 대면해야 하는 게 장사치 숙명이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점방으로 들이닥치는 군상 일거수일투족을 가늠하고 터진 입과 반신반의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잠재우려 온 신경을 집중하는 깎새의 인간심리학이란! 핍진함이란 날개를 달고서 허구의 세계를 뚫고 당장이라도 현실계로 뛰어들 것만 같은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이 즐비한 소설은 하여 깎새에게는 훌륭한 교보재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면 단 한 명도 빠뜨리지 않고 행간의 거동을 유심히 살핀다. 또 일일이 말을 걸어 그들 속을 떠보는 별쭝난 상상을 한다. 일종의 훈련인 셈이다. 보다 유연하고 자유롭게, 다른 한편으론 냉철하게 사람을 응시하려는 훈련.

작가의 이전글 뚱뚱이와 홀쭉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