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바라본 시장 단상(2023년 2월, 2부)
https://brunch.co.kr/@nascar7/308
(1부(?)에 이어진 글입니다.)
5. 그렇다면 생각보다 주식시장이 잘 버티는 이유는 무엇일까? (2023년 2월 기준)
앞선 글에서 결국 현재 상황은 인플레이션이 노동시장이 냉각되어야만 진정될 수 있고, 그렇기 위해서는 경제가 한번 휘청거려야만 하므로, 결국 경제가 좋으면서 인플레이션이 낮아질 수는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고 있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2월에 나타난 인플레이션 지표와 경제지표들이 이러한 상황을 말해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주식시장은 내 생각보다는 크게 흔들리지 않으며 여전히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이 주식시장을 그토록 강하게 지탱해주고 있을까?
여기에는 크게 몇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식을 팔았다.
2021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시장의 흔들림은 2022년 한 해 동안 지속되며 여러차례 반등 시도가 무산되었다.
이렇게 긴 하락장은 평범한 사람이 쉽게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2021년부터 한해동안 다수의 투자자들이 주식을 내다 팔았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것을 소수의 투자자들이 사들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한다.
주식 시장은 단기적으로는 경제의 앞날과 상관 없이 단기적으로 매도자가 없으면 가격이 상승하고, 매수자가 없으면 가격이 하락한다. 다른 자산보다 이른바 수급과 심리에 의한 가격 변화가 심한 것이다.
투자자의 숫자가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긴 하락 끝에) 긴호흡으로 바라보는 투자자들만 남을수록 매도자가 줄어든다.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이를 두고 부화뇌동파가 줄어들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소신파가 늘어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소신파가 늘어나면 가격이 상승하기 쉬운 구조가 형성된다.
이처럼 가격이 오르기 쉬운 구조에서 어쨌거나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지나 금리 인상 사이클이 곧 멈출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되고, 실제 경제 지표들이 긍정적으로 발표되며, 숏 스퀴즈 등이 겹치자 1월 한달간은 강한 상승 랠리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경제지표들은 곧 다시 인플레이션의 상승을 의미한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시장이 흔들거린 것이 2월 한달간의 조정이라 할 수 있다.
노파심으로 말하자면, 이때 주의할 것은 주식시장에 소신파가 많아졌다고 해서 이것이 어떤 미래를 알려주진 않는다는 점이다.
수급이나 기술적 분석은 주식 시장의 MRI 촬영과 같은 것이다. 단순히 MRI 촬영 결과라는 한가지를 통해서는 (어떤 뚜렷한 흔적이 있을 경우) 현재 위험의 조짐이 있다 정도는 짐작 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그 사람의 건강을 예견할 수는 없다. 심지어 종합 건강검진에서는 검사 항목이 100여개나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검진이 그 사람의 장기적 건강을 예견하진 못한다.
장기적으로 그 사람의 건강을 예견하기 위해서는 당장 현재의 상황을 사진으로 찍어내듯 검사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사람의 유전형질, 식습관, 음주/흡연, 체형, 직업 등의 시스템적 요소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수급이 좋다고 해서, 소신파가 많아졌다고 해서 그것이 당장 어떤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섣불리 예견해선 안되는 것이다.
모든 상장폐지되어 망한 회사들의 마지막에는 그 회사를 철썩같이 믿는 소신파만이 남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2) 소비자가, 금융 시장이 금리를 버텨내고 있다. (2023년 2월 기준)
앞선 글에서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사이클은 거의 예외 없이 갑작스러운 경기침체와 함께 멈추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금리의 상승은 일정 수준까지는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듯 보이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다수의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게 만들고, 이렇게 사람들의 행동이 바뀌기 시작하면 그것이 다시 다른 사람들의 전염성 반응을 이끌어내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한번 시작되면 일정한 추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경제지표가 다르게 나오기 시작했을 때, 중앙은행이 이러한 데이터를 확인하고 움직였을 때는 이미 경기 수축 사이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가 시작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상황의 반전을 의미하진 않는 경향도 있다고 할 수 있다.
2022년 한해 동안 꾸준히 주식시장을 주저앉힌 것은 실제 경기침체 발생 신호보다도 "강한 금리 상승이 경제를 결국 망가뜨릴 것"이라는 우려였다.
"인플레이션 지표가 높게 나온다 → 연준이 금리를 급하게 올린다 → 경제가 망가질 것이다" 라는 우려가 매월 인플레이션 지표 발표와 연준의 FOMC 회의 때마다 발생을 했고, 이러한 우려로 흔들리던 시장은 어닝(실적발표) 시즌이 되면 다시 생각보다 좋은 기업들의 실적에 반등을 하곤 했던 것이다.
지난해 반등을 시도했던 국면이 기업들의 분기 실적이 발표되는 3월-4월, 7월-8월, 10월-11월이었던 것이 모두 우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한해동안은 비실적 시즌에는 경기침체(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로 하락하고, 실적 시즌에는 경기침체 우려 해소로 반등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미국 경제가 지난해 한해 동안 3~4번이나 금리 인상으로 인한 경기침체 우려를 딛고 견뎌내자 이제는 반대로 이른바 "노 랜딩"라고 부르며 경기침체 없이 금리가 하락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내가 지난 1월 작성했던 바와 같이 ①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지나면서 (더 이상 금리를 올리지 못하면서) ② 경기침체가 오지 않거나 저점을 통과하는 국면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된 결과라 할 수 있다.
(3) 숨겨진 유동성 공급이 있었다.
이처럼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겨울 미국과 유럽에서는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는 정책들이 펼쳐지기도 했다. 겨울철 에너지 대란을 우려하여 보조금을 나눠주는 정책이 펼쳐졌던 것이다.
한국 같은 경우에는 부동산 투자 대기 자금이 부동산 시장을 떠나 대거 주식시장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 청약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이 5조원이 넘는다. 미국에서도 개인들의 예금금액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개인들의 돈이 어디로 갔을까? 일부 소비에도 쓰였겠지만, 아마 상당 부분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왔을 것이다.
이와 같은 숨겨진 유동성 공급이 지난 1월 주식시장 상승의 일부 동력으로 작용했고, 소비를 일으키면서 여전히 강한 인플레이션에도 일조를 한 것이다.
(3월에 내용 추가)
현재 미국에서 발생한 지역 은행 위기로 인해 중앙은행은 다시금 유동성을 완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금융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예금자 보호 대책이나 지급 보증이 무슨 유동성 완화 정책인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은행에서 “대출” 이라는 용어 대신 “여신” 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지급보증과 같은 행위도 사실상 대출과 같은 효과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아직도 미국의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인 완화적 환경 (인플레이션이 기준 금리보다 높는 상황)에서 이러한 조치는 다시금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기에 좋은 조건이라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해보인다.
(4) 모든 변화에는 시차가 있다.
거시 경제지표를 설명하는 책들을 읽다보면 마음이 들썩거리기 쉽다. 마치 그 경제지표들만 꿰뚫어보면 경제의 앞날을 쉽게 예측할 수 있고, 적용만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마음을 설레게 하는 책보다 서늘하게 만드는 책을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실전에 돌입해서 보면 경제지표를 해석하여 투자에 적용하는 것이 책에서 보던 것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러가지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은 지표들이 서로 다르게 움직이는 경우가 많고, 기다리던 방향의 지표가 나타나자마자 가격이 예상과는 전혀 반대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진짜 별자리를 보고 맞추는게 낫겠다 싶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에는 다양한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을 수 있으나 그것들이 발생하여 드러나는 것에는 다양한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제가 마치 기계처럼 움직이길 바라지만 현실 세계는 정밀한 기계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예를 들어, 온갖 책들에선 앞선 글에서 예를 든 바와 같이 금리가 오르면 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일정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오히려 오르는 금리가 경제가 긍정적인 신호라도 인식을 한다. 한마디로 금리 상승 > 경기 위축 이라고 뭉뚱그리기에는 그 사이 시간 간격이 엄청나게 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리가 갑자기 치솟았으면 경제에는 부정적이어야하는데, 경제가 아직 튼실하다면 “이번엔 다르다” 며 금리 인상이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기대하는게 좋을까? 아니면 반대로 결국에는 경제가 안좋아질 것이라 우려해야 될까?
이런 아리송한 상황에서 1월에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과 숏 스퀴즈, 장기 채권 금리 하락 등 여러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지면서 주식시장이 강한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경기침체가 발생하지 않으면서 (인플레이션이 정점에 다다랐으니) 금리가 내릴 것을 반영하여 주식 가격이 오르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을 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논리가 가격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가격의 움직임이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미국의 1월 고용지표가 강하게 나타나며, 1월 인플레이션 지표도 다시금 강세를 보이자 가격의 움직임이 만들어낸 논리에 헛점이 드러나면서 2월 한달간 조정이 발생한 것이다.
(5) 매력적인 내러티브가 존재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2022년을 지배한 내러티브는 (마치 1970년대 미국 상황과 같은) 강한 금리 상승으로 인한 경기 침체였다. 이는 실질적인 증거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무시무시한 내러티브였다.
그런데 1970년대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끝난 이후 1980년대 초부터 주식시장에서 펼쳐진 것은 40년간 이어진 금리 하락과 초장기 상승장세였다.
인플레이션이 서서히 낮아지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1970년대에 대한 두려움에서 빠져나와 1980년대의 환희에 빠진 시장을 상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1월부터 2월까지 이어진 랠리에서 실제 경기가 확장 국면에서 웃을 수 있는 기업들보다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기업들만이 강한 상승을 보였다는 점에서 현재의 상승 에너지가 장기화되기 어려워 보인다.
1월부터 2월 사이 증시 지수는 몇% 빠지지 않았지만 상승/하락 종목 비율은 아주 크게 떨어졌다. 이는 쉽게 말해 시장 에너지가 전체적으로 강한 것이 아니라 특정 업종이나 기업에만 집중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진짜 경기 확장 국면과는 다른 신호인 것이다.
6. 장기 채권 금리를 눈여겨 봐야 한다.
같은 의미에서 현재 고민해봐야 되는 부분은 왜 경기 확장 국면에서 주식 못지 않게 가격이 크게 움직이는 원자재와 장기 채권 금리가 오히려 주식과는 전혀 다른 신호(경기침체)를 보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앞선 글에서 설명했듯 현재의 원자재 시장은 세계 각국의 친환경 타령으로 인한 투자 부재와 코로나로 인한 생산 부족 등으로 가격이 오르기 쉬운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한 각종 부양책을 쏟아내면서 코로나 리오프닝까지 선언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원자재 시장 참여자들이 공급이 시원찮지만, 수요 또한 시원찮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장기적인 경제에 민감한 장기 국채 금리도 (1월에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경기가 확장 국면으로 접어들 조짐이 보이면 장기 국채 금리는 쉽게 상승하고, 수축 국면으로 접어들 조짐이 보이면 장기 국채 금리는 쉽게 하락한다.
현재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장단기 금리차 역전 현상의 배경에는 (단기 국채 시장에선) ”인플레이션 때문에 기준 금리가 계속 오를 것 같다.“ (장기 국채 시장에선) ”결국 경제가 고꾸라지며 경기 위축이 올 것이다“ 라는 생각이 공존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2023년 2월 기준)
주식 시장이 올바른 판단을 한 것이라면(경기가 확장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금리가 하락 할 수 있다면) 원자재와 장기 채권 금리는 다시 상승을 해야 하고, 주식 시장이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라면(경기가 수축 국면으로 접어든다면) 원자재와 장기 채권 금리는 지금과 같이 침체 신호를 내보내는 상황에서 주식 시장이 주저앉아야만 한다.
이때 만약, 주식 시장이 올바른 판단을 했던 것이라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경기가 확장 국면에 접어든다면 또는 수요가 확실하다면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기업들은 다시금 가격을 더 올리거나(인플레이션 압력)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원자재 가격 상승을 고스란히 흡수한다면 기업 이익 저하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장기 국채 금리가 상승할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4.2%까지 상승했던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작년 말에 3.5%까지 하락했다가 2월에 다시 4%를 돌파했던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장기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 주식과 채권 등에 사전에 정해진 비율로 보유 자산을 분산하여 투자하는 대형 금융 회사들이 보유한 채권 가격이 하락하므로 이들은 기계적으로 가격이 (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싸진 주식을 매도하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채권을 매수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장기 채권 금리가 상승하면 주식시장이 쉽게 흔들리는 것이다.
결국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경기침체가 발생하지않으면서 인플레이션이 아주 빠른 속도로 낮아지지 않는한, 장기적으로는 주식시장에 좋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이 아주 빠른 속도로 낮아지려면? 경기침체가 발생을 해야만 한다. 이는 곧 주식시장에도 부정적인 소식이다. 결국 주식 시장은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이지 못한 외통수에 빠진 것이다.
7. 지금은 소화를 시키는 과정이다.
반복해서 말했듯이 주식시장이 장기적으로 긍정적이기 위해서는 골디락스라고 부르는 다음의 두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①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낮아지면서 (더 이상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서)
② 높은 금리에도 소비자와 기업들이 소비와 투자를 멈추지 않고 버텨내야 한다. (경기침체가 오지 않거나 저점을 통과하는 국면 통과)
1월에도 지적했듯 결국 기업과 가계가 버티지 못하고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기대치보다 높게 나온다면 이는 1월에 발생한 피봇 기대감이 무너짐과 함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발생하는 연쇄 작용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현재 미국에서는 몇몇 학자나 전문가들이 급진적인 시장 붕괴를 경고하며, VIX(변동성) 지수가 2020년 3월과 같이 70대까지 상승하는 것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월 말 기준)
"주식시장에선 무엇이든 가능하다" 라는 격언이 말해주듯 그와 반대로 갑작스러운 급등도 물론 가능하다.
다만, 가격의 움직임은 그것이 큰 움직임일수록 불현듯 갑자기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방향에 대한 조짐으로부터 시작되어 어떤 아이디어와 생각, 감정 등이 퍼져나가며 사람들을 설득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주식 시장에선 허리가 길수록 크게 움직인다는 격언도 있는 것이다.)
2월 한달은 새로운 움직임을 준비하는 일종의 준비 과정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전히 강한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하는 쪽이(비관론자가) 먼저 소화될 경우 시장은 흔히 말하는 N자 코스로 2차 상승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고,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하지 않는 쪽이(긍정론자가) 먼저 소화되거나 아니면 결국 경기 침체 징후가 나타날 경우 시장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노동시장이 꺾이지 않는 한 여전히 강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확률이 높아 보이므로 3월에는 기준금리 인상 이슈로 크게 한번 흔들리고, 4월이 되면 다시 실적의 힘으로 반등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만약 4월 실적이 안좋을 것이라는 조짐이 나타나면 어닝 쇼크 시즌이 몇달 이어질 수 있으므로 올해 여름은 주식시장 입장에선 아주 힘겨운 여름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금융위기 조짐이 발생하며 3월의 기준금리 인상 이슈는 사실상 소멸하고 말았다.)
8. 홍콩도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돌고 돌아 또 중국타령을 하게 되었다.
중국 정부는 2021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옥죄기의 후유증과 코로나 봉쇄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2022년 한해 동안 정말 다양한 정책을 쏟아냈다.
그 덕분에 중국 본토의 상해 증시는 가장 빠르게 반등을 할 수 있었지만, 여기서 유심히 봐야 될 것은 바로 홍콩 증시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는 점이다.
이는 각종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경기 회복이 신통치 않다는 의미이거나 경기 회복으로 중국 본토에 국영기업에게만 수혜를 입는다거나 아니면 중국 정부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지 못해 비교적 자본 유출이 쉬운 홍콩을 통해 빠져나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홍콩 달러는 페그제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2022년 동안 계속 페그 상단에 도달하며 홍콩의 외환보유금액을 갉아먹었고, 1월 한달 동안 세계 증시가 반등을 하자 홍콩 달러의 가치도 잠시 높아졌으나 2월이 되자 다시 페그 상단을 유지하고 있다.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은 것이다.
지난 1월 중국 은행권의 대출이 역대 최대 규모 수준이었다고는 하지만 이는 거의 대부분 90% 이상 기업 대출이었고, 그것도 현재 휘청거리고 있는 좀비 기업들에게 흘러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관치 금융 특성상 공산당에서 대출 실적 할당을 세우자 이것이 건전하지 못한 기업들로만 흘러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중국 인민들은 반대로 역대급 저축률을 보이며 돈 씀씀이를 최대한 줄이고 있다. 이 또한 중국 정부에 대한 신뢰 상실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어 보인다.
다만, 어느 순간 저축이 대규모 소비로 이어진다면 아주 강한 상승 모멘텀이 만들어질 수도 있으나, 이 또한 ① 중국 외에 세계 경제가 꾸준히 건강한 모습을 보여야 하며, ② 시진핑 주석 체제에 대한 우려가 완화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얼마전 시진핑 주석이 다시 공동부유 타령을 꺼낸걸로 봐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③ 그러면서 중국 지방정부 부채 문제가 터지지 않아야 한다. 이 또한 모두 충족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9.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2023년 3월 16일 기준 작성)
8번까지만 쓰고 끝낼까 했으나, 항상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면 "그래도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인가?" 라는 질문이 나오곤 한다.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향후 몇달간 발생 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흐름과 대응 방안에 대해 설명해보겠다.
1번부터 8번까지 아주 장황하게 떠들었지만, 사실 요지는 간단하다.
지금 한번 쎄게 맞던가(경기 침체 발생), 아니면 질질 끌다가 더 쎄게 맞던가, 어쨌든 한번은 쥐어 터져야 상황이 바뀐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인 제임스 블라드가 2021년부터 이야기하던 것이다.)
지난주까지는 조만간 쎄게 맞을지, 질질 끌다가 더 쎄게 맞을지가 불분명했다.
그런데, 이번 SVB 사태와 크레디 스위스 은행 사태가 조만간 쎄게 한대 맞는 쪽으로 방향을 결정지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 당장 며칠간은 미국과 스위스 정부의 개입으로 은행의 시스템 리스크는 없을 것이라며 안심하는 반등과 + 인플레이션이 잦아드는 신호가 발생하고 있다며 안심하는 이야기와 + 금리 인상이 곧 멈출 것이라며 호들갑 떨며 반등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대 자본시장의 핵심은 "신용"이고, 이 "신용"을 위협받은 은행들은 한동안 대단히 보수적으로 대출태도가 바뀔 것이다. 그리고 예금을 붙잡아두기 위해 매력적인 상품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이는 소비와 투자를 억제시키는 한편,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여기에 2월 주식시장의 조정에 이어 3월 은행 위기설이 발생하면서 주식 시장에 관심이 없는 일반 대중들의 심리도 빠르게 얼어붙어 소비가 감소하는 효과를 만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앞선 1부 글에서 적었듯이 안그래도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금리 상승에 점차 한계에 몰리고 있었는데, 미래에 위협을 느끼면서 지갑을 닫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기업들은 노동력 부족 현상에 대한 우려로 인해 노동자들을 쉽게 해고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는 물건은 덜 팔리는데 해고도 쉽게 할 수 없으므로 기업들의 이익 저하로 나타날 것이다.
앞선 글에선 노동 시장이 강해 인플레이션이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라 했지만, 그 강한 노동 시장이 인플레이션 발생 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이익을 쥐어짤 수 있는 것이다.
FOMC(미국 기준금리 결정 회의)에서 기준 금리를 동결하느냐 25bp를 올리느냐 하는 것은 이미 시장의 관심 밖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은행권에서 무언가 특별한 위기 신호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3월 FOMC 전과 이후 며칠간은 시장은 금리 동결 가능성 등에 환호할 것이다.
FOMC가 끝나고 3월 말부터는 이제 시장을 움직이는 동력은 기업들의 실적이 될 것이다. 만약 내 예상이 맞아 2~3월 소비자들의 지갑이 닫히는 현상이 발생했다면 각 기업들의 실적과 전망은 좋지 않게 나올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시장의 관심은 급격히 인플레이션에서 경기 침체로 바뀔 것이다.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2차전지에 빠진 사이에 현실 세상(?)을 좀 더 잘 반영하는 반도체 업계는 이미 난리가 났다. 후공정(OSAT) 기업들은 가동률이 50%도 안되는 수준으로 떨어졌고, 애널리스트들은 반도체 기업들에 대해 경쟁적으로 실적 전망치와 목표주가를 내리고 있다. 이미 발빠른 트레이더들은 올해 말까지 연준이 금리를 무려 100bp(1%)나 낮출 것에 베팅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리가 낮아지니 좋은 것 아니냐고? 앞에서 설명했듯이 그것은 “경기침체가 오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을 때나 그러한 것이다.
주식은 궁극적으로 기업의 이익을 공유하기 위한 도구이다. 기업 실적들이 악화되기 시작하면 주식 시장의 관심사는 급속도로 기업 실적에 휩쓸려갈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주식시장의 진정한(?) 저점은 연준이 금리를 올릴 수 있냐 없냐 하는 소리가 나올 때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기업 실적들이 악화되는 것으로 드러나고, 기업들이 줄도산한다고 난리가 날 때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더 이상 나쁜 소식이 나오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나쁜 소식이 나올 때가 진정한 저점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보유한 모든 주식을 다 내던지고 도망쳐야 된다는 것인가? 이건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투자자의 투자 철학과 방법론에 달린 문제이다.
자신이 스탠리 드러켄밀러나 조지 소로스 같이 매크로 경제 상황을 이용하여 능수능란하게 매수, 매도를 할 수 있는 투자자라면 당연히 당장 팔아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버핏 류의 가치투자를 지향한다면 앞으로 경기침체가 올 것인지 아닌지 따위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저 가격이 자신이 생각한 가치보다 싸지면 매수를 할 기회이고, 비싸지면 매도를 할 기회인 것이다. 그래서 1월 글에 마지막에 썼듯이 워렌 버핏은 당당하게 "나는 연준이 금리를 올리던 말던 관심이 없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워렌 버핏은 항상 위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주식을 매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자신이 진정한 가치투자자라면 아이러니한 이런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지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철학이나 방법론을 따르는 투자자건 간에 가장 기본이 되는 핵심은 (마찬가지로 1월 글에 마지막에 썼던 바와 같이) 앙드레 코스톨라니가 말한 바와 같이 "투자는 2+2=5-1"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투자를 할 때 "2+2="까지 보이면 그 뒤는 볼 생각도 안한채 급히 다음 답이 "4"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며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시장은 언제나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답인 "5"를 등장시키면서 투자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투자자들이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행동을 바꾸면 그때 갑자기 마지막으로 "-1"이 등장하면서 결국 모두가 예상한 정답이었던 "4"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곤경에 빠지지 않으려면 항상 리스크 관리와 생존을 위한 준비를 해야 된다는 의미이다. 버핏 또한 귀에 못이 박히도록 "투자의 제1원칙은 돈을 잃지 않는 것이다." "레버리지를 사용하는 것은 가슴에 칼을 겨눈채 운전하는 것" "썰물이 찾아오면 누가 발가벗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대충 본다면서 엄청 길게도 썼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투자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항상, 워렌 버핏의 "나는 연준의장이 금리를 올릴지 내릴지 알려준다고 해도 관심이 없다." 라는 말과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투자란 결국 2+2=5-1 이다." 라는 말을 새기고 살아야 된다.
장황한 내 생각은 모두 헛소리이고, 마지막 두 사람의 말이 진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