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같던 한 계절이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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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잠을 설치게 하던 묵직한 고민들도, 집안을 들썩이게 했던 크고 작은 어려움들도 이제는 제법 잔잔하게 가라앉아 가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대소사’ 폭풍이 몰아친 계절이었네요. 마음이 온통 그곳에 묶여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끝날 것 같지 않던 터널을 조금 지나고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싶을 때,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브런치부터 열어보는 일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비워둔 고향 집 대문을 빼꼼 열어보듯, 작가님들의 글 창고를 조심스레 기웃거리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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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빨리 브런치로 돌아오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대소사들이 남아 있는 데다, 무엇보다 코앞으로 다가온 '이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그것도 제가 사는 이곳 세네갈에서의 이사는 한국의 풍경과는 사뭇 다릅니다. 요즘 수도 다카르에는 제법 그럴싸한 포장이사 서비스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오긴 합니다. 하지만 설령 있다 한들 그 높은 비용을 감당할 엄두도 나지 않거니와, 제 소중한 살림살이들을 그들의 거친 손길에 턱 하니 맡길 만큼의 신뢰가 아직은 생기질 않네요. 게다가 제가 사는 지방 도시에는 그런 서비스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이 모든 짐을 제 손으로 싸고 날라야 한다는 뜻이지요.
이삿짐과 씨름하며 또다시 정신없는 한 계절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진짜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후엔 한국에 잠시 다녀올 생각이고요.
삶이 참 재밌다 싶네요. 한바탕 마음의 짐을 비워내 한숨 돌릴만하다 싶으니, 이제는 물리적인 짐을 짊어져야 하는 숙제를 던져주는 거 같아서요. 짐과의 싸움은 도대체 언제 끝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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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의 압박이 있는 와중에도, 저의 <봉주르 무슈 시리즈>를 '밀리로드'라는 낯선 플랫폼에 '복사 + 붙여넣기 신공'으로 슬쩍 밀어 넣고 있습니다. 요즘 공모전을 한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고, 봉주르 무슈를 브런치 서랍 속에 가만히 묵혀두기엔 (어디까지나 제 기준이지만) 너무 아까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올려만 두고 가만히 지켜볼 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반응이 썰렁.. 하더군요. 하하.
브런치였다면 어디선가 귀한 작가님들이 나타나 라이킷도 꾹 눌러주시고, 다정한 댓글로 안부도 물어주셨을 텐데 말이죠. 낯선 플랫폼의 정적 속에 서 있어 보니, 제가 누렸던 이 공간의 북적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아래는 밀리로드 링크 입니다.
https://www.millie.co.kr/v4/millieRoad/35431/128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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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브런치가 더 그리웠습니다.
한동안 이곳을 떠나 지내며 제 내면을 크게 차지했던 감정을 꼽으라면 단연 '메마름'이라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여러 문제들과 척박한 환경이 주는 물리적인 건조함도 한몫했겠지만, 무엇보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감성 어린 글들을 읽지 못하니 아프리카의 건기처럼 제 내면이 바싹 타들어 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메마른 대지에도 반드시 우기가 찾아오듯, 이 내면의 메마름도 곧 지나가리라 믿습니다. 거친 계절을 몇 번 더 통과하고 나면, 저도 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요? 그때 두 팔 벌려 “나귀 작가님, 드디어 오셨어요!” 하며 반겨주실 다정한 이웃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계실지, 아니면 너무 오랜 공백 탓에 덩그러니 외롭게 시작해야 할지 짐짓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하하.
바라기는 가을빛이 조금씩 스며들 즈음엔, 바스락 낙엽을 밟으며 조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때까지 작가님들, 모두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이상, (궁금하지 않으실 수 있지만 써본) 나귀의 짧은 근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