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콩으로 만들어내는 두부 : 가문의 씨를 잇는 남성과 간수를 붓는 여성
02. 남성의 다리와 '절뚝거림'
03. 꽃과 불, 집안의 여성 : 꺾이고 낙화하여 열매를 맺는 땅/흙의 열기
04. 옛 속담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
05. 나이듦 : 우리나라의 역사와 시대/세대 차이
<장손>은 시절이 바뀌었단 것을 성진이 집에 오가는 장면과 자연의 풍광(風光)으로 강렬하게 시각화합니다. 여름과 가을, 겨울은 집안의 3세대를 계절에 빗댄 것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 듯 하네요. 비록 이 작품에서는 한 가족/집안의 1년이 채 안되는 시기를 다루고 있으나, 일제강점기 ~ 6.25전쟁 ~ 60/70년대 경제발전시기 ~ 80년대 민주화시기 ~ 90년대 공산주의 국가의 해체 및 자본주의화 ~ 00년대 한국기업의 해외진출 본격화 등 우리나라 역사를 은근슬쩍 녹여내고 있더군요.
참고로 '가족(家族)'이란? 한지붕(宀) 아래 돼지(豕)를 키우며, 같은 방향(方)으로 나아가 깃발(㫃)과 화살(矢)을 들고 함께 싸우는 같은 혈통의 군대를 의미합니다. 가족은 일본식 한자 표현이기도 한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다같이 한솥밥을 나눠먹는 입이라는 '식구(食口)'란 표현도 자주 씁니다. 이는 혼인/혈연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끼니를 같이 하는 일상의 공동체를 의미하지요. 그래서인지 직장에서도 자주 쓰인다는...
3세대(청년)는 집안의 분위기/질서에 어느 정도는 맞춰주지만 고리타분한 전통을 다소 갑갑해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픈, 즉 개개인의 자아실현의 욕구가 강한 종손과 누나+데릴사위가 나옵니다. 가을에는 해외(남쪽에 위치한+경제성장율 7%의+공산국가 베트남)에 살던 핑크 브릿지(가교/bridge 아니고 탈색/bleach) 헤어에 배꼽(탯줄의 흔적)이 드러난 크롭탑을 입고온 꽤 이질적인 사촌이 등장하는데요. 왠지 K-POP 팬이란 설정일 듯 합니다. 감독님은 요즘 MZ들의 패션 센스를 이렇게 바라보고 있군요. :D
2세대(중/장년)는 아마도 젊은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다리를 다친 이후 출세의 꿈이 꺾이고 가업을 잇느라 자신을 희생한 것처럼, 공동체 의식이 강한 아버지와 시집을 잘간?/못간? 두 고모, 그리고 이 집안에 종속된 며느리인 어머니가 나옵니다. 나름 두부제조업/가내수공업을 공업화해서 경제성장/발전을 이루어냈으나, 할아버지가 진짜 원하던 것은 그게 아니었더군요. 아들이 가업을 잇는 게 아니라 판검사가 되어 공정한 사회에 가문의 이름/명예를 당당하게 빛내주길 원했었나 봅니다. 그나저나 땅 속을 파는 인부는 거참! 해외에 나가 힘쓰는 중년의 사업가/자본가인 고모부에게 첫날밤을 떠올리라니 짓궂기는 이긍... (X무룩...)
마지막엔 아버지를 대신해 졸업식에 갔다가 병실에 누운 식물인간이 된 고모부의 등판과 소변팩을 보여주는데요. 아아... 기저귀를 찬 할아버지보다 더욱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1세대(노년)는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후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한 '동족 상잔의 비극'이라 불리우는 6.25를 겪으며, 마을 사람들이 한날 한시에 죽은 뒤 '빨갱이'에 대한 트라우마가 각인된 듯 합니다. 시신이 묘 안에 올바른 방향으로 반듯하게 있는 듯, 평생을 배우처럼 연기해오신 할아버지. 즉 생존과 종족번식의 본능이 꽤 강하게 남아있을 할아버지 할머니가 등장합니다. 검은 봉투에 비밀스럽게 싸인 두부인지(혹은 똥기저귀인지 金이 찍힌 통장인지 모를 뭔가)를 종손에게 넘겨주는 것을 깜빡한 할아버지에게 짜증을 휙 내며 앞서 집으로 되돌아가버린 할머니... 왠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집안의 결속이 깨진 것처럼 앞으로 이 집안에서는 장손이 가업을 잇고 제사를 드리는 전통/문화가 점점 사라지거나 바뀌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나저나 장손에게 기저귀를 들고오게 하고 두부는 건네주지 않으며, 통장을 뒤로 빼돌려 동복 남매 사이에 갈등을 불러일으킨 할아버지라니...
(요즘 하늘에서 자꾸 똥 봉투가 내려오던데... 에효...)
할머니 장례식(삼우제)이 끝나고 아마 49재 즈음일 듯한 어느 겨울날, 할아버지는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치매를 겪고있는 가운데, 누나는 4세대 늘봄을 낳았습니다. 어쩌면 외삼촌이 영화배우니까 조카는 연예계에 관심을 가지고 해외로 진출하는 K팝 아이돌을 꿈꾸게 될까요? 아니면 엄마+아빠를 보면서 A.I.로 자동화된 기업 오너를 꿈꾸게 될까요?
왠지 카메라 앞에 선 배우가 된 성진의 꿈은 예전에 사진관을 했다던 아버지 태근의 영향을 받았을 듯 한데요. 어쩌면 늘봄이도 어린시절에 가족들의 발자취, 즉 미화+재호를 비롯한 친인척들의 모습을 거울처럼 늘~ 바라보다가 지금으로선 감이 잘 잡히지 않는 새로운 진로를 꿈꾸게 될듯 합니다. :)
+ 그들의 이름(名) 뜻에 대한 상상(想像)
할아버지의 이름을 거꾸로 하면 '필승'이고, 할머니의 이름은 '마지막 딸'이길 바란 듯한 오!말녀입니다. 명패에 있는 한자는 오를 승(昇)자에 도울 필(弼)자니, '필히 승리하다'가 아닌 '오르는 걸 돕다'라는 뜻이겠군요. 다른 가족들의 한자는 비밀에 부쳐져 있는데요. 아버지 이름은 왠지 '큰+뿌리(泰根)'란 뜻일 듯한 태근입니다. 태근은 아무래도 증조부모님의 빈 묘지처럼 뿌리(根)가 상실된 승필의 회한이 담긴 이름이지 않을까 합니다. 결국 손자보다 앞서 산을 오르던 할아버지는 장손이 세상 밖에 나가 어딘가의 궤도 위에 올라타도록 돕고난 뒤, 또다시 산을 오르며 자신의 이름을 지어줬을 부모님을 쫓아 사라집니다.
며느리/엄마 수희는 경우의 수가 너무나 많아서 감이 잘 안오는데요. '받아들여서 기쁘다(受喜)'일지, '나무를 빛내다(樹熙)'일지... 아니면 안타까울 정도로 시어머니 맘에 쏙 든 '빼어난 계집(秀姬)'일지?!!
보증금을 날려 영화에 투자하는 아들에게 "김씨 집안은 종자가 문제!"라며 타박하는 엄마 수희. 참고로 처음에 수희가 들고온 두부를 맛본 시어머니 오말녀는 콩을 얼마나 불렸는지 물은 뒤, 마치 성에 안찬다는 듯 간이 너무 쎄다며 본인이 직접 다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두부를 만들 때 콩/종자를 남성에 비유하고 간수를 여성에 비유한다고 가정한다면, 간이 쎄다는 것은 수희가 마지막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할머니 생각엔 며느리가 분에 차고 넘친다는 뜻일지도...
고모들의 이름은 예전에 여성들에게 많이 붙여준 ~숙(조선식), ~자(일본식)로 지었더군요. 혜숙의 혜는 '은혜(惠)'일 듯 하고, 옥자의 옥은 '보석(玉)'일 듯 합니다. 옥자 고모 사위인 동우는 '다같은 친구(同友)', 손녀사위 재호는 '다시금 좋아지다(再好)'가 아닐런지... 이름에 많이 쓰이는 한자는 따로 있지만, 왠지 이 작품에는 저 한자들이 묘하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더라구요. 특히 '호(好)'자는 엄마(女)와 아이(子)가 서로 마주보는 형상으로 좋아하다/사랑하다란 뜻이 있는데요. '호감'처럼 남/녀가 서로 좋아한다는 뜻으로 자주 활용됩니다. 그나저나 병실에 누워있는 고모부 이름이 병구라는 걸 듣고는 다소 잔혹한 작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마... '아프도록 붙잡혀/구속되어 있다(病拘)'란 뜻으로 지은 건... ㅜㅜ
장손 이름 성진은 혹시 고모에게 진짜꽃을 주었듯 '정성스럽게 가꿔낸+진짜 알맹이(誠眞)'일까요? 아님 쑥쑥 자라서 기차/택시타고 훅 떠나버리듯 '성장하고 이루어+진격하는 자(成進)' 일까요? 이 영화에서는 꽃이 꽤 중요하게 등장하니 누나 이름 미화는 '아름다운 꽃(美花)' 이거나 두부처럼 '맛있는 평화(味和 혹은 米和)'가 아닐까 추정해봅니다. 그나저나 월남 쌀국수로 유명한 베트남에 사는 옥자 고모네 사촌 유진이는 마치 항렬자처럼 성진과 이름이 비슷하군요. 유진의 한자는 '있을/넉넉할' 유(有)일지, 아니면 '말미암을/자유로운' 유(由)일지 궁금해집니다. 왠지 탯줄의 흔적인 배꼽을 드러낸 복장으로 봐서는 후자일거란 생각이 드네요. 여하튼 유진/Eugene은 한국에서는 주로 여성 이름이지만, 영어로는 주로 남성 이름이랍니다. '고귀한(noble)', 혹은 '잘 태어난(well-born)'이란 뜻을 지녔지요. (feat. <미스터 션샤인>)
큰고모 혜숙이 지어준 조카 이름 늘~봄은 숨겨진 뜻(비밀)이 있는 한자어도 일본식도 아닌 순우리말이로군요. 본래 작명 의도인 명사인 봄(春, spring) 뿐 아니라, 동사인 봄(見, see) 또한 '늘'과 함께 붙어있으면 묘하게 아름답고 서글픈 느낌을 자아냅니다. 이루지 못할 꿈이니까요.
과연 이 집안에 화목한 봄이 다시 올런지... 아마 그리운 맘이 들면 서로 다시 얼굴 마주 봄여 울고웃기 위해 집에 찾아오겠지요.
+ 집 밖에서 겪었을 한국 역사에 대한 단상(斷想)
그나저나 아들내미야... 아무리 그래도 넌 네 아버지한테 그게 트라우마인 거 잘 알만한 넘이... ㅜㅜ
잠꼬대로 살려달라 읊조리고 장례식장에서 전경들로부터 빠져나온 무용담을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마도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고문을 당했을 듯한 태근. 시대가 흐르는 만큼 각자의 자리(position)가 있다며 3대가 싸운 제삿날 밤, 한이 맺인 채 술에 취해 아들방에 들렀다 자기 아버지방으로 가서 "법대도 가고 사진관도 접고 두부공장도 이어받았다"며 난동을 부립니다. 태근의 절뚝거리는 발걸음을 멈추기 위해 아내와 아들은 잠자리에서 이불을 들고나와 윗/아랫도리를 붙잡으며 덮어버리는데...
아들 성진이는 잠이들 때 배꼽/탯줄의 흔적을 보듬어줘야할 이불로 덮어서 숨을?! 하아......
뭐 그만큼 그게 가장 효과가 직방이긴 하겠다만, 마치 한두번 처리해본 게 아닌듯한 너무나도 익숙한 그 동작을 보면서 가슴이 좀 먹먹해지더군요. 가족이란 건 참 지긋지긋~하면서도 애잔하고 짠~한 사이인 것 같기도 합니다. 매일같이 일상을 나누는 관계니까요. 그래도 할머니 말마나따 세상 밖에서 전쟁을 치르고 들어온 집 안에서 숨은 돌릴 수 있어야...
맨처음 영화의 오프닝에서 뿌연 두부공장 연기를 뚫고 나온 첫대사가 "문 열어라 문! 다 죽는다!" 였던가요? 피유우우우~ 하고 태근의 코/숨 고르는 소리가 유난히 기억에 남습니다.
한편, 할아버지 승필은 자신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인생의 풍파를 함께 겪어낸 동반자 오말녀를 묻으면서 자기 부모님의 관이 비어있다는 것이 세상 밖에 까발려집니다. 그리곤 아침/저녁 시간을 헷갈릴 정도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치매 증상이 더욱 심해지는데요. 아마도 묘소를 찾아 산을 오르던 필승(必勝이 아닌 弼昇)은 살아남느라 정신없는 상황에서 부모님의 시신/흔적을 잃어버린 트라우마가 다시금 건드려진 듯 합니다. 공산주의/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분위기일 때, 아마도 자신이 '쪽바리'인지 '빨갱이'인지, 결론적으로 둘다 아니란 판단을 명확하게 받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격변의 시대를 연거푸 겪으셨겠지요.
그 때문인지 잠자리에서 아들로 착각한 손주에게 네가 판검사가 되길 원했다던 잠꼬대는 묘하게 의미심장합니다. 어쩌면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의 흔적을 검사하고 판단하는, 즉 머리방향/위치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자리(position)에 가있어야 아들이 살아남을 거라 생각한건 아닐런지...
왠지 할아버지의 트라우마일 듯한 시신의 머리방향/위치가 바뀌어있단 헛소리에 다들 확인하러 나간 척 옹기종기 마당 앞에서 숨을 고르며 시간을 떼우던 장면 또한 저릿하게 기억에 남네요.
다들 참 힘든 계절('50s, '80s)을 지나오신 분들이군요.
+ 진짜와 가짜 : 자녀의 거울인 부모의 초상(肖像)
성진이 가진 배우의 꿈은 부모님/조부모님들의 모습을 마치 거울처럼 바라보며 키우게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판검사나 두부공장보다는 사진/역사를 남기고 싶어하던 태근을 보며 자랐을 성진은 왠지 아버지의 카메라 앞에 서있는 게 익숙할 것 같은데요. 어느 겨울날 식탁 위에 놓인 카메라를 보며 아버지처럼 홀로 소주잔을 기울이는 성진입니다. 또한 성진이는 위치/방향/세상이 뒤집어진 트라우마를 가진 할아버지 앞에서 바로잡는 척, 밖에 나간 척, 온가족이 힘을 합쳐 할아버지를 위하는 맘으로 진심을 다해 가짜를 연기하는 스킬 또한 점점 늘어갔을 듯 합니다. (자꾸 이런 일이 반복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겠지만;;;)
한편, 진짜/가짜에 대한 은유는 할머니의 관을 둘러싼 조화와 병실 앞에서 성진이 선물한 생화처럼 곳곳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처럼 '믿음이 없는 자' 기준에서 '제사'라는 행위는 마치 과거에 죽은 조상이 현재 눈 앞에 와계신다고 상상하며(現前), 일종의 연기를 하듯 다같이 배우가 되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할머니가 제삿날 절을 하면서 뵌 적도 없는 시부모님들이 영천 돔배기(실제론 수입산)를 참 맛있어 하신다고 이야기하듯이요. 이처럼 마냥 가짜인 것만 같았던 예식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순간, 제사에 대한 기존의 상(象)이 재편됩니다. 할머니는 아직 가족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상(像)이 남아있기 때문이지요. (feat. <코코>)
제삿날 수입산 돔배기로 조상님께 거짓을 고하며 유쾌하게 예식을 준비하던 할머니와 아버지. 태근은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화기애애하게 자기가 죽을 뻔한 무용담을 이야기하며 손님들을 맞이합니다. 뒤늦게 다 모인 가족들 앞에서 친척 아주머니가 시연해준 '아이고~'하는 기묘한 가짜 곡소리에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린 사촌 유진. 그러나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갑자기 장례식장 사무실 앞에 나타난 아버지 태근은 제수용 조기를 손에 쥐고 자지러지게 난동을 부립니다. 아마도 어머니께 올린 게 왜 참조기가 아니냐면서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이겠지요. 아버지의 서럽게 우는 모습을 거울처럼 물끄러미 바라봤던 아들 성진은 밖에 나와 담배를 태우며 그 모습을 그대로 따라서 연기해봅니다. 아버지의 울음은 배우인 성진이 가장 닮고싶어하는 진짜 모습이었을테니까요.
우리는 종종 본질과 형식을 혼동하곤 하는데요. 가짜 같던게 언젠가 진짜가 되기도 하고, 진심이었던 본심/속마음이 언젠가 겉치레/허례허식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거울(실상|허상)이라 할 수 있는 부모의 모습(像)을 보면서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체화(體化)하여 진실을 판별해나가는 것이 아닐런지... "믿음이 없으면 다 나빠보인다"는 고모의 말처럼 항상 아버지 태근을 불안해하고 또 의심했던 성진이에겐 하늘?같은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feat.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한편, 가족이란? 콩과 간수가 서로 으깨지면서 결속된 물컹하면서도 단단한 두부처럼, 그리고 배를 덮어주는 이불과 머리를 식혀주는 선풍기처럼, 또한 배우들이 진심으로 연기하는 가짜 쇼처럼 상처를 덮어주고 받아내며 믿음으로 결속된 관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에 고모 혜숙은 성진이에게 그의 아버지 태근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켜주지만, 정작 자신은 자기 아버지(Father)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것 같습니다. 고모가 자기 집 안에 붙여둔 솔로몬의 <잠언> 14장 1절은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의 손으로 집을 허문다"는 이야기거든요.
아버지가 물려준 집을 불태워버린 고모 혜숙은 아들 같았던 성진이에게 진짜꽃이 아닌 가짜꽃(조화)을 달라고 합니다. 믿음이 사라진 이 관계는 더이상 진짜 아들도, 진짜 어머니도 아니라는 걸 서로 깨닫게 되는 순간이로군요. 아버지 태근이 어머니 수희를 만났을 때 자기 남동생 칭찬만 늘어놓으며 거짓을 고해 사기를 쳤다던 큰고모는 결국 자금(병원비+생활비) 흐름에 대한 올케의 참말/팩폭으로 그 빚을 돌려받는 시누이가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조카 미호가 낳은 조카손녀에게 인생이 늘~봄 같으란 뜻으로 이름을 붙여준 걸 보면 고모는 또 한번 사기를 친 듯 합니다. 아아... 리스크가 있는 도박/투자를 좋아하는 태근은 제 누나를 닮은 거였네요. :)
엔딩 즈음에 고모가 없는 듯 보였던 두부공장에서 칼로 반듯하게 경계가 썰어진 두부 한 판이 새삼 다르게 눈에 들어옵니다. 아마도 두부는 한 모, 한 모씩 세상 밖으로 팔려나갈 듯한...
마지막으로 다음 내용을 다룬 3편이 이어집니다.
06. 순환 : 가족의 연결고리와 나무의 계절 (feat.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07. 다시, 봄 : 조카 늘봄과 카네이션을 받은 고모 (feat. <키메라>)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