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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structionist Nov 12. 2019

착한 꼰대들과 함께하는 회사생활

그래도 결국 꼰대는 꼰대

새로운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지 벌써 6개월이 다 되어간다.

5월 20일에 입사했으니 그 난리를 치고 반년이나 지난셈


그간 개인적으로도 많은 일이 있었고, 회사에서도 적응하느라 꽤 고생해야했다.


이 회사는 식품을 유통을 하는 소규모 기업인데 나를 고용한 이유는 본격적으로 온라인에서 판매를 하기 위해서였다.

사장님 혼자서 온라인에서 판매를 해보고자 갖은 시도를 해보았으나 그 결과가 볼품없었고,

시즌이 맞아서 판매가 왕성하게 이뤄지려고만 하면 오프라인쪽 매장이 바쁘다는 이유로 온라인 매출을 중단시켰다.

사장님 말로는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거라고 하니 나는 그 말을 철썩같이 믿고 입사를 했고,

솔직히 이전에 있었던 회사가 너무 쓰레기라 남들이 '정상'범주에 속하는 행동에 감동을 하곤 했다.


예를 들어서

근로계약서를 바로 쓴다든가

급여명세서를 급여일에 바로 준다든가

(급여명세서 작성 시 들어가는 사대보험 내역을 근로복지공단 등등에 일일히 전화해서 직접 확인 후에 정확한 금액을 산출해서 급여의 근거를 정확히 내준다든가)

컴퓨터가 구리면 바로 내가 원하는 사양으로 컴퓨터를 맞춰준다든가

뭔가 잘못되면 일단 내탓을 하고 보는 분위기가 아니라든가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하는 일이 있으면 미리 말하고 눈치안보고 다녀오거나

태풍이 오면 일찍 퇴근시켜주거나 하는 등의


내 친구들이 들었을 때 '아 그거 당연한거 아냐?'라고 말했을법한게 당연해진게 참 좋았다.

사실 이게 정상이었는데 ㅋㅋㅋㅋ...


비정상인 사람을 하도 많이 만나봐서 그런지

정상인을 만나니 너무 반갑고 감격스럽고 그랬던 반년이었다.


하여튼 그 반년간은 그랬어도 이제는 슬슬 단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여성남성의 성적 역할을 구분짓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직장에서 해당 역할은 누군가 부여한 선입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테면 정수기 '엎어통'이라 불리는 물통을 정수기에 올리는 것을 여자는 못한다든가 무거운 것을 옮기는 게 남자몫이라거나 커피 타는게 여자몫이라는 등의 것을 싫어한다.

무거운 것을 드는 것은 여자도 충분히 할수 있고, 남자라도 아프거나 힘이 없으면 충분히 못할 수 있다.

이러한 성적 역할을 구분지어서 당연히 성적 역할이 보이도록 업무를 지시하거나,

반대로 성적 역할을 극복하는 업무를 할 경우 이에 대해 지나치게 칭찬하거나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

그 사람의 생각이 보인달까


이 회사는 유통회사라는 면 때문인지 남성이 대부분이고,

여성의 역할이 성적 역할에 부합하는 것으로 정해져있거나 웬만한 남성보다 더 세고 욕설을 잘 하며 목소리가 무조건 큰 여성이여야만 그만큼의 파워를 가질 수가 있다.

그 외의 젊은 여성에 대해서는 거리낌없이 성희롱을 하거나 남성에게 이렇게 대해야 한다는 등의 설교를 늘어놓는다.


내가 당한 성희롱은 얼굴을 붉힐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참 연세가 되보이는 분에게 내 친구 중에 미혼인 친구를 소개해달라는 등의 이야기를 곧잘 들었다.

그럴때마다 소개하면 제가 친구들에게 욕먹는다, 친구 다 없어진다 등의 이야기로 대꾸했지만

대부분의 기혼인 남성들은 몇 안되는 미혼 남성들의 편을 들면서 나뿐만이 아닌 다른 젊은 여성에게 같은 성희롱을 건넨다.

그들은 이것이 성희롱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신고'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한다.

장난처럼 신고할거면 녹음해서 누구를 신고하라고 하는 정도.

신고한다고 해도 제대로 진행도 되지 않을 고용센터의 성희롱 사건 진행에 누가 여자소개해달라는 것을 성희롱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일까?

당하는 사람의 입장은 생각지 않고 사건의 경중만을 따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네가 결혼하게 된다면~'

으로 시작하는 말들이었다.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지만 오랜 꼰대와의 대화를 통해 겪은바로 결혼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순간 잔소리가 1.3배에서 2배가량 많아지기 때문에 대충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둘러대는 것이 좋다.

이 회사에서 들은 결혼에 따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 아내는 남편을 위해 밥을 무조건 차려줘야한다.

2. 아내는 요리를 잘해야한다.

3. 아내는 남편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아야한다.

4. 아내를 사랑하지만 가끔 힘들 땐 그냥 둬야한다.

5. 아내가 심한 간섭을 해서는 안된다.

6. 남자가 능력이 있으면 상관없지만 그래도 맞벌이는 필수다.

7. 아이는 무조건 있어야한다. (애국심 이야기가 함께 겉절이로 늘 등장)

8. 그래도 어쨌든 한국남자가 최고다.


등등...^^

젊은 여자들이 왜 결혼에 환멸을 느끼는지 알 수 있는 대목들^^


처음에는 적응하기 바빠서 그냥 '네네' 하고 말았고, 영양가 없는 이야기는 깊게 듣지 않는 습관인지라 별 신경쓰지 않았지만 매일 비슷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질려버렸다.

특히 나에게 '요리잘하지?'등으로 시작하는 질문은 그때마다 '잘 못해서 요리 잘하는 남자 들이려고요'라고 답했지만 그들에게 '요리=여자'라는 공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회사생활을 하며 진짜 쓰레기에 나쁜새끼들과 있으며 속이 뒤집히기도 했지만,

이렇게 사람은 착한데 꼰대기질을 가져서 사람 속을 가끔 득득 긁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아직도 적응중이다.

20대 중반때처럼 대놓고 부장새끼 잘못했다고 말할 패기도 없고,

취업난에 새로운 직장을 찾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받는 현재,

이 착한 꼰대들과 어떻게 회사생활을 영위해 나갈지 관계의 정의가 필요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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