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기구를 샀더니 나의 삶은 완전해진 것 같다
내 친구들이 나에게 늘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너는 왜 그렇게 보는 눈이 없냐”였다.
나름대로 30년 넘게 별 우여곡절을 다 겪어봐서 별별 인간을 다 만나봤다고 생각하는데 내 친구들은 늘 그랬다.
스스로 생각하는 기준이 남들의 눈에 잘 미치지 못하나 싶었는데
이건 뭐 애인이라고 소개해주는 사람마다 쓴소리를 들으니 내가 그렇게 보는 눈이 없나, 내가 친구들에게 뭘 잘못했나 싶을 정도였다.
내 첫사랑은 풋풋했고 반항적이었다.
첫사랑 그게 뭐라고 처음 부모님께 반항하고 가출까지 감행했다.
가출하고 학교를 안 나가기 시작하며 맛본 반항의 맛은 생각보다 달콤해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가출한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첫사랑은 흐지부지 끝나있었고 이 사람 저 사람도 사귀어보다 내 인생 최악의 사랑을 만났다.
걔는 지금 생각해도 참 시발새끼야
그리고 난 그때 처음 나의 연애성향(?) 같은 걸 알게 된 것 같다.
먼저는 나는 좋아하면 무조건 퍼주고 다 해준다는 것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해도 혼자서 뭘 준비하고 생난리를 치고 있다는 것
기념일을 챙기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봄이면 봄대로 여름이면 여름이라 뭔갈 하고 싶어 하고 늘 붙어있고 싶다는 것
걔가 곤란한 일이 생기면 상황판단이 흐려지고 무조건 내 새끼는 잘못한 게 없다고 여기게 된다는 것
점점 이게 잘못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할 즈음엔 상대방은 이런 내 행동을 당연시한다는 것
퍼주면서 그 반응에 대해 하나하나 즐거워했다가 시간이 지나며 보답을 바라게 되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 점점 지친다는 것
이런 나를 보며 친구들은 호구라고 했지만 나는 한 사람에게 호구일 수 있는 게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호구가 절대 좋지 않다는 건 경험으로 깨닫게 됐다.
난 미련하게도 내가 베푼 호의에 대해 상대방이 늘 기억하고 고마워하리라 착각했다.
내 애정과 호의는 나에겐 어느 정도의 무게가 있었지만
그걸 받는 상대방은 처음엔 나와 같은 무게로 받아들였다가 점차 그 무게를 줄여갔다.
처음엔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좋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을 배려하는 게 당연시되고
어느 순간 배려하지 않으면 마음이 변한 것이 되어버렸다.
연애도 똑똑하고 여우같이 해야 오래간다는 게 그래서였던 것 같다.
사회생활 경험치는 늘었지만 연애만 시작하면 다시 또 호구 행동을 반복한다.
그리고 약 6년 전 즈음 3년 넘게 사귄 연애를 끝내고 한참을 술과 우울에 빠져 헤맸다. 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연애가 그때였다.
그리고 그때 좀 더 똑똑하게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차피 결혼 따위 하지 않기로 결심한 거, 앞으로 호구가 되지 않겠노라고.
그때 당시에 우울감에 빠져 통장이 메마를 때까지 배달음식을 시키고, 술을 마시고, 별 핑계를 대며 이 물건 저 물건을 샀었다.
그중에서는 가습기도 있고, 한 번도 쓰지 않은 처음 보는 소스도 있었고, 커뮤니티에서 영업당해서 산 반려기구도 있었다.
사실 나는 연애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가장 큰 이유는 그 어떠한 이유에서건 '내 편'인 사람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 이유는 놀랍게도 성행위였다.
나는 스스로가 굉장한 도파민에 절어 사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단적으로 내가 야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한참 성장하고, 또 그 기억을 밑천으로 살아가야 할 사춘기 시절, 성행위라는 아주 자극적이고도 놀라운 행위를 알아버렸고, 가출 청소년에게 그것은 돈 없이도, 특별한 무엇인가 없이도 접근 가능한 '놀이' 혹은 '오락'의 일종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가출 청소년들에게 성행위는 단 둘이 있을 때에는 둘만의 오락으로, 여럿이 있을 때에는 그 행위에 대한 소잿거리를 떠듦으로 서로의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하고, 때로는 더 강한 자극을 위한 촉진제가 되었다.
그때의 강렬했던 기억 덕분인지 나는 성적 호기심을 끊을 수 없는 성인으로 성장하였고, 6년 전 연애를 마무리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당시 연인에게 큰 애정이 없었지만, 성행위를 목적으로 만나는 날도 있을 만큼 나름대로 왕성한 욕구를 자랑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욕구는 반려기구를 들이게 되면서 종식이 되었는데, 여기서 '종식되었다'라는 의미는 반려기구가 영 별로라서 천년의 욕구가 식었다의 의미가 아닌, 반려기구를 대체할 인간을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라는 의미에 가깝다.
즉 나는 그간의 다양한 경험(?)으로 인해 해당 반려기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콘텐츠와 과거 만났던 인간들과의 소통 등을 통해 몹시 상세하게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나의 몸에 대하여는 나름대로 빠싹하였다.
이로 인해 가격이 저렴한 반려기구 사이트를 돌면서, 나의 행위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반려기구의 등장으로 나의 연애를 전전하던 삶은 종식되고, '나'만으로서의 삶은 육체적으로는 완전해졌다.
다만, 놀랍게도 호구인 면은 여전하여, 이제는 호구스러움을 연인이 아닌, 가족과 회사와 지인의 영역으로 넓히고 있으며, 가장 호구스럽게 변한 부분은 나 스스로에 대한 연민과 자기 합리화가 심해졌다.
과거에는 벌이가 시원찮은 것도 있었지만, 무언가를 구입할 때 적어도 열 번 이상은 고심하며 급여의 한계성과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비교 분석을 했었다. 와중에 최저가를 찾는 것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최근 5년 새 나는 '적당히, 찾으면 바로 나오는' 물품을 바로바로 구입하거나, 배송이 빠른 물건을 사거나, 약간의 여유가 생기거나 조금의 불편함이 생기면 바로 이유를 생각하여 그 이유에 걸맞은 어떤 물품을 구매하였다.
지금은 잘 사용하고 있으나, 그렇게 충동적으로 구매한 물품 등이 대부분 전자제품들이며, 노트북, 스마트 모니터, 태블릿, 기계식 키보드, 휴대폰, 헤드셋 등이 있다.
지갑이 다시 빈곤해진 요즘, 나는 다시 구매에 대해 합리적인 고민을 하게 되고, 그 고민의 끝에 최저가를 필사적으로 찾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것이 그저 급여의 수준으로 인한 것이냐에 대해 고민을 했을 때, 결론적으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돈을 쓰지 않는 만큼 '시간'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찾아보고, 부딪혀보고, 고심하는 이 순간순간이 나 스스로에게 무른 부분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몇 년 사이 절대 외롭다거나 인간관계가 아쉽다는 등의 생각을 가져본 기억이 없지만, 작년 퇴사를 하게 된 이후 늘어난 시간만큼 그 시간 동안 어떻게 나를 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깊어졌다.
그리고 그 고민을 이상한 방향으로 발산하기도 하고, 실수를 하기도 하면서, 지금은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조금 더 나은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쪽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물론 지금 쓰고 있는 브런치의 글 또한 이 방향에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