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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스카 Jul 02. 2022

#5 나는 이제 그만 열차에서 잠시 내려오기로 했다.

그렇게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앞서 진행된 큰 행사가 업무량의 정점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나에게는 정확히 3주 뒤의 팀장 리더십 과정과 내년도 전략회의 자료 준비, 갑지기 기획된 인사이트 특강들, 더불어 루틴 한 업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루틴 한 업무는 루틴 하지만 욕먹을 것들이 '대단히' 많은 업무들. 뭔가 지옥의 굴레 같았다. 이게 평소 같았으면 도전하고 싶기도 한 것들이지만 워낙 경직된 조직문화이다 보니, 일을 마쳐도 인정을 바라기 힘든 느낌이었다. 나와 같이 일하는 C사원도 매일이 지옥 같다고 한다. 심지어 약에 의지하지 않으면 잠을 못 잘 지경. 모두가 그런 일들을 품안에 몇 개 안고 일하고 있었다. 


 다시 행사가 마친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행사는 순조로이 마무리되었다. 다행히 블라인드에는 행사 관련 욕(?)이나 언급은 없었다. 사실 무슨 행사가 있었는데 언급이 없다는 건 아쉬운 이야기겠지만 나는 욕이 없다는 사실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었다. (하.. 어쩌다 내 삶이..) 사실 행사 일정이 너무 급하게 잡혔고, 말도 안되는 일정과 내용으로 준비하느라 우리 팀원들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쏟아냈다. 주 담당자인 A 프로는 요새 유행하는 메타버스로 행사의 큰 이슈를 남겼고, 그 이야기는 언론 보도로도 나갈 정도로 나름 성공적이었다. 옆자리의 B프로는 작년에 해당 행사를 담당했기에 본인의 주 담당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헌신적으로 해왔다. 다들 너무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우리는 행사를 마치자마자 3주 뒤에 있을 팀장 리더십 과정을 준비해야 했다. 기간은 3주가 남았고, 장소는 내가 예전에 근무하던 그룹 연수원. 딱 그 두 가지만 정해져 있었다. 대상도, 내용도, 예산도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팀장 리더십 과정, 이런 류의 일들은 내가 잘할 수 있고 해왔던 일이기도 했다. 나는 급하게 1박 2일의 일정표를 짰고 B프로와 열심히 토론을 했다. 이런 교육의 주제, 그리고 프로그램의 일관성, 그리고 히트 칠 만한 강사를 검토했다. 사실 교육과정이 3~4주 정도 되면 하루 망쳐도 만회할 기회가 있기에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프로그램을 시도 해볼 수 있겠지만 년 1회에 진행되는 과정은 두번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축구로 치면 정규리그나 예선전이 아니라 월드컵 본선 경기. 딱 한 번, 우리는 그 딱 한 번의 기회에 교육 대상자들에게는 '인사이트'를, 사장님과 나의 상사들에게는 '임팩트'를 주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은 너무 촉박했다. 내가 알고 있는 프로젝트의 업무 순서와 흐름을 소위 초단타로 진행해야 했다. 교육 장소도 홈그라운드가 아닌 회사 밖이라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는 모든 세팅이 낯설었다. 결국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 매일 밤늦게까지 B프로와 일을 해야 했다. 잠을 잘 때도 아침에 눈을 뜰 때도 운전을 할 때도 샤워를 할 때도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교육과정이 월요일에 있었으나 나는 토요일에는 종일 재택근무를, 일요일에는 새벽 3시까지 업무를 해야 했다. 그래도 부족한 것 같았다. 그렇게 교육과정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2일이 지나갔다. 


 2일간의 교육은 당연히 미흡한 것도 있고 잘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제일 힘들었던 건 팀장과의 커뮤니케이션. 팀장의 지시사항을 정확히 해석해서 실행하는 게 필요하나 아직 호흡을 맞춘 지 오래되지 않아서인지 해석이 쉽지 않았다. 그런 부분에 지적과 질책을 받아야 했고 항상 긴장되었다. 사실 이런 큰 행사과 교육과정의 핵심은 주 담당자, 주 진행자에게 적절한 권한이 부여되어서 현장에서 실시간 상황에 대한 빠른 의사결정과 대응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권한은 부족했고, 보고라는 단어에 얽매여 대응은 느렸다. 거기에 사람은 부족했고 지시사항은 넘쳐났다. 나뿐만 아니라 여기 조직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일하는 것 같았다. 회사를 바꾼 후 2달간의 생활에서 나는 그런 분위기를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러한 경험은 나에게 앞으로의 기대감도 사라지게 했다. 그렇게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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