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의학과 의사의 통증 체험기
# 새벽 3시, 통증이 가르쳐준 것
비가 창문을 두드리는 새벽 3시. 왼쪽 다리를 타고 오르는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어 이 글을 쓴다.
20년 전, 우울증 진단을 받았을 때부터 나의 환자 여정은 시작되었다. 그 후 두 번의 암 진단과 수술을 겪었고, 다행히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시모토 갑상선염, 고지혈증까지. 내 몸은 어느새 여러 진단명의 집합체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통증들과도 많이 만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어떤 통증도 나를 이렇게 잠 못 들게 하지는 않았다. 우울증의 깊은 밤들, 수술 후 회복기의 아픔들조차 견딜 만했는데, 지금 이 통증은 다르다.
## 밤이 깊어갈수록
환자들이 "다리가 떨어져나갈 것 같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아프시겠어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지금 깨닫는다. 나는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전혀 몰랐다.
정말로 다리가 내 몸에서 분리되어 떨어져나갈 것만 같다. 아니, 차라리 떨어져나가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절망적인 생각까지 든다.
새벽의 적막 속에서 이 통증은 더욱 선명해진다. 낮에는 다른 일들로 분산시킬 수 있었던 아픔이, 밤이 되니 온 신경이 거기에만 집중된다.
## 우울증이 가르쳐주지 못한 것
20년간 우울증과 함께 살면서 나는 고통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마음의 아픔, 존재 자체의 무거움, 세상에서 혼자라는 느낌... 그런 모든 것들을 견뎌왔으니까.
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우울증으로 단련된 나에게 또 다른 시련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수술도, 회복 과정도 그저 견뎌내야 할 또 하나의 과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신체적 통증 앞에서는 그동안의 경험이 무력하다. 마음의 아픔을 다스리는 법은 알았지만, 몸의 아픔은 다른 종류의 절망을 가져다준다.
## 혼자인 새벽의 무게
특히 이런 밤에는 외로움이 배가된다. 응급실에 가기에는 애매한 통증이고, 누구에게 전화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 그저 혼자서 이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우울증을 앓으며 수없이 맞이했던 불면의 밤들과는 또 다른 종류의 고독이다. 그때는 마음이 아팠다면, 지금은 몸이 아프다. 하지만 둘 다 똑같이 나를 세상에서 분리시킨다.
환자들이 "밤에 더 아파요"라고 말할 때, 나는 단순히 야간 통증의 의학적 특성으로만 이해했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어둠 속에서 혼자 견뎌내야 하는 시간의 무게가 있었구나.
## 완치와 통증 사이
암은 완치되었다. 정기검진마다 "깨끗하다"는 말을 들을 때의 안도감을 안다. 하지만 완치되었다고 해서 모든 고통이 끝나는 것은 아니구나.
오히려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났기에, 이런 일상의 통증들이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큰 적과 싸우느라 미처 느끼지 못했던 작은 아픔들이, 이제야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 새로운 공감의 시작
지금까지 나는 환자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우울증도, 암도 겪어봤으니까. 하지만 이 새벽의 통증이 가르쳐주는 것은, 고통에는 수많은 얼굴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진료실에서 "잠을 못 잘 정도로 아파요"라고 하는 환자를 만나면, 나는 이 밤을 기억할 것이다. 그들이 견뎌온 수많은 새벽들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많이 아프시겠어요"라는 말에는 이제 진짜 공감이 담길 것이고, "언제부터 그러셨어요?"라는 질문에는 그들이 혼자 버텨온 시간에 대한 존중이 있을 것이다.
## 비가 그치면
창 밖의 비가 언젠가는 그치겠지. 이 통증도 언젠가는 가라앉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밤 내가 얻은 깨달음은 평생 가져갈 것이다.
우울증이 나에게 마음의 아픔을 가르쳐주었다면, 암은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지금 이 통증은 환자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의사이기 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환자이기 전에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밤을 견뎌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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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여전히 다리는 아프지만 빗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이 고요한 새벽 속에서 나는 더 나은 의사가,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