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by 문미희
동네책방 전성시대라 불리울만큼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는 개성있고 독특한 책방이 많아졌다.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공연도 즐길 수 있어 동네책방 소식에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다. 여느때처럼 네이버 우리동네 섹션에 ‘동네책방소개’ 코너를 보다가 발견한 ‘유채꽃머리-책만들기 회원 모집합니다’를 보고 제주시내라서 고민1도 없이 신청했다.그리고나서 퍼뜩 든 생각
“아니, 명색이 대학가인데 그동안 서점이 없었단말야?!”
오늘 4주차 책이 만들어지고 다들 돌아간 시간,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봤다. 항상 같이 참여하시고 다과도 준비해주시는데 딱히 고마움을 표현하지도 못했고 달수로는 석달째인데 이제야 겨우 제대로 인사를 드리다니;;
책방 이름을 보고 미용실이나 꽃집으로 잘못 아시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유채꽃머리’는 ‘유채꽃이 필 무렵’이라는 뜻으로 ‘봄’을 의미합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맞이하는 따스한 봄을 좋아해서 짓게 되었어요. 책방을 찾는 독자분의 마음이 항상 봄과 같았으면 하는 마음도 담겨있어요.
작년 11월 1일에 오픈했어요. 이제 7개월째 접어드네요. 아직은 새내기입니다. 책방하면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어요.
고향은 제주인데 졸업 후 입사하고서는 대부분 육지에서 직장생활을 했어요. 금융쪽에서 20년 넘게 일했죠. 앞만 보고 달리던 어느 날 사기를 크게 당했고, 모든 것을 잃게 되었어요. 젊음을 다 바쳐 쌓아 올린 경력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죠. 심한 우울증에 빠졌어요. 이겨보려고 막노동에, 장례식장 일에 뭐든 해보려고 했지만 잘 안됐어요. 몸과 마음이 물에 젖은 휴지처럼 밑바닥에 달라붙어 사라질 것 같았어요. 그때 친구가 권해준 책 한 권이 큰 힘이 됐어요. 책을 열자마자 쓰여진 문장을 보고 눈물을 쏟았죠. 이후 책에 빠져들면서 자연스럽게 책방을 하고 싶었어요. 책방을 운영하면서 책도 보고, 글도 쓰면서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어요.
정희재 작가의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에요. 책 앞부분에...
‘당신 참 애썼다,
사느라, 살아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이 부분에 그만······
처음에는 다른 책방처럼 한적한 외각지역에 책방을 열까 하다가 시내에도 독자분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작은 책방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내에 차리게 됐어요. 그런데 시내권에, 도로변이라 임대료를 무시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아르바이트로 병원 청소일을 하고 있어요. 깨끗하게 청소해두면 직원분들이 출근하고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즐겁게 하고 있어요. 몸은 건강해서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죠. 전에 장례식장에서 일하면서 많은 죽음을 직접 보고 나서는 많은 것을 내려놓았고 많은 것을 감사하게 되었어요.
저도 처음에는 대학교가 있어 학생 손님이 많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영상매체에 익숙한 세대여서 그런지 생각만큼 책을 많이 찾지는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동네 주민분들이나 직장인들이 더 많이 찾아주시고 있어요.
SNS를 통한 홍보가 부족한 편이에요. 홍보를 위해 SNS에 뭐든 찍어서 올려야 하는 부담을 가지기 싫어 그냥 내킬 때만 올리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그리고 제주 곳곳에 있는 작은 책방들의 감성적 분위기를 못 따라가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에요. 전 감성적이지 못하니 그저 찾기 쉽고, 깨끗하고, 편안해서 책을 보거나 이야기 나누기 좋은 곳으로 운영하고 싶어요.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된 상태인데 강연을 이어가고 싶어요. 작가나 전문 강사를 초청하는 것은 아니고(인맥도 능력도 없고요) 부족하지만 제가 두 회에 걸쳐 강연을 진행했어요. 첫 번째 회에는 ‘책방 주인장의 인생책’에 대하여, 두 번째 회에는 ‘생활속 심리학이야기’에 대하여 강연을 진행했는데 반응이 괜찮아 앞으로 지속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책방을 찾으시는 분 중에서도 강연을 진행하실 분을 찾고 있어요. 여행과 사진, 부동산 투자, 미술 등 다양한 주제로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 직접 강연을 하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생각입니다.
현재 책만들기 모임,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캘리그라피, 드로잉 등 다양한 소규모 문화 활동을 발굴하여 진행해볼 생각이에요. 책만들기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통해서 모아진 좋은 글은 책으로 만들어 판매용 책으로 출판할 계획도 가지고도 있구요.
처음 사장님의 인상은 예전의 조훈현 고수를 떠올리게 했다. 알듯말듯한 무표정도 아니고 활짝 웃음도 아닌데 조용하시지만 뭔가 이미 상황정리와 마무리까지 끝. 언제 이렇게 하셨지? 감탄하게 되면서도 어딘가 허술한 구석도 있으셔서 어? 반전이다 싶은. 별도의 비용을 받지 않으시고 독서모임도 이끌어주시고 책만들기 모임을 위해 장비가 하나씩 늘어나고 있다며 사람좋은 웃음으로 분위기를 환하게 해주시는.
글을 쓰고 같이 읽으면서 울고 웃다보면 흘려보내지 못하고 고여있던 아픔과 상처들이 조금이나마 사그라진다.
유채꽃머리 책방에서 잠시 가만히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주소:제주시 한라대학로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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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월~토 오전11시~오후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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