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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솔 Mar 21. 2022

교육을 바꾸겠다고 꿈꾸는 그에 대해

#교육의원후보 #김외솔

7년동안 제주도에 돌아오라고 설득해주었던 이가 있습니다.

여기서 네가 할 일이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던 이가 있습니다.

같이 일하자고 손 내밀어주어서 고마웠습니다. 저의 친오빠입니다.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오빠는 제주도에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는 교육을 바꾸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그걸 오빠가 어떻게 바꿔?”

더 솔직한 표현은 “그걸 오빠가 무슨 수로 바꿔? 불가능하지!” 이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시작하는 거야.”

그때는 그말이 참 알쏭달쏭 했습니다.


7년 동안 그는 저에게 제주도에 돌아오라고 끈덕지게 이야기했고, 저는 끈덕지게 거절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교육을 바꾸는 일은 너무나 엄청나서 나 같은 사람은 엄두도 낼 수 없어. 오빠가 하려는 일은 너무 거대해서, 나같이 소심하고 간이 작은 사람하고는 안 맞는 것 같아.” 그러나 어느 한 해를 마무리하며, 저는 서울에서는 도저히 제가 희망하는 삶의 방식을 구현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낙담해서 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도저히 돌파구가 안 보인다. 나는 여기까지인가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쏠, 2주만 내려와서 지내봐.”

저는 설연휴를 끼고 휴가를 내서 2주간 제주도에서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놀랐습니다. “제주도에 이런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네?” 제가 기억하는 제주도와 달랐습니다. 그는 파격적으로 제안했습니다. “1년간 살 집과 월급을 줄게, 같이 일해보자.”


2016년 2월엔가 저는 내려왔습니다. 그의 사업체에서 일했습니다. 한번은 그에게 물었습니다. “교육을 바꾸겠다고 하면서 학교는 왜 그만둔거야?” 그는 “교육을 바꾸려고 그만두었어. 교육을 바꾸려면, 학교 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같이 바뀌어야 해.”


2년 간 같이 일을 하다가, “오빠가 내 밑에서 일하는 건 좋아도, 내가 오빠 밑에서 일하는 건 못하겠어!”를 외치며, 2018년 1월에 창업을 했습니다. 창업을 한 후 힘들 때면, 그에게 전화했습니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 그 때 오빠가 왜 그랬는지 이해할 것 같아.” 그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나씩 성장하는 거야. 쑥과 마늘을 먹어야 성장할 수 있는 거야. 잘 하고 있어.”


예전에 그가 “교육을 바꾸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저는 그것이 막연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많은 이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향해 회사를 이끌어가고 있네요. 교육을 바꾸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은 다르게 생각해요. 어려운 일이라고 해서 그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어려운 일이라고 해서 시도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 아닙니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바라는 지향점이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겠지요. 지금 저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고 해도, 어떤 꿈을 꾸는 이에게, 그것은 어려운 일이니, 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물어봅니다. 당신이 바라보는 그곳은 어떤 곳이냐고 설명해달라고 합니다. 실현이 어렵기 때문에 시도조차 고려하지 않는 분들에게 이제 저는 이야기합니다. 이상적인 것에 대한 것을 먼저 충분히 이야기한 다음에, 비로소 그것이 실현가능한지 이야기하자고요. 이상적인 목표를 이야기할 때는 실현가능성을 고려하지 말자고요.


정치에 대해 잘 몰랐던 저는 언젠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정무적 감각”이라는 말들을 쓰는데 그게 무슨 의미야? 사전에도 잘 안 나오고, 의미를 잘 모르겠어.” 그는 여러가지 예를 들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조금 알랑말랑합니다. 그는 제가 무엇을 묻는지 간에 자신의 이해를 바탕으로 제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주는 사람입니다. 저는 언젠가 제 친구에게 그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우리 오빠는 어떤 사람이냐면, 그 무엇을 물어보든지 간에, 절대 물어보는 사람을 나무라지 않고,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이야.” 그가 하는 말중에 빈도수를 집계하면 가장 빈번하게 이야기한 표현은 아마도 이것일 겁니다. “그 말의 정의가 뭐야?” 그는 어떤 일을 하던지, 그 말의 정의를 스스로 내리려고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제가 창업을 하고, 제주도내 연결을 하겠다고 하니 그는 저에게 조언했습니다. “연결이 무엇인지 너만의 정의를 내려보기를 바래.”


그는 정치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많이 이야기 했었습니다. 저는 물었어요. “오빠는 교육을 바꾸고 싶은데 왜 정치에 관심이 많아?” “교육을 바꾸려면, 정치, 경제, 문화, 기술를 어느 정도는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 중에서도 사회 변화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게 정치라고 생각해.”


2022년 3월, 제주도에 돌아온 지 7년차, 창업 5년차, 나이는 43세에 접어듭니다. 내려오면 할 일이 있을거야 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지금 은 제가 할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 타인이 할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어있네요. 그리고 이상적인 목표를 만들어내는 것의 시작에는 한 사람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요.


그가 지향하는 학교, 교육, 교육가족의 모습을 언젠가는 눈으로 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느낌적 느낌만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은지 낮은지를 가늠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해서, 그것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교육의원 후보, 김외솔 화이팅!

https://youtu.be/cgO1u3MhhP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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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교육의원 #서부지역 #김외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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