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민의 목소리를 ‘공감 데이터’로 바꾸는 장치가 필요하다
하귀에 사는 한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 동네에는 학교 말고는 아이들이 놀 곳이 없어요.
놀이터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단순한 바람처럼 들리지만, 그 말에는 지역의 현실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런 제안은 행정의 책상 위에서 종종 멈춘다
“근거가 부족하다”, “수요가 명확하지 않다”는 말과 함께 사라진다. 주민은 데이터를 만들 권한이 없고, 행정은 데이터가 없다는 이유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많은 생활 속 제안들이 사라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민 제안의 수요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제도다. 개인의 문제의식이 공공적 논의로 확장될 수 있도록, 리빙랩 코디네이터나 사회조사 전문가 같은 중간지원 인력이 주민과 함께 설문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모아주는 장치다. 이를 통해 “이 동네 주민의 68%가 놀이공간의 부족을 느낀다”는 공감 데이터가 만들어진다면, 제안은 더 이상 단순한 민원이 아니다. 행정은 그 데이터를 근거로 정책을 논의할 수 있고, 주민은 자신의 체감이 사회적 근거로 전환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은 ‘주민 리서치 지원 제도’나 ‘생활문제 검증 리빙랩’처럼 운영될 수 있다. 주민이 제안을 등록하면 행정이나 중간지원기관이 주제를 승인하고, 전문가와 주민이 함께 조사 설계를 진행한다. 조사 결과는 지역에 공개되고, 주민참여예산이나 도시디자인, 아동친화정책 등과 연계되어 실제 정책의 근거로 활용된다.
이때 전문가의 역할은 ‘대신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주민의 언어를 정책의 언어로 옮겨주는 정책 전환 통역자다. 그들의 도움을 통해 주민은 스스로 조사하고, 문제를 근거로 표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간다. 즉, 참여는 단순히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문제를 탐구하고 해결 방식을 함께 설계하는 과정이 된다.
하귀의 놀이터 이야기는 결국 한 개인의 제안을 넘어 지역이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하는 실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좋은 제안이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그 제안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공감과 데이터의 제도적 토대가 필요하다.
정책은 데이터로 완성되지만, 데이터의 시작은 언제나 누군가의 체감에서 출발한다. 그 체감을 존중하는 사회, 그것이 진짜 참여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