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도시 어머니들의 목소리로 본 정착의 조건
제주 영어교육도시는 아이의 교육을 위해 설계된 공간이다. 국제학교와 교육 인프라, 비교적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이유로 많은 가정이 이곳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그 선택의 이면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질문이 있다. 아이를 위해 이동한 동안, 어른의 삶은 어디에 놓여 있는가.
최근 영어교육도시에 거주하는 어머니들과의 대화에서 등장한 이야기는 민원이나 불평이라기보다, 정지된 시간에 대한 인식에 가까웠다. “여기 오면, 나가게 될 때쯤 나이 앞자리가 바뀌어 있어요.” 이 말은 개인의 아쉬움이 아니라, 영어교육도시라는 개발 구조가 무엇을 중심에 두고 무엇을 비워두었는지를 드러낸다.
영어교육도시는 학생의 하루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등·하교 시간, 방과 후 활동, 학습 동선은 비교적 정교하다. 반면 보호자인 어머니의 삶은 이 구조 밖에 있다. 많은 어머니들이 배우고 싶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으며, 지역을 이해하고 기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실제로 문화 커뮤니티 센터에서 운영되는 도민대학 프로그램은 반응이 좋고 대기자가 빠르게 찬다. 지역 문화, 실용 기술, 생활 재료를 활용한 수업에 대한 수요는 분명하다. 수요를 충분히 충족할 만큼의 공급이 필요하다:
어머니들의 욕구는 단순하다. 일을 하고 싶거나, 봉사하고 싶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몸을 쓰는 일도 해보고 싶다. 그러나 현실에서 돌아오는 답은 비슷하다. “이 동네 사람이 아니라서”, “경험이 없어서”,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서.” 이들은 도움이 필요한 집단이라기보다, 아직 지역과 연결되지 않은 유휴 역량에 가깝다. 다양한 경력과 경험을 갖고 있음에도 지역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공식적인 통로는 거의 없다.
등교 시간대 영어교육도시의 도로는 빠르게 혼잡해진다. 차량은 몰리고 보행자는 밀려난다. 보행로가 없는 구간을 외국인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걷고, 중앙 화단에 심어진 나무는 시야를 가려 사고 위험을 높인다. 가로등이 꺼지면 거리는 순식간에 어두워진다. 사고 이후 나무 몇 그루를 제거했지만, 구조적인 변화는 크지 않았다. 이곳에서 이동은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을 감수해야 하는 일상이다.
영어교육도시에는 학교가 있다. 그러나 학교 밖의 시간은 대부분 사교육으로 채워진다. 공부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은 부족하고, 도서관과 스터디카페도 충분하지 않다. 실내 체육시설 역시 마땅치 않다. 청소년 상담 프로그램은 존재하지만 성적과 연결된 상담 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오히려 침묵을 선택한다. “상담받으면 찍힌다고 생각해요.” 교육을 말하는 도시이지만, 성장기의 마음을 다룰 공간은 충분하지 않다.
어머니들이 반복해서 묻는 질문은 단순하다. 왜 읍면의 버스는 줄어드는가, 왜 이런 결정이 내려졌는가, 우리는 어디에 의견을 내야 하는가. 민원 창구는 존재하지만 처리 범위는 제한적이고 과정은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도 서귀포 시민 아닌가요?”라는 질문은 권리 주장이라기보다 소속에 대한 확인에 가깝다. 문제는 결과보다 과정에 접근할 수 없다는 감각이다.
어머니들이 바라는 것은 크지 않다. 아이만이 아니라 어른도 성장할 수 있는 시간, 위험하지 않게 이동할 수 있는 일상,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통로, 그리고 이곳에 남을 수 있는 명분이다.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무언가를 채운 10년이었으면 좋겠어요.” 영어교육도시 어머니들의 이야기는 특정 집단의 민원이 아니다. 이는 교육 중심 개발이 놓친 동반자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이 집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영어교육도시는 학생을 잃고 결국 도시 자체의 지속가능성도 위협받게 될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해법 이전의 질문이다. 아이만이 아니라, 함께 온 어른의 삶까지 설계하는 도시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영어교육도시는 여전히 반쪽짜리 공간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