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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솔 Jan 01. 2018

챙피하네요

뚜르드앙뜨레 11일차, 2018년 1월 1일

2010년 말쯤, 나는 2년 간의 해외생활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평생 살거라고 생각하고 갔었지만, 평생 살 수 없겠다고 생각해서 돌아왔다. 돌아오기 전에 1년 정도 개발자영어라는 활동(프로그래머 몇 명에게 온라인으로 숙제 주고 피드백 주기)을 했다. 나는 한국에 돌아오면 무엇을 할까 생각했다. 우선 내 생활을 유지할 수입원이 필요했고, 이것을 위해 글쓰기 학원의 일을 구해 두었다. 경제활동 외에 나의 취미 활동으로 생각한 것은 개발자영어 활동을 계속하는 것, 그리고 누군가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한국에 없을 때 생각했었다. 누구에게 가르치지? 어떤 사람들에게 가르치지?그때는 열명 남짓한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래머대로 하고, 또 가르칠 대상이 누굴까 생각했었다. 나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따로 시간을 내어 영어학원에 가거나 수업을 듣는 것은 현실적으로 너무 힘들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찾아가자! 회사로 찾아가서 직장인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수업들이 있다. 강사 파견의 형식으로. 기존에 공급되지 않는 방식은 없을까?


영어를 실용적으로 필요로 하면서도, 누군가가 방문해서 잠시 가르칠 공간에 상주하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 그 때 떠오른 것이 "상인" 이었다. 외국인 방문객이 있는 상인.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것이 바로 책상머리 생각)

그래, 동대문의 상인에게 영어를 가르치자!


계획을 세웠다. 상인들은 바쁠테니, 하루에 10분 정도 시간을 내어주면, 그 시간에 맞추어 조금씩 가르쳐드리겠다고 하자. 배우고자 하는 몇 명이 있다면, 시간을 잘 분배해서 한번 가서 쭉 돌면서 가르치자. 그들에게 정말 영어가 필요할까? 유용할까? 그들은 영어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느낄까? 배울 필요가 있다면 그들은 얼마의 시간을 할애할까? 수업 외에도 시간을 들여서 공부할 수 있을까? 그들은 비용을 지불하려고 할까? 얼마를 지불하려고 할까?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영어 지식이 어느 정도일까? 나는 그들에게 잘 설명해줄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고, 나는 답이 정리되지 않은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가정은 가정일 뿐. 그들의 대답을 내가 가정한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동대문으로 갔다. 원래의 계획은 이랬다.


1. 가게에 들어간다.

2. "안녕하세요. 혹시 영어 공부할 필요가 있으세요?" 라고 묻는다.

3. "예"라고 하면 얘기를 지속한다. "아뇨"라고 하면 "그럼, 안녕히계세요" 하고 나온다.

4. 그 옆에 있는 가게에 들어간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동대문까지는 갔는데, 1번부터 막혔다. 가게에 들어갈 수 없었다. 막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다. 계획과 실천 사이에는 이렇게도 건너기 어려운 강물이 흐른다. 나는 이 강물을 "첫 발을 떼는 것의 어려움"이라고 이름붙였다. 재미있는 건, 동대문에 가서 가게 앞을 일주일동안 아무런 행동도 못하고 배회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강물의 존재를 몰랐을 거라는 점이다.


정확히는 기억 안나지만 일주일 정도였던 것 같다. 가게 앞을 하나하나 지나면서, 여기는 주인이 영어 공부에 관심이 있을까 얼굴을 보며 가늠해봤다. 당연히 얼굴에는 쓰여 있지 않았다. 답답했다. 들어가서 묻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동대문에 안 가지도 못했다. 수건 가게, 티셔츠가게, 문구점 같은 곳 등등. 하염없이 앞을 지나치기만 했다. 고객으로 가게에 들어가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데, "고객"이 다른 것으로 바뀌니, 이리도 부자연스럽고 어려운 행동이 되는구나.


몇 일째인가, 나는 결국 용기를 냈다. 가게에 들어갔다. 2번의 "안녕하세요"까지 했다. 그리고 무작정 들이밀었다. "혹시, 영어 공부할 필요가 있으세요?"


그 다음은 쉬웠다. "아뇨" 라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 대답이 야속하지 않았다. 그걸 묻기 위해 건너야 했던 강을 건넜다는 점이 그 이후의 작업을 쉽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예, 그런데.. 너무 실력이 없어서" 라고 하신 경우가 있었다. 나는 귀가 번쩍 했다. 몇 번 더 찾아갔다. 나는 필요와 의지가 있다면, 방법은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 더 얘기를 나누면서,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가정에 틀린 점이 있었다. 나는 상인이 가게에 자기 자리에 앉아서 별 일을 안하면서 빈둥거리고 심심해하며 시간을 보낼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아저씨 얘기로는, 언제 물건이 배달되고, 뭘 가지러 가야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즉 자기가 언제 움직여야 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방문하는 시간 약속을 잡는 게 어려울 것 같다고 얘기했다. 나의 입장에서는 그 아저씨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그 동네에서 계속 대기를 하고 있는 것은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아저씨에게 알겠다고 하고, 상인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라는 아이디어를 내 목록에서 지웠다.


책상머리에서 시작해서 성과없이 끝났지만 동대문에서 배회했던 경험은 나에게 몇 가지를 남겨 주었다. 원래도 두꺼웠던 나의 철판은 더욱 두꺼워졌다. 더 중요한 건 "첫 발을 떼는 것의 어려움"을 인지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 경험 때문에 영어 공부하는 개발자분들에게 "영어로 쓰기" 관련된 얘기를 할 때, 목소리 높여서, 영어로 쓰는 것을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얘기하고, 기대치를 낮추고, 쓰기를 시작하는 것을 대단하게 여겨야 한다고 얘기하게 되는 것 같다.


뚜르드앙뜨레 11일차는 해운대에서 있었다. 영상을 보다가 "챙피하네요"라는 말을 듣고 동대문을 방문했을 때, 가게에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던 그 때의 심정이 떠올랐다. 그 말을 지나칠 수 없어서 기억에서 건져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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