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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Dec 02. 2022

이태리, 12월엔 커피 말고 수육?

Bollito Misto Piemontese! 피에몬테 볼리또 미스또

“갑자기 20도가 떨어졌어! 독감 주사는 맞았어?” 그동안 꽤 따뜻했다는 부산에서 친구가 소식을 전해줍니다.


며칠 만에 갑자기 20도 가까이 훅 떨어지다니요? 추위를가뜩 많이 타시는 분은 모자, 목도리, 장갑, 부츠에 귀막이까지 꽁꽁 싸매야겠어요.  짠! 하고 12월의 시작을 알리듯 정말 갑자기 진짜 추위가 다가왔으니까요.


한국엔 며칠 만에 기온이 뚝 떨어졌다지만, 현재 제가 거주하고 있는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작은 시골마을에선 여기저기 집마다 벽난로에 불을 지핀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답니다. 오후 5시가 되기 전 벌써 어둠이 스물스물 몰려오면, 집집 굴뚝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구수한 나무 타는 냄새가 시골의 정취를 느끼게 합니다. 이른 아침과 저녁은 물론 어떤 땐 한낮에도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한 안개 덕에 습한 한기가 뼈를 파고듭니다. 그럴 땐 일찍 집에 들어와 나무 난로 불을 태우며 엉덩이를 붙이고 불 앞에 앉아 있는 게 최고지요.


이렇게 으슬으슬 추위가 몰려올 땐, 또 다른 하나의 대비를 해야지요. 대비? 어떻게? 뭘?


영혼까지 데워줄 만한 뜨끈~~~ 한 한 접시 말입니다.


한국에 있었다면 집에 돌아가는 골목길 포장마차에서 땡고추를 넣은 구수하고 매콤한 뜨끈~~~ 한 오뎅 국물에 오뎅 국물 속에서 잘 익은 가래떡 하나, 여차 하면 떡볶이도 하나 걸쳤겠지요.

2022년 6월 여름. 한국에 갔을 때 마주친 포장마차 오뎅꼬치. 빨간 건고추 덕에 매콤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뜨거운 국물이 절 반겨줬어요.

이곳 이탈리아 북서부 시골에서 오뎅탕에 떡볶이를 만들려면...... 독일 한인 마트에 주문을 하고 한참을 기다리거나, 한 시간 걸리는 토리노 중국인 마트까지 장을 보러 가야 하니, 아이쿠, 아서라 합니다.


속까지 데워주는 뜨끈한 국물이 그리울 땐, 피부색이 그야말로 노~~~란 피에몬테 토종닭을 사서 양파, 당근, 후추, 월계수 잎 넣고 푹~~~ 고아 국물을 홀홀 마신답니다. 캬~! 하고 탄성이 나오지요.


참! 그러고 보니 2주만 있으면 이 추위에 맞설 피에몬테 인들의 비장의 요리! Bollito(볼리또) 축제가 열려요!

이탈리아 말로 'bollit'o는 ‘끓인, 끓여 낸’이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끓이느냐? 소 근육이 많은 질긴 부위 고기, 소 머릿살, 소 혀, 토종닭 등 여러 부위 고기에 양파, 당근, 셀러리를 넣고 그야말로 재료들이 부들부들해질 때까지 약불에서 오래오래 푹~~~~끓이지요.

예전엔 부엌마다 화목 난로가 있어서 부엌 난방 겸 뭉근하게 오래 끓여내는 음식을 조리하는 화구 역할도 했다고 해요.  


물 넣고 재료를 오래  푹 끓이면 그 고기들이 무슨 맛이나 있겠냐구요?

그러게요. 볼리또 속 고기들은 조금 더 질기거나 부들부들하거나 식감이 다를 뿐, 맛은 다 거기서 거기 비슷비슷합니다.


그.래.서 소스를 찍어 먹지요. 이탈리아 파슬리, 마늘, 앤쵸비를 갈아 만든 Bagneto verde(초록 소스), 익은 토마토, 파프리카 등 각종 야채를 넣고 익혀 갈아 만든 Bagneto rosso(빨간 소스)가 기본이에요. 어떤 이는 꿀과 호두에 육수를 조금 섞은 달달한 꿀 호두 소스, 혹은 고소한 마요네즈, 혹은 살짝 맵싹한 노란 서양 겨자에 찍어 먹기도 하지요.

볼리또 미스토 피에몬테제(Bollito Misto Piemontese). 여러 가지 부위의 고기를 칼이 쑥 들어가게  푹 익혀 뜨거울 때 곁들일 소스와 함께 냅니다.

그런데 이 축제, 조금 이상합니다. 레스토랑이 아침 6시부터 문을 연다구요? 한겨울 아침 6시면 채 어둠도 가시지 않았을 컴컴하거나 시퍼런 새벽인데 말이죠.

아침 식사라면 기껏해야 에스프레소 한 잔에 브리오쉬 하나가 다인 북부 이탈리아 사람들 아니던가요? 그런데, 아침 댓바람부터 삶은 고기에 고깃 국물을 흡흡 츄릅츄릅 들이킨다구요?


상상이 안 가시겠지만, 그렇답니다.


요즘의 사무직으로 일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아침 식사야 오전 8시쯤 가볍게 바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에 브리오쉬 하나면 그만이지요. 하지만 농촌에서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키우는 분들에게 아침 식사는 아침 동도 트기 전 네댓 시에 시작되지요. 이른 아침부터 강도 높은 육체노동을 하려면 가벼운 커피 한 잔보다는 든든한 아침 식사가 필요했을 겝니다.


 피에몬테 주의 작은 마을 카루(Carrù)에서는 겨울이 되면 부에 그라쏘(Bue Grasso. 어릴 때 거세 후 살 찌운 숫소)를 사고파는 시장이 열렸다고 해요.

2년 동안 정성 들여 살 찌운 소를 끌고 아침 일찍 시장에 나가기 전, 농부들은 모여서 끓인 고깃국과 와인으로 그간의 노고를 자축하는 풍성한 아침 식사를 했는데, 이 끓여낸 고기가 볼리또(Bollito)입니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카루(Carrù)에서는 크리스마스 2주 전 목요일에 '부에 그라쏘 박람회(Fiera di Bue Grasso)'와 함께 'Bollito No Stop'이라고 이름 붙여진 거대한 삶은 고기 축제가 열립니다.

1997년에는 축제가 무려 아침 4시에 시작했다고 해요. 2022년 올 해는 12월 15일 목요일 아침 6시에 그 문이 열립니다.


이탈리아에서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아침 식사. 동이 트기도 전 김이 올라오는 뜨거운 삶은 고기와 구수한 육수에 와인, 그리고 흥겨운 사람들이 가득한 축제의 도가니. 정말 기대가 됩니다.


12월 15일! 첫새벽에 든든한 아침 식사 후 그 이야기 다시 들려 드릴게요.


그동안,  감기 그리고 마음 감기도 모두 모두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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