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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Nov 30. 2022

세금 징수원에겐 닭벼슬 요리를

피난찌에라(Finanziera) 이야기

어느덧 연말이 다가옵니다. 대학생 때야 연말 하면 크리스마스, 겨울 방학, 겨울 유럽 여행 등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고단한 월급 생활자들 중 누군가는 '연말 정산'을 떠올리기도 할 거예요. 슬슬 연말 정산 준비를 하는 게 스트레스를 덜 받는 길이 될 테니까요. 매월 조금씩 미리 가져간 세금을 다음 해 1월, 지난 1년간 세금이 확정되면 더 납부된 세금을 돌려주거나 납부가 덜 된 세금을 요구하지요. 누군가에겐 13월의 보너스, 또 다른 누군가에겐 13월의 폭탄이 되겠지요.


한국 월급 소득자들에게 '연말 정산'이 있듯이, 이탈리아 월급 생활자들에게는 '730'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세금 정산 730은 이름 그대로 7월 30일까지 서류를 제출하고 정산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한 군데 이상 회사에서 일을 한 사람, 1년 안에 이직을 한 사람, 즉 두 군데 이상의 월급 명세서를 가진 사람은 730을 할 때 세금 폭탄을 맞게 되는 일이 많지요. 사람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듯이, 딱 12월 31일까지만 한 회사에서 일하고, 다음 해 1월 1일부터 다른 회사에서 일을 하기가 어디 쉽나요? 한 해에도 여러 곳에서 일하게 되는 경우라도 생기면, 세금 때문에 울상을 짓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이 무시무시한 세금 문제는 비단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만 마주해야 했던 건 아니겠지요.


프랑스와 가까운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주 전통 요리 중에는 세금 징수원들(Guarda Finanza)에게 헌정된 요리가 있습니다. 바로 피난찌에라(Finanziera)입니다.


무시무시한 세금 경찰에게 헌정한 요리라니 대체 어떤 요리일까요?


중국 소설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보면 아들의 징집을 결정할 관리 대접을 위해 허삼관이 자신의 피를 무리하게 팔아 담배, 술, 고기를 사 관리 대접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북부의 세금 관리를 위한 요리라면 대체 얼마나 으리으리했을까요?


예상과는 달리 피난찌에라의 주 재료는 닭벼슬, 닭간, 소 목젖, 소 척수, 자잘한 고기 찌꺼기를 다져 만든 작은 미트볼 등의 부속 부위랍니다. 세상에, 닭벼슬까지 요리에 사용하다니요......


어째서 이런 자투리 부위로 관료 대접을 했을까요? 두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봐라, 우리 집에는 이렇게 돈이 없어서 이런 부속 부위 음식만 먹고 산다. 그러니 세금을 어찌 많이 낼 수 있겠는가?’하는 의미로, 하지만 속마음은 ‘에잇! 더러운 세금 징수원 놈들!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였다고 해요.


원재료야 어땠든, 그 탄생 비화가 어떻든 피난찌에라가 얼마나 맛이 훌륭한지 피에몬테의 많은 요리사들이 600년째 정성껏 요리하고 있지요. 부속물은 가난한 자나 즐긴다고 누가 그랬나요? 이탈리아 통일에 공을 세운 콘테 카불도 아주 사랑했던 요리라고도 합니다.


부속물 요리는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재료의 특성상 상하기 쉬우니 신선한 재료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고, 군내가 나지 않도록 섬세하게 잘 조리해야 하지요. 조리 과정도 참 길기도 기니, 재료가 값비싸지 않다 뿐이지 정성이 가득 들어간 요리입니다.


모든 재료는 찬물에 깨끗하게 헹군 뒤 물을 빼고 한입에 들어갈 크기로 잘라 준비해요. 닭벼슬은 통으로 부드러워질 때까지 당근, 양파, 셀러리를 넣은 채소물에 익혀 내고, 소 목젖도 채소물에 따로 익혀 냅니다. 곱게 다진 자투리 고기에는 우유에 적셔 부드럽게 만든 마른 빵, 계란, 빠르미쟈노 치즈 가루, 소금, 후추를 넣고 잘 섞어 엄지손톱 크기로 동그란 공을 만들어 두지요. 커다란 냄비에 미리 익혀둔 닭벼슬과 익혀서 오일 병조림을 해 둔 포르치니 버섯을 넣고 채소물을 자작하게 부은 후 약불에 끓이기 시작해요. 냄비에는 닭벼슬이 익어가도록 두고, 후라이팬 위에 기름을 살짝 두른 후 소 목젖과 소 척수를 갈색 빛이 나도록 지져낸 후 종이를 받치고 기름을 빼 주세요. 기름을 빼고 나면 익고 있는 냄비 속으로 소 목젖과 소 척수를 넣어 줍니다.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아까 만들어 둔 동그랑땡에 밀가루를 살짝 묻혀 후라이팬 위에서 색이 나도록 익히다 달지 않은 마르살라 와인(marsala secco)을 넣고 고기 완자의 잡내를 날리고 속까지 익혀 주세요. 익은 고기 완자를 다른 재료들이 익고 있는 냄비 속에 함께 넣어 주세요, 맛이 어우러지도록 십여 분 더 끓여준 후, 적포도주로 만든 식초(aceto di vino rosso)를 넣고 조금만 더 끓여 줍니다. 신의 한 수 랄까요? 레드 와인 식초는 자칫 군내가 날 수 있는 부속물 요리에 잡내를 싹 잡아주고 구수한 맛에 새콤한 맛을 더해 주지요.   


요즘, 특히 미슐랭 레스토랑에 가면 화려한 테크닉으로 접시가 화폭인 양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쁜 요리를 만들어 냅니다. 반면, 소박하고 무심한 재료로 단순하지만 깊은 맛을 내는 식당은 점점 찾기 어려워지고 있어요.


피에몬테 주에서 피난찌에라(Finanziera)를 자신 있게 내놓는 식당이라면 다른 음식들도 믿고 주문하셔도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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