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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Nov 27. 2022

집으로 식사 초대받아갈 땐 꼭!

초대하는 그 고운 마음 배려하기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집에 초대를 받아 식사를 하러 가신 게 언제인지 기억나시나요? 한국에서는 점점 집으로 사람을 초대하는 일이 줄어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신, 집을 대신해 밖에서 만날 수 있는 장소인 커피숍이나 대신 음식을 준비해 줄 식당들이 즐비하지요.

초대할 사람을 생각하며 식사 메뉴를 구상하고, 장을 보고, 시간을 들여 정성껏 음식을 준비한 후 상차림을 하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북부 시골 마을에서 알게 된 미국인 부부는 일 년에도 두세 번은 꼭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를 연답니다. 부인 레슬레의 생일, 남편 로버트의 생일, 그리고 Thanks giving day입니다.


레슬레가 음식을 준비하는  보면 요즘 말로 ‘음식에 진심인 이란 생각이 들어요.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녀의 말투만큼이나 손도 느리지만 느릿느릿 서두르지 않고 스트레스도 없이 요리를 만들어 내지요.  손에는 언제나 화이트 와인  잔을 들구요.

레슬레의 분주한 부엌 창가. 화이트 와인 한 잔은 빠지지 않습니다.

BBQ 파티를 할 때는 미니 버거용 번부터 코슬로, 바베큐 양념까지 모두 손수 준비했어요.

오늘도 역시 추수 감사절을 맞아 제가 도착하자마자 짠! 하고 칠면조 구이가 오븐에서 나오더군요. 저라면 칠면조 옆에 감자, 양파, 당근을 함께 넣어 사이드 요리까지 그냥 손쉽게 갔을 거예요.

아...... 그런데 요리에 진심인 레슬레 좀 보세요. 준비한 샐러드에는 하나하나 힘들게 깠을 게 분명한 새빨간 석류알, 오렌지, 사과, 토스트 한 헤이즐넛이 들어가 있었어요. 두 번째 사이드 요리는 하나하나 앞뒤 꼬투리 부분을 칼로 잘라냈을 껍질콩 볶음. 누가 미국인 아니랄까 봐 직접 삶아 으깨고 휘저었을 매쉬드 포테이토도 준비해 뒀더군요. 거기에 오븐에 구워낸 옥수수 퓨레까지. 도대체 몇 시에 일어나 음식 준비를 시작한 걸까요?

저라면 칠면조를 턱 하니 테이블 가운데 놓고 잘라서 먹게 했을 텐데, 친절한 레슬레는 직접 뼈까지 모두 다 발라 주더군요. 참 감사했습니다.


아...... 그런데, 조금 이상한 손님들 때문에  그 손님들과 생판 남인 제가 얼굴이 다 붉어지는 일이 생겼어요.


식사 초대되어 갈 때, 보통 음식이 많은데 너무 적게 먹는 것은 예의에 맞지 않지요. 그래서 음식을 너무 과하게 준비하는 식사 초대에 가면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음식을 준비한 사람은 으레 더 먹으라고 권하고, 정성껏 준비한 음식이 내 접시 위에서 남겨지는 건 참 미안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오늘은 정 반대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초대한 손님 수에 맞게 테이블을 세팅했을 게 분명한데, 어찌 된 일인지 의자도 부족하고 음식도 부족한 겁니다. 분명 <최후의 만찬>이 떠오를 듯 길고 긴 테이블인데 자리가 없어 결국 손님을 초대한 레슬레와 로버트는 창가 작은 티테이블에서 식사를 했죠.


단 한 번도 보지 못 한 새로운 인류의 출현! 음식이 적은데 너무 많이 먹는, 그것도 초대받지 않은 자들의 등장이 있었던 거예요.


조금 늦게 갔던 저는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 친구를 초대했는데, 그 친구가 자기 직원 세 명에 그 직원들 여자 친구 둘까지 데리고 나타났다는 겁니다. 그러니 아주 느릿느릿 평화롭게 음식을 준비하고 테이블 세팅을 했던 레슬레와 로버트에겐 마른하늘에 날벼락! 동공 지진이 일어날 밖에요.

더구나 이 피잣집 사장이라는 분과 다섯 명의 젊은 일행들은 레슬레와 로버트 집에 작정하고 식사를 하러 온 게 분명했어요. 여섯 명 모두 그들끼리만 이야기하며 오로지 음식에만 집중 집중! 너무나 왕성한 식욕을 지치지 않고 드러내기 시작했죠.

핑거푸드로 준비한 여러 종류의 살라미, 마른 과일, 커다란 치즈 세 덩이는 그들 앞에만 놓였다 하면 다른 사람들이 맛 볼 틈도 없이 속속 사라졌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던 음식을 다시 만들어 내느라 순식간에 식당 아줌마 처지가 돼버린 레슬레. “내가 뭐 좀 도와줄까?” 레슬레가 너무 정신없이 바쁜 통에 저도 손을 거들었어요. 다행히 착한 레슬레는 창가 티테이블에 따로 앉아 식사를 해도 전혀 기분 상한 표정이 아니었어요.

저는 제가 파티 주최자도 아닌데, 허둥대는 레슬레는 신경도 쓰지 않고 웃고 떠들며 음식이 놓이는 족족 먹고 마시는 그 피잣집 팀이 얼마나 얄밉던지요.


오늘 파티를 보며 배운 게 있어요.

하나, 젊은 먹깨비들이 여럿 들이닥칠 땐 괴수들의 성난 배고픔을 즉각 달래줄 뜨끈하고 든든한 포카챠를 넉넉히 굽고, 함께 곁들일 프로슈토 등도 푸지게 준비할 것. 그 후, 양이 적고 값비싼 음식을 천천히 낼 것.


둘, 손님을 초대할 때, 초대 손님이 동반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미리 알려줄 것을 부탁할 것.


이탈리아에서도 ‘친구의 친구는 나의 친구’라는 개념이 있어요. 그래서 한 명을 초대할 땐 적어도 미리 두 명을 생각하고 물어보죠.


한 번은 제가 제 친구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어 친구를 위해 제가 요리하는 파티를 마련한 적이 있어요. 저와 제 친구는 초대하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고 공간이 넓은 서재에 식탁을 준비하기로 했죠.

그런데 초대 명단에 있던 한 친구가 다른 친구를 데리고 온대요. 오케이 했죠. 그런데 식사 한 시간 전에 날아온 소식! 그 다른 친구가 또 다른 자신의 친구를 데리고 오는데, 비건이라는 겁니다.

“예? 뭐라굽쇼? 비건이요?” 초대한 손님들을 고려해 손이 많이 가는 코스 요리로 준비했는데, 갑자기 파티 초대 추최자와는 일면식도 없는 ‘비건 손님’이 온다는 겁니다. 급히 간단한 다른 접시들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부쩍 추워져  모두 레드 와인을 찾는데, 자신은 화이트 와인만 마신다며 굳이 제 친구를 지하 와인 창고까지 내려가게 했던 그 ‘초대받지 않은 비건 손님’ 맞이가 썩 기쁘지는 않았어요.


특히나 집으로 초대를 받아 갈 때는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고 나를 기다릴 친구에게 예쁜 꽃다발, 함께 나누어 마실 와인, 리큐르가 들어간 달콤한 초콜렛과 함께 중요한 하나, ‘배려’도 꼭 챙겨 가면 더 살맛 나는 세상이 되리라 생각해 봤어요. ^^;


아..... 오지게 먹으면서 음식 불평까지 하던 오늘 그 여섯 먹깨비들 진짜...... 이런 생각 하면 안 되는데, 너무 뿔이 나서 안드로메다로 확 그냥 멀리 보내 버리고 싶었거든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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