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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Nov 18. 2024

한국에서라면 가능한 이야기일까?

비가 온다고 했다. 하지만 그냥 떠나버렸다. 일기예보는 언제나 비관적이니까.


다행이다. 비는 무슨! 한 시간을 넘게 달려 도착한 베르제지 Bergegi 바닷가, 10월의 해변에는 햇살이 가득했다.


햇살도 좋고, 바람도 좋고, 맨발로 적당히 따스해진 모래 해변 위를 걸었다. 한참을 그렇게 해바라기를 했다.


가볍게 맥주나 한 잔 할까? 10월인데도 아직 문을 닫지 않은 해변의 간이 건물로 들어섰다.


“꼬마 맥주 두 병에 스프리츠 두 잔 부탁드려요.”

화장실 간 친구들을 대신해 주문을 넣고 기다리던 차였다.

“아가씨는 어디서 왔어요?”

눈웃음이 예쁜 주인아주머니가 묻는다.

“한국 사람이지만 여기서 두 시간 거리에 살아요. 랑게 로에로 쪽이요.”

“어머나, 한국이면 멀리서도 왔네. 조금만 기다려요. 아가씨가 인사성이 좋으니까, 내가 해물 튀김 하나 서비스로 줄게.”

리구리아 사람들은 팔이 짧아 지갑을 꺼내는 법이 없다는 농담이 있다. 그 인색하다는 리구리아에서 이게 웬일인가? 맥주 두 병에 스프리스 두 잔 시켰는데 해물 튀김을 주신다니?


손님이라고는 달랑 나 하나뿐이긴 했다.


“세 분 함께 일하시는 모습이 참 좋아 보여요. 가족 경영인가 봐요?”

“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저 남자는 제 남편이 아니라 제 전남편이에요.”

“아!”

아주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이 젊은 아가씨는 제 딸이 아니라 전남편의 여자친구랍니다.”

“어머나, 죄송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제가 괜한 질문을 했네요.”

“아니에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걸요, 인생, 살아봐요. 진짜 알 수 없어요.”

고된 주방일에 몸이 상했는지 허리 보호대에 손목 보호대까지 하고 나를 보며 생긋 웃으시는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오래 기다렸어요. 자, 여기 해물 튀김. 뜨거울 때 맛있게 먹어요.”




한국에서라면 가능했을 이야기일까?

전남편도 모자라 전남편의 애인과 매일 함께 붙어 일을 한다?


부부가 서류상으로, 또 실제 생활에서 그 관계가 끝이 났다고 해서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더구나 동업을 하던 부부라면.

바닷가 작은 간이 레스토랑 하나도 하루아침에 네 것 내 것 딱 잘라 나누어 가지기가 쉬운 건 아니니까.


인생, 진짜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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