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0일 목요일, 이탈리아에 봄이 왔대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졌기 때문이라나요?
수선화가 피기 시작한 한 달여 전부터 햇살이 좋은 날은 벌써 봄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아 “벌써 봄이 오는 것 같지?”라고 했어요. 이탈리아 친구들은 절 이상한 눈으로 보더니 “아니, 3월 20일부터가 봄이야!” 하더군요.
‘봄 날씨가 되면 봄이지, 무슨 딱 정해진 봄이 있나? 이상한 사람들일쎄!’ 생각했어요.
그런데 말이죠. 3월의 마지막 주말이 되자 정말 봄이 온 듯해요. 작년 10월 마지막 주말부터 한국과 8시간 났던 시차가 이제 막 다시 7시간으로 가까워졌거든요.
3월 20일 봄 시작이라더니, 며칠 지나자마자 ‘썸머타임’ 시작이라나요? 일요일 꿀잠을 자고 일어나니 감쪽같이 귀중한 1시간을 도둑맞아 버린 거죠.
늦잠을 자긴 했지만 정말 너무 잤다 싶었더니 이유가 있었네요.
더구나 오늘은 최근 들어 처음으로 해가 쨍한 주말이라 포도밭이 가득한 이 작은 마을과 주변은 난리가 났답니다.
한국에선 바이크 족이 그리 흔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이곳에선 최민수 씨와 강주은 씨 커플처럼 특별한 사람들만 할리 데이비슨을 즐기는 게 아니랍니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선 날만 좋으면 그냥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는 물론이고 머리 하얀 할아버지에 막 소년 티를 벗을까 하는 10대들도 여기저기 오토바이며 스쿠터를 타고 붕붕거린답니다. 검은 가죽 점퍼로 무장한 할리 데이비슨 족들도 줄을 지어 달리지요.
저도 햇살을 그냥 보고 있기가 아까워서 시골길을 나섰어요.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구불구불 시골길, 그냥 운전도 쉽지가 않은데 오늘 드라이브는 난이도가 꽤 높군요. 구불구불 좁은 시골 언덕길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긴팔 옷을 벗어 허리에 질끈 묶고 걷는 사람들, 성질 급한 오토바이족들까지 번갈아 계속 나타납니다.
1시간을 도둑맞고 늦잠까지 잔 데다, 한참 봄풍경이 취해 언덕길 드라이브를 하다 보니 슬슬 배가 고파옵니다. 이미 어딜 가서 점심을 먹기엔 늦은 시간, 그래도 걱정은 없습니다. 햇살 좋은 날은 몽포르떼 알바(Monforte d’Alba)로 가면 되거든요.
오늘은 운이 정말 좋은 날입니다. 혹시나 하고 찾았는데, 드디어 자주 찾는 바에서 야외 테라스를 오픈했어요. 따스한 햇살 아래서 간단한 먹거리에 와인 한 잔까지 곁들이니 남 부러울 일이 없습니다.
이탈리아 인들이 와인 한 잔을 앞에 두고 즐겨 부르는 노래 한 소절이 떠오르네요. ‘행복은 와인 한잔과 빠니노 하나’ (felicità è un bicchiere di vino con un panino)
밝고 따스한 봄 햇살만 해도 고마운데 와인 한 잔까지. 행복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요? 워요일부터 해결할 복잡한 일더미 따위는 잠깐 잊게 해 주는, 그저 참 고마운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