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치를 못 배웠다.
‘요리사는 정작 자기 집에서는 부엌 근처에도 안 간다더라’, ‘요리하는 사람은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는 밥이라더라’.
그 ‘카더라’ 썰이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불 앞에서 싸운 한 주 후 휴일, 늦잠 후 외식이 답이지요. 밥 한 끼 먹어 보겠다고 차를 몰고 구불구불 포도밭 언덕길을 내려갑니다.
어라? 어째 메뉴가 좀 수상합니다. ‘발효된 배추에 뱃살 구이’?
저는 복도 많지요. 이 멀리 이탈리아 시골에서 삼겹살 구이에 김치를 얻어먹다니요? 코펜하겐의 쓰리스타 레스토랑 <노마(Noma)>에서 냈던 발효 관련 책 덕분인지, 한식 열풍이 이탈리아까지 불어와 이 멀리 이탈리아 찐 시골에서 이탈리아 젊은이가 담은 김치를 다 얻어먹습니다.
문득, 아주 오래전 기억이 하나 떠오릅니다. 한국에서도 못 배우고 온 김치를 멀리서 담아 보겠다고 혼자 쑈를 하던 날 밤 말입니다.
나는 김치를 못 배웠다.
한국 밖에 나와 살아 그런가? 유독 김치가 먹고 싶다. 엄마표 김치. 그런데 나는 김치 못 배운 여자가 어닌가? 어째 김치라고 시도를 하면 국물이 흥건하게 한강이 됐다. 김치엔 영 자신이 없으니 만만한 겉절이만 자주 해 먹는다.
그러다 사건 발생! 얼마 전 토리노에 사는 아는 언니에게 집에서 직접 담갔다는 김치를 조금 받았는데 얼마나 맛이 있던지……. ‘그래! 김치라고 뭐 거창한 비결이 있을까? 내 이번엔 기필코 김치를 제대로 담가보리라!’
무슨 용기인지 다음날 바로 농부 시장에 가서 작은 배추를 네 통이나 샀다.
내 생애 최대 김칫 거리를 준비했으니 오늘은 작정을 하고 김치 조언을 구했다.
토리노에 사는 한국 언니 왈 “포기김치는 더 어려워. 배추를 미리 다 잘라 소금에 절여 봐.”
카톡으로 한국으로 전화를 드렸더니 엄마의 조언,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김치가 한강이 된다고? 소금에 절인 후에 마 손으로 꽉 짜뿌라.”
음! 두 조언을 모두 따르기로 했다. 폼 나는 포기김치는 존심 상하지만 다음에, 잘라서 담는 ‘막김치’에 도전하기로! 미리 잎과 줄기를 다 잘라 따로 소금에 절이고 물에 헹군 후 손으로 꽉 짜기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밀려오는 후회. ‘어쩌자고 배추를 겁도 없이 네 통이나 샀을까?’ 배춧잎을 일일이 떼내고 흙을 씻어낸 후 잎 따로 줄기 따로 잘라 담자니 시간이 보통 걸리는 게 아니다. 어쩔쏘냐? 한숨 한 번 쉬고 으쌰! 겨우 배추 씻고 다듬기가 끝났다.
다음은 배추 절이기. 젖은 배춧잎과 줄기에 소금을 훌훌 뿌렸다. 한두 시간에 한 번씩 위아래가 바뀌게 뒤적여줘야 된다고 했다. 아! 어쩌지? 벌써 피곤하다. 그 와중에 갑자기 어제 사둔 브로콜리가 눈에 밟힌다. ‘브로콜리도 김치로 담아 봐?’ 브로콜리도 잎과 줄기 따로 꽃봉오리 따로 씻고 잘라 소금에 절였다.
자! 이제 양념인가? 찹쌀가루와 물을 1대 5로 섞어 약불에 찹쌀풀을 쑤었다. 마늘, 생강, 양파, 사과, 무, 찹쌀풀, 꿀, 설탕, 소금, 새우젓, 까나리 액젓을 한꺼번에 갈았다. 하얀 도깨비방망이가 벌겋게 물이 들까 봐 고춧가루는 마지막에 넣어 섞었다. 일단 보기엔 양념이 그럴듯하다. 음, 맛을 보니 짜지도 않고 딱 좋다.
이젠 기다림. 중간중간에 소금기 먹은 배추며 브로콜리를 뒤적여줬다. 저녁밥을 먹고 나니 어찌나 피곤한지 다 귀찮다. 허나 내일까지 배추를 소금에 절여두면 너무 짜질 듯.
‘포기란 없다! 제군! 인생은 고 Go!’ 다시 마음을 다잡고 절인 배추며 브로콜리를 찬물에 두 번 헹구고 잎 따로 줄기 따로 물기 없이 꼭 짰다.
마늘 냄새 민감한 북부 이탈리아에서 손으로 양념을 버무리면 며칠 동안 집 밖에는 다 나갔다! 비장하게 고무장갑을 낀 후 젓가락과 나무 주걱을 양손에 쥐고 절인 배추에 양념을 묻혔다. 그리고는 적당한 통을 골라 버무린 배추를 담았다.
이쯤이면 벌써 국물이 나오기 시작해 한강이 돼야 하는데? 아, 기나긴 기다림과 두 손 모아 꼭 짜기 기술로 이런 기적이! 드디어 배추가 김치 비슷한 모양이 되었다.
눈은 감기고 피곤한데 계속 김치통을 보게 된다. 으쓱으쓱 뿌듯하다. 빨리 맛을 보려면 오늘 하루는 냉장고 밖에 둬야겠다.
수고가 헛되게 브로콜리가 한강에 익사라면 안 되니 브로콜리는 물 더 빠지라고 채반에 받쳐뒀다. 넌 내일 처리해 주마. 아, 눈이 감긴다. 오늘은 여기까지.
<김치 양념 레시피>
찹쌀가루 2 국자: 물 10 국자 = 찹쌀풀
새우젓 6스푼, 까나리 액젓 5스푼
사과 소 1, 양파 중1, 무 1/4
마늘 24톨, 마늘 크기 생강 8톨
고춧가루 3컵
꿀 3스푼, 비정제 사탕수수 설탕 1스푼
히말라야 분홍 소금 1스푼 반
> 도깨비 방망이로 윙윙 갈기
2016년 2월 16일, 이탈리아 토리노, 김치 일기
최근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도 김치를 활용하는 곳이 부쩍 자주 보이네요. 10여 년 전만 해도 과연 이탈리아에서 김치가 통할까 싶었는데 말입니다.
어제는 티브이에서 밀라노 미슐랭 원스타 채식 레스토랑 <조이아 Joia> 셰프들이 나와 김치를 요리에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오늘 점심엔 이탈리아 젊은이가 담은 김치에 훈제 삼겹살 구이까지 맛을 보았습니다.
저는 피에몬테 전통 요리를 하고 있는 터라 저의 색이 너무 들어가지 않게 색다른 재료를 쓰는 걸 극도로 조심하고 있습니다만, 반대로 새로운 걸 찾는 이 먼 나라의 젊은 셰프들은 한국 요리에 눈을 뜨고 있으니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