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서른이 넘어 유학을 왔는가

30대 초반, 새로운 시작을 결심하기까지

by Natalie

내 인생 첫 미국 경험은 2011년, 대학교 마지막 학년에 유타주립대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기회였지만 막상 가보니 말도 잘 안 통했고, 사람들의 무뚝뚝함에 상처받기도 했다. 시골이라 생활은 지루했고, 향수병은 생각보다 심했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고작 5개월이었지만, 하루하루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릴 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2012년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내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졌었다. 그랬던 내가 어느 순간 다시 유학을 꿈꾸기 시작한 건 아마 2013년 그래픽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그래픽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한국의 대학원을 입학했고 미국 출신의 외국인 지도교수님의 조교로 일하게 되었다. 교수님은 내가 영어도 곧잘 하고 미국으로 가면 디자인도 제대로 배울 기회가 될 거라며 유학을 적극 권장하셨다. 이미 20대 후반이었고,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무엇보다 내 상황에서 유학은 경제적으로 무리였다. 고민만 하던 나에게 교수님은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알려주며 적극적으로 도움과 격려를 해주셨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치열하게 장학금 준비에 매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포트폴리오도 학업계획서도 부족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운 좋게 마지막 관문인 면접까지 갈 수 있었다.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면접 이후에는 왠지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결국 장학금은 받지 못했고, 내 인생에 이제 유학은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기대와 노력이 컸던 만큼 결과 발표 날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북받쳐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건너 건너 알게 된 사실은 풀브라이트는 미국 경험이 없고 한국에서 석사학위 중이거나 갖고 있는 사람은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얘길 들었다. 어쩌면 내 상황에서 면접까지 간 게 기적이었을 수도)


대학원을 졸업한 뒤 원하던 회사에 들어갔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우울증과 번아웃이 심해졌다. 체력젹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지쳐있던 그 무렵 유학에 대한 갈증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해외 취업 관련 콘텐츠를 접할 때마다 ‘나도 저 상황일 수 있었는데’, ‘그때 무리해서라도 유학을 갔더라면 지금쯤 달랐을까…’ 하는 'What if'의 감정에 괴로웠다.


유학 오기 직전 근무했던 회사는 일이 어렵진 않았지만, 디자이너로서 성장할 수 없는 곳이었다. 영어 역량이 요구되는 글로벌 기업이었기에 ‘해외로 나갈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입사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해외 취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아 보였고, 성장한다는 느낌 없이 회사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그곳은 점점 막다른 골목처럼 느껴졌다. 내 미래가 대충 그려지는 기분이었다. 이곳에서 몇 년 더 비슷한 일을 하다 비슷한 계열의 회사로 이직하거나, 악착같이 노력해 대기업으로 가거나. 하지만 그게 1년 후가 될지 10년 후가 될지는 알 수 없었다. 현재의 불만족은 또다시 ‘What if’라는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답답한 마음에 다양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유학 가라는 사람이 훨씬 많았고, 가지 말라는 몇몇 사람들의 이유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대부분 ‘유학을 다녀와도 결국 대기업에서 일하게 될 뿐’이라는 논리였다)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나이가 더 들어 후회하느니, 지금 30이 넘은 시점이라도 다녀오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설령 돌아와서 같은 일을 하게 되더라도 항상 나를 옭아매던 'what if'는 해결할 수 있을 테니. 숨 막히는 회사 생활 속에서 나는 다시 유학을 결심했다. 근무를 병행하면서 조금씩 토플, 포트폴리오, 서류 작업에 매진했다. 토플은 요구 점수를 맞추기 위해 여러 번 응시해야 했지만, 포트폴리오는 그동안의 작업물을 정리해 제출하면 돼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지원서와 자기소개서도 풀브라이트 준비 경험 덕분에 익숙했다. 전체적으로는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됐다.


학교를 고를 때는 장학금, 날씨, 졸업 후 비자나 취업 여부 등 여러 요소를 고려했다. 다양한 국가와 학교에도 지원했지만, 결국 캘리포니아를 선택했고 내가 꿈에 그리던 학교 중 한 곳의 미디어 디자인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사실 그래픽디자이너로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같은 과로 지원했다면 장학금 혜택이 더 컸을 것이다. 하지만 이왕 유학 가는 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었고, 미디어 디자인과가 STEM 전공이라 졸업 후 취업에 유리할 것 같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나중에 더 자세히 쓰겠지만, 이 결정은 훗날 후회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동안 일하며 모은 돈과 부모님의 도움으로 마침내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합격 통보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가 터질 줄은 몰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