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기

미국 출국은 오리무중으로

by Natalie

2021년 8월부터 2022년 3월까지는 내 인생에 다신 없을 특별한 시간이었다.

원형탈모 치료로 인해 대학원을 휴학하고 미국 출국은 잠시 미뤄두었다. 바쁘고 치열하게 흘러가던 인생의 시계가 잠시 멈춘듯했다. 질병과의 사투로 인해 일종의 암흑기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사랑하는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 소중한 나날이기도 했다.


휴학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건 전과였다. 그래픽디자인과 학과장인 션 아담스에게 이메일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그래픽 디자이너로 경력이 있고 포트폴리오도 있었기 때문에 전과는 가능하다는 고무적인 내용을 전달받았다. 내 작업을 보시곤 매우 지적이고 vibrant 하다는 칭찬과 함께 타이포그래피와 브랜딩 스킬을 더 길러주고 싶다고 했다. 문제는, 미디어과에서 들었던 1년의 수업 중 15학점만 인정된다는 점이었다. 그래픽과 대학원은 3년 과정으로 2년밖에 안 되는 미디어디자인 과에 비해 애초에 이수학점이 더 많았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내가 들어야 할 이수 학점을 학기로 계산해 봤을 때 때 4학기, 그러니까 총 2년을 더 들어야 한다는 답변이 왔다. 이는 미디어과 1년 치만 남겨두고 있던 상황에서 너무 큰 부담이었다. 결국 한 학기에 거의 5과목을 듣는 조건으로 3학기 내에 졸업할 수 있도록 조율을 했다. 학과장은 한 학기에 너무 많은 수업을 듣는 건 힘들 거라고 우려했지만 학비를 생각했을 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결과적으로 2022년 여름학기, 가을학기 그리고 2023년 봄 학기 세 학기 동안 그래픽디자인과에서 필요로 하는 학점을 이수하고 나면 졸업할 수 있도록 조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학교와 관계자분들의 유연한 대처와 커뮤니케이션에 큰 감동을 받았다. 원래 예정보다 한 학기 더 다녀야 하고 stem 전공도 포기하게 되었지만 마음만은 편했고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전과가 처리되었고 미국출국일을 언제로 잡으면 될지 대충 윤곽이 나왔다.


휴학하고 매일 낮에 아파트 뒷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원격으로 대학원수업 들으면서 낮밤이 바뀐 채 살았기 때문에 꾸준한 운동 및 수면이 심신의 회복에 필수적이라 생각했다. 한 시간의 아침햇살과 맑은 공기는 하루를 시작하기에 더없이 완벽했다. 덥던 춥던 항상 꾸준하게 산에 오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자극받는 기분도 참 좋았다. 자연 속에 있으면 알 수 없는 치유받는 기분이 들었고 그렇게 산에 가는 게 중요한 하루 일과로 자리 잡았다.


원형탈모 개선을 위해 먹는 것에 특히 많은 신경을 썼다. 자가면역질환은 특별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면역을 건강하게 돌려놓는 게 중요한데 그중 가장 큰 부분이 식습관이라고 했다. 평소 죽고 못하는 과자 빵등 밀가루음식을 멀리하고 집밥위주로 건강하게 챙겨 먹었다.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편이었기 때문에 휴식기였던 그 당시엔 나쁜 음식도 어느 정도는 절제가 쉬웠다.


다발성 원형탈모가 한창 심하던 초기엔 자가면역질환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 책도 읽고 유튜브도 찾아보고 네이버 카페에서 후기랑 치료법은 닥치는 대로 다 읽었다. 명확한 치료법이 없는 분야였기에 민간요법이나 자연치료 같은 방법도 많이 공부했다. 그중 항암치료법으로도 쓰이는 야채수라는 게 있는데 당근, 시래기, 마 등을 넣고 푹 삶아내 끓은 물을 약처럼 먹는 방법이었다. 야채수 만드는 건 손이 참 많이 가는 일이었다. 필요한 야채를 종류별로 사서 손질하고 오래 푹 삶은 다음에 물만 걸러내는 과정을 거치면 일주일정도 먹을 양이 나오곤 했다. 푹 익히고 남은 야채는 딱히 써먹을 데가 또 없어서 대부분 버려야 하는데 그러면 음식물쓰레기 양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불치병 치료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 수고로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원형탈모를 치료할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할 수 있었고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감사하게도 매주 번거로운 야채 구매 및 손질, 조리까지 부모님은 옆에서 헌신적으로 도와주셨다.


부모님의 헌신과 사랑 때문이었는지 8개월 동안 나의 원형탈모는 많은 차도를 보였다. 모근이 자기 머리 공격을 멈추고 새 머리카락이 자랄 때는 신생아 머리카락처럼 얇고 힘없는 솜털이 아주 조금씩 자라난다. 이 솜털이 보이기 시작하면 탈모반이 더 커지지 않고 회복되고 있다는 좋은 신호인 것이다. 그래서 매일 머리 감고 솜털이 자라는지를 확인했고 솜털이 보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대학병원은 몇 달 통원치료 뒤 연고만 처방받고 집에서 자가치료를 했다. 매일 밤 머리 감고 연고를 바르는 게 하루의 중요한 루틴 중 하나였다. 뒤통수의 탈모반은 내가 직접 연고를 바를 수 없었기 때문에 엄마가 항상 발라주곤 했다. 엄마는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이런 것도 다 추억이 될 거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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