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국은 오리무중으로
원형탈모 치료에 집중하고 건강을 돌보기 위해 휴학을 결심하면서, 이 과가 나와 정말 잘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인생의 큰 좌절을 겪은 후, 공부보다 몸과 마음의 평화가 내가 신경 쓸 수 있는 유일한 우선순위였다. 나의 심각한 원형탈모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처음 유학을 결심했을 때처럼 의욕에 가득 차 있지도 않았고, 심리적으로 지쳐 있는 상태에서 미국으로 가는 것이 옳은지, 그리고 미디어과에서 계속 고군분투하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만약 이대로 학업을 포기한다면, 힘들게 겪어낸 1년의 시간이 물거품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어렵게 시작한 학업은 끝까지 마치고 학위를 받는 것이 맞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면서 미국에서 학업을 끝낼 방법은 없을까’라는 고민에 사로잡혔다. 그러던 중 떠오른 생각은 “차라리 자신 있고 잘해왔던 그래픽과로 전과해서 졸업하는 것은 어떨까”였다. 이렇게 하면 남은 1년은 스트레스를 덜 받고 학업을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적인 제약도 있었다. 전과를 하면 STEM 전공을 포기하게 되어 OPT가 1년밖에 남지 않는다는 점, 미디어과 입학 조건이 그래픽과보다 훨씬 까다롭다는 점이었다. 어렵게 들어간 과를 떠나 다른 과로 옮기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하는 고민과, 처음부터 그래픽과에 진학했다면 장학금도 더 많이 받고 쉽게 입학했을 것이라는 기회비용에 대한 억울함도 느껴졌다.
하지만 내게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심신의 건강 회복이었다. 질병을 겪으면서 ‘새로운 도전보다도 마음이 편할 수 있는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평소에는 힘든 일을 견디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했지만, 원형탈모를 겪고 나서 무리하게 한계를 밀어붙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 동시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는 직접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마음이 전과 쪽으로 기울자, 학교에 문의했다. 학점 이수 문제와 포트폴리오 리뷰 등 몇 가지 절차가 필요했지만, 다행히 전과는 가능했다 (사실 대학원에서도 전과가 가능하다는 점이 놀라웠다).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몇 학기를 더 들어야 하는지 등 알아볼 일이 많았지만, 일단 일 년의 시간을 확보했으니 심신을 회복하며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