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단이 끝나야 새해지

by 나타샤


제야의 종소리나 1/1에 바다 너머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더라도 여전히 날짜 칸에 새로운 해의 숫자를 쓰는 게 여간 어색한 게 아니다. 대개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쯤에 이르러서야 ‘아 이제 정말 새로운 해구나, 또 한 해가 시작되었구나.’ 하며 정확한 날짜를 적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중동에 살기 시작한 이래로 실제로 새로운 해를 제대로 느끼는 순간이 바뀌었다. 바로 라마단이다. 라마단이 시작되면 ‘아 벌써 라마단이야?’ 하며 또 한 해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라마단이 끝날 때쯤이면 더 이상 전년도를 적는 실수를 하지 않게 된다.

라마단이란 이슬람력의 아홉 번째 달로 초승달이 보일 때를 기준으로 약 한 달 동안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 금식을 하고 해가 지는 순간부터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 먹고 마시는, 이슬람교에서 상당히 큰 종교 행사이자 축제이다. 라마단은 이슬람교의 문화이기 때문에 중동이라는 지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 즉 무슬림이 있는 곳이라면 인종과 대륙에 상관없이 행해진다.

라마단은 이슬람력을 기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그 날짜가 해마다 조금씩 다르고, 초승달의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대륙에 따라 라마단 기간이 1~2일 차이가 난다. 올해 중동 지역은 2025년 2월 28일 (금) – 2025년 3월 29일 (토)이다.


라마단은 금식이 기본인데 이는 식음료를 먹지 않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흡연, 음주, 성관계 등 욕구를 통제하는 인내와 절제를 바탕으로 한다. 또한 금식을 통해 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확인하고 관용을 베푸는 시간이기도 하다. 라마단 기간 동안 사람들은 라마단 카림(Ramadan Kareem)이라고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데 이는 “풍요로운 라마단 되세요.” 혹은 “행복한 라마단 보내세요!”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라마단이 시작할 무렵, 사람들의 눈에는 경건한 마음과 들뜸이 동시에 반짝이지만 금식이 시작되면 사람들의 지치고 기운 없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일몰 후, 사람들은 물이나 말린 대추야자, 라반(중동식 묽은 요거트), 말린 무화과 등을 먹으며 금식을 해제하고 본격적인 식사를 한다. 이때 먹는 첫 끼를 이프타(Iftar), 일출 전의 마지막 식사를 수후르(Suhoor)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프타와 수후르를 위해 라마단 기간 내내 푸짐한 양의 요리를 하고, 함께 나눠 먹는다. 이 때문에 마트에는 식재료를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많은 호텔에서는 이프타 뷔페, 수후르 뷔페 서비스 제공한다.

한편, 사람들은 해가 진 후 늦은 시간에 많이 먹게 되기 때문에 라마단 기간에 체중이 느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있다.


종교의 보수성에 따라 라마단의 풍경도 다른데, 예를 들어 두바이나 자카르타처럼 개방된 도시에서는 음식점들이 커튼이나 천막을 치고 여전히 장사를 하지만 카타르처럼 보수적인 국가는 낮 시간 동안 아예 가게 문을 닫거나 배달, 포장만 가능하다. 라마단 기간에는 외국인이라도 무슬림 앞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사실 예의가 아니다. (하지만 카타르에는 외국인이 매우 많기 때문에 대부분은 서로서로 개의치 않는다.) 카타르에서는 길거리에서 물을 마시는 것도 금지되어 있어서 라마단 기간 동안 공공장소에서의 취식은 당연히 안 된다.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 도하의 레스토랑이나 카페는 테이블 위에 의자를 올려두거나 한 곳으로 몰아둠으로써 매장 내 취식이 불가능한 것을 알린다.

또한 라마단 기간 내내 술은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술을 살 수 있는 허가증(카타르에서는 술을 사려면 허가증이 있어야 한다)이 있는 사람들은 미리 술을 쟁여두기도 하고, 도하의 모든 바는 한 달 동안 술을 판매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에서도 식사류만 판매하고 일하는 직원들은 이 시기에 휴가를 가기도 한다.


그리고 라마단 기간에는 학교 수업 시간도 달라지고 회사의 근무 시간도 달라진다. 식음료를 제공하는 우리 항공사 역시 라마단 기간 동안 기내 서비스가 바뀐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비즈니스 클래스 경우, 술을 캐빈에서 따르지 않고 갤리에서 따르거나 이코노미 클래스의 경우 카트 앞쪽에서 최대한 술을 숨긴 채로 따른다는 것이다.

재밌는 점은 무슬림들은 금식을 하기 때문에 라마단 기간의 무슬림이 많은 지역의 비행은 시간에 따라 승무원들의 노동 강도가 극명히 차이가 난다. 해 떠 있는 시간 동안 이 지역을 비행을 할 경우 뭘 먹는 사람이 없어 일이 굉장히 수월해진다. 반대로 이프타 시간대의 비행은 하루 종일 굶다가 한껏 예민해진 사람들 때문에 기내가 아수라장이다. 이륙도 전부터 배고픔으로 인한 짜증과 불만 섞인 태도로 요구사항이 많아지는데, 아기새처럼 입을 벌린 채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 소리 내어 우는 모양새이다. 그런 사람을 볼 때면 솔직히 속으론 타인에게 저렇게 못되게 굴 거면 금식을 뭐하려 하냔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한편, 라마단 기간 동안 금식에서 제외되는 사람이 몇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여행자이다. 시차를 넘나들기 때문에 금식에서 예외가 되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무슬림 동료들과 승객들 중에는 금식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신기한 건 바로 금식시간 계산법인데 이들은 도착지나 혹은 현재 지나가고 있는 도시의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예를 들어, 도하에 사는 사람이 런던으로 여행을 한다면, 도하(UTC+3) -> 런던(UTC+0) 런던 시간을 기준으로 금식을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금식이 3시간 줄어든다. 한편 도하(UTC+3) -> 뉴욕(UTC-5)으로 가는 중이라면 뉴욕 기준으로 하다 보니 금식 시간이 5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시차가 많이 나는 지역으로 갈 경우 금식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같이 일했던 한 동료는 미국 비행 중에 금식을 하다가 거의 20시간 동안 먹지 못한 적이 있었고, 어지럼증을 느끼는 바람에 그 이후로는 미국 비행 때에는 금식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라마단 기간에는 기장님이 이프타를 알리는 방송을 들을 수도 있는데 이는 현재 비행기가 지나는 곳의 일몰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고 한다.


마지막 금식을 마무리하면 약 한 달간의 라마단이 끝나게 되고 그다음 날을 이드(Eid)라고 한다. 이드부터 3~4일간은 휴일로 정해지는데 이 때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기 때문에 도하 출발의 비행들이 대체로 만석이 된다. 내가 처음 직원 티켓으로 오프로드 된 적도 바로 이 이드 연휴 때였다.

이드 때는 이드 무바락(Eid Mubarak)이라고 인사하는데 이는 “복된 이드 되세요.” 정도로 해석되며 라마단을 잘 마친 후 서로에게 신의 축복을 빌어주는 것이다.

라마단과 이드가 끝이 나면 도하에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 5분 거리 집 앞도 걷기가 어려워지고 작열하는 태양에 살갗이 따갑다. 새로운 해의 설렘도 들뜸도 사그라들고 특별했던 새 해는 평범한 해로 익숙해져 간다. 이렇게 여름이 오고 가을을 지나 정신 차려 보면 어느새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것이다.

2025년 새 해가 비로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