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조금 많아요

by 나타샤

저녁 5시가 되기도 전에 베이지색 건물들 사이로 주홍빛이 짙게 퍼진다. 한낮에는 강렬했던 해가 지평선 아래로 서서히 미끄러져가고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쌀쌀해진다. 우뚝 솟은 모스크 기둥 너머로 빛이 서서히 사그라지는 이때의 도하는 세상의 그 어느 곳보다 사람을 울적하게 만들곤 한다. 이 순간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거나 침대에 누워있거나 하는 등의 행동은 굉장히 위험하다. 생각이 많아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우울감에 잠식되기 때문이다.


타국에 사는 모두가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날씨도, 문화도, 사람도 너무 낯선 이곳 도하에 산다는 것은 늘 외로움과 공허함, 우울함을 어떤 때에는 자괴감까지 안고 살아간다. 괜찮다가도 이따금씩 거센 파도처럼 밀려드는 그 어두운 감정은 여러 해가 지나도 적응이 쉽게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항상 이런 감정에 대비할 수 있게 좋아하는 것들을 곁에 두어야 한다. 특히 마음이 울렁거리는 해 질 녘, 생각이 많아지는 스탠바이에 갖은 상념 때문에 우울로 빠지지 않기 위해 구명조끼 같은 취미를 늘 구비해둬야 한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크루들은 도하라는 곳에서 타향살이 중이다. 나고 자란 문화와 나라가 다르더라도 가족과 친구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며 도하에서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로 느끼는 감정은 다 똑같은 입장이다. 그래서 크루들은 자신의 성격에 맞게 운동, 요리, 언어 공부, 길고양이 돌보기, 맛집 탐방 등 저마다의 취미가 있다. 나 역시 운동, 뜨개질, 요리, 독서, 동물 다큐 등으로 부정적 감정이 스며들 수 없게 몸과 마음을 부산하게 움직인다.


사실 기분이 울적해질 때면 몸을 움직이는 게 쉽지가 않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나를 헬스장에 데려다 놔야 한다. 옷 갈아입고 운동화로 갈아 신는 그 행위조차 힘들어서 어떤 때는 입고 있던 목 늘어난 티셔츠와 무릎 부분이 다 튀어나온 바지 그대로 슬리퍼를 신고 간 적도 있다. 대개는 일단 헬스장에 도착하면 뭐라도 하게 되지만 어떤 날은 헬스장에 도착해서도 너무 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러닝머신 위에서 세월아 네월아 걷거나 자전거라도 탄다. 거창한 거 아니더라도 일단 몸을 그렇게 움직이면 신기하리만큼 기분이 나아진다. 꼭 헬스장일 필요는 없다. 어떤 날은 잠옷을 입은 채 방 안에서 요가를 하기도 한다. 아니면 노래를 들으며 가볍게 산책을 하기도 한다. 요즘은 수영에 푹 빠져서 시간과 장소가 허락하면 수영을 하러 간다. 그렇게 몸을 움직이고 나면 내가 뭐라도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한결 산뜻해진다. 나아가 보잘것없고 앞이 막막한 것 같은 내 인생이 그럭저럭 괜찮아질 거란 희망이 생기는 진기한 경험을 한다.

두 번째로 아무 생각 없이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취미다. 뜨개질이 그렇고 베이킹이 그렇다. 라디오나 유튜브를 켜 두고 뜨개질을 하다 보면 나를 갉아먹던 잡생각들이 싹 사라진다. 가끔 지나친 고민과 생각은 되레 삶을 어지럽힌다. 그래서 가만히 누워 생각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기보다 실과 바늘을 쥐고 아니면 밀가루를 잔뜩 묻힌 손을 꼼지락 거리다 보면 잡생각이 말끔히 잊히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게다가 엉성해도 내가 만든 작품을 보면 만족감과 자신감이 솟아나는 것 또한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취미는 독서다. 문학을 읽으면서 타인의 삶을 통해 공감과 위로를 얻기도 하고 새로운 세계를 간접 경험할 수 있다. 비문학을 통해서는 지식을 얻기도 하고 나를 둘러싼 사회와 세상사를 이해할 수도 있다. 특히 자기 전 스탠드 불빛만 켜두고 고요하게 책을 읽는 시간이 정말 좋다. 책을 읽다 보면 하루의 스트레스도 잊어버리고 평온한 마음으로 잠을 청할 수 있다. 힘든 하루를 보낸 날이면 빨리 침대에 기대어 조용히 책을 읽고 싶어진다. 그 순간의 아늑함과 평온함은 정말 소중하다! 어떤 크루는 자기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항상 동화책을 읽는다고 했었다. 나는 그 크루의 그 순수한 취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승무원이라는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취미인데 바로 동물 다큐를 보는 것이다. 서비스업의 숙명이라지만 유난히 사람 때문에 힘든 날이면 퇴근 후 그 어떤 인간도 보고 싶지 않고 언어라는 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런 날이면 유튜브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뒤져서 동물 다큐를 본다. 특히 좋아하는 건 펭귄과 고래 등 해양 다큐인데 귀엽고 신비한 이 생명체들을 보고 있으면 가시처럼 돋아났던 부정적 감정이 점점 약해지고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라며 마음이 정화된다. 어렸을 때 아빠도 그래서 동물의 왕국에 그렇게 집착했던 것일까. 거의 반수면 상태에서도 내가 채널을 못 돌리게 하면서까지 말이다.

물론 이렇게 많은 취미로 꽉꽉 채워도 파고드는 틈새의 우울감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취미의 방어력은 꽤나 강력해서 전체적인 삶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에 큰 힘이 된다. 건조하고 삭막한 도하의 삶은 오늘도 취미로 가득 채운 하루 덕분에 꽤 괜찮은 곳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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