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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타샤 Jul 29. 2024

새벽 5시,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시간

새벽 4시 30분

이제 막 랜딩을 하고 마지막 남은 에너지로 모든 승객에게 인사를 하고 나면 어깨에 올려져 있던 긴장이 풀리며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모든 승객이 하기한 기내는 폭탄을 맞은 듯 엉망이다. 담요와 헤드셋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고 바닥엔 과자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다. 얼른 퇴근을 하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담요를 모아 담고 갤리(비행기 내의 부엌)에 있는 물건을 정리한다. 8시간 동안 쌓인 쓰레기 박스와 수납공간마다 꾸역꾸역 넣어둔 각종 물품들을 모두 꺼내 기내 문 앞에 쌓아 두면 오늘의 비행이 드디어 끝이 난다. 기내화와 앞치마, 비행 내 썼던 개인용 텀블러를 기내 가방에 넣고, 핸드백을 챙긴 뒤 유니폼 재킷을 입고 아이디를 목에 걸치면 이제 이 기내를 벗어날 준비가 된다. 기내를 떠나기 전 화장실에 잠깐 들어가 손을 씻고 거울을 본다. 곱게 칠했던 화장은 어디 가고 밤샘 비행으로 눈은 퀭하고 다크서클은 턱 끝까지 내려온 상태다. 밤비행의 고단함이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읏차!’ 기합소리와 함께 기내 가방을 들어 올리며 크루버스에 올라탄 뒤 피로가 묻은 한숨을 내뱉는다. 녹초가 된 몸을 기댄 채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니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에 맞춰 빛이 밝아 온다. 그 시간이 되었다.


새벽 5시.

줄 지어 주기된 비행기를 따라 주변이 살아 움직이는, 모두가 깨어나는 가장 분주한 시간이다.





공항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거대한 비행기들이 줄지어 서 있는 주기장이다.

일반 여행객들은 이 비행기 주기장의 앞 쪽, 즉 체크인 카운터와 식당, 면세점을 이용하고 보딩을 위한 앞문을 이용하는 반면, 승무원을 포함한 조종사, 케이터링, 기내 청소부, 엔지니어 등 비행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뒷 쪽을 통해 실제 비행기가 주기되어 있는 사이로 일을 하기 위해 다닌다. 이 뒷 쪽에는 승무원과 조종사들이 체크인을 하고 짐을 부치는 곳이 있는데, 우리 항공사에서는 이를 오퍼레이션 센터(Operation Center)라고 부른다. 여기서 체크인하고 자동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한 후, 크루버스를 타고 그날 일하게 될 비행기가 주기 되어있는 곳으로 향한다.

반대로 도착한 크루들은 비행기에서 내려 크루버스를 타고 수십대의 비행기들 사이를 지나 이 오퍼레이션 센터로 와서 퇴근을 한다.


이 공항의 뒤 쪽은 일반 여행객들이 주로 보는 평화로운 공항의 모습이 아니라 시간을 다투고 수십 명이 큰 소리로 외쳐가며 이륙과 착륙을 준비하고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는 삶의 현장이다. 비행기 한 대의 이륙을 위해 케이터링부, 청소부, 엔지니어부, 지상직 직원들, 승무원, 조종사 등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한 팀이 되어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동시다발로 왔다 갔다가 하며 일하는 터전이다.


우리 항공사는 하루에도 수백 대의 비행이 있는데, 이 스케줄은 크게 아침 출발과 자정 출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유럽과 미주, 아프리카는 보통 아침 7시~9시 사이에 출발을 하고, 아시아와 몇몇 미국과 아프리카 등은 새벽 1~ 3시 사이에 출발을 한다.(중동과 인도대륙의 비행은 늦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르게 퍼져있다.)

보통 아침 8시 출발이라면 보통 3~4시간 전인 새벽 4시~5시부터 비행기 출발 준비를 위해 직원들은 바쁘게 일을 한다. 게다가 이 시간에는 아시아에서 출발한 비행기들이 착륙하는 시간과 겹쳐서 오페레이션 센터는 출근하는 승무원들과 퇴근하는 승무원들로 바글바글 거린다.


새벽 5시, 누군가는 아직 한밤 중일 이 시간, 하마드 공항의 뒤 쪽은 수백 대의 비행기의 이륙을 준비하고 착륙을 정리하는 사람들로 정신없이 돌아간다.


새벽 4시쯤 일어났을 잠이 덜 깬 승무원과 조종사들은 오퍼레이션 센터에서 체크인을 하고 짐을 부친 뒤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한다. 그 뒤로는 오늘 타고 갈 비행기까지 이들을 데려다줄 크루 버스가 수십대 대기 중이다. 크루 버스를 관리하는 직원들이 서로 무전을 통해 소통하며 승무원들에게 버스를 배정해 주면 출근 혹은 퇴근을 도와주는 크루 버스 수십대가 정신없이 오간다. 그 틈으로 죽상으로 출근하는 승무원들과 지친 얼굴로 퇴근하는 승무원들이 스쳐 지나간다.

크루 버스가 비행기가 주기된 곳을 향해 가는 길엔 기내식을 실은 냉장 트럭 뒤로 소시지처럼  줄줄이 연결된 기내 물품을 실은 트럭이 각 비행기로 가기 위해 열심히 달린다. 맞은편에는 막 착륙한 비행기에서 쓴 물건과 쓰레기를 한가득 실은 트럭들이 청소부 건물을 향해 달린다. 여행객의 가방을 쌓아 올린 트럭들이 부지런히 각 비행기를 향해 달려가고 주유 트럭들이 저마다의 비행기 옆에서 주유를 한다. 엔지니어를 실은 차량이 여기저기 바쁘게 다니고 그들의 무전과 핸드폰은 끊임없이 울려댄다.

비행기의 연착은 상상초월의 경제적 손해와 엄청난 추가 업무를 불러오기 때문에 이륙에 필요한 모든 직원들이 정시 이륙을 위해 초단위로 시간을 계산하며 움직인다. 형광색 조끼를 수십 명의 청소팀은 기내를 재빠르게 청소하고 동시에 케이터링은 방금 끝난 비행기의 물건을 빼고 새 비행에 필요한 음식과 물품을 챙겨 넣는다. 기내 음식과 물품들은 메탈 소재의 카트와 박스에 실리는데 워낙 빠르고 쉴 새 없이 움직이다 보니 귓가엔 메탈이 부딪히는 소리로 귀가 째질 듯하다. 그것뿐이랴, 서로서로 빨리 하라고, 비키라고,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여기저기서 부르는 소리까지 뒤섞여 정신을 쏙 빼놓는다.

먼저 청소팀이 끝나고 그다음 케이터링, 그다음 엔지니어, 그리고 크루들이 들어가면 좀 좋으련만 그건 어쩌다 일어나는 일이고 대부분의 경우 동시에 들어가서 서로의 소리와 몸이 부딪히며 짜증과 이해가 섞인 채로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혼을 쏙 빼놓는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나면 승무원들은 빠르게 기내 안전과 보안 점검을 하고 조종사들과 함께 오늘 비행에 대해 다 같이 짧은 회의를 한다. 그 후 승무원들은 헤드셋과 어매너티를 준비하고 그날의 갤리 담당 승무원은 몇 백명의 기내식을 세고 물건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 와중에 지상직 직원들은 빨리 보딩을 시작하라고 재촉하고, 케이터링 직원과 청소직원은 사무장의 승인을 기다리니 사무장의 마음이 바빠진다.

보딩이 시작되고 모든 크루들이 승객들 틈에 껴 왔다 갔다 하며 밝은 얼굴로 승객들을 맞이하고 그라운드 서비스를 하며 오버헤드빈을 정리한다. 정신없이 보딩을 끝내고 출발에 더 이상 문제가 없다면 문을 잠그고 안전방송을 튼다. 이제 승무원들이 어질러진 갤리를 빠르게 정리하고 화장실을 포함한 기내의 안전을 최종 점검하면 비행기는 런웨이를 향해 천천히 이동한다. 그다음 비행기는 폭발적인 속도로 힘차게 런웨이를 달리다 부웅 떠오르며 이륙을 하고 오늘의 여행을 시작한다. 그 비행기 뒤로는 똑같이 정신없는 상황을 무사히 마친 비행기들이 순차적으로 이륙을 시작하고, 역시나 똑같이 수십 명의 직원들이 물도 한 잔 제대로 못 마시며 이륙 준비를 마친 비행기가 저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활주로로 들어선다.




분주했던 하마드 공항의 아침이 그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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