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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세우기 스톱

내가 사는 샌프란시스코에 부모님 다녀간 후기

by 김붕어

예외 없이 비교해서 줄 세울 수 있는 것들은 편리하다. 뭐가 더 상대적으로 크고 작은 지 바로 보인다. 20살은 30살보다 어리고, 10억 원은 1억 원보다 많고, 서브3 마라톤 페이스는 서브4 마라톤 페이스보다 빠르다. 숫자, 돈, 효율 같은 개념들은 다 이렇게 줄 세울 수 있다.


편리하게 자주 쓰다 보면 그 개념들은 사물이 아니라 사람에게까지 찰싹 달라붙는다. 이런 말들을 하게 된다. 20대 여자는 30대 여자보다 어리고, 10억 모은 사람은 1억 모은 사람보다 돈이 많고, 서브3 마라톤 러너는 서브4 마라톤 러너보다 빠르다. 아무리 객관적인 비교일지라도 감히 대상 삼아 비교하지 않던 존재들은 빠르게 사라진다. 요새 초딩들이 말하는 것처럼. 야, 우리 부모가 너네 부모보다 돈 많아.


큰 스케일에서 보니, 그 편리함은 힘이 센 것으로도 판명 났다. 그 힘으로 많은 이가 생각하는 방식을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바꿔버렸다. 줄 세울 수 없는 것들도 대충은 줄 세울 수 있다고 설득해버렸다. 부모? 100억 가진 부모가 10억 가진 부모보다 당연히 낫고, 10억 가진 부모가 1억 가진 부모보다 그래도 낫지. 결혼 상대? 결혼은 현실이야. 육각형으로 점수 매겨서 따져 봐야지.


성역 없이 여러 존재를 숫자로, 나이로, 가진 돈으로, 가성비로, 투자 대상으로 비교하고, 비교할 수 없는 것들도 딱 잘라 비교하는 생각과 말의 위력은 그걸 휘두를 때는 잘 모르지만 그 펀치를 맞을 때 비로소 실감한다. 예전에 데이팅 앱에서 만난 상대가 말했다. 아. 넌 빅테크에서 일하는데 그 나이에 모은 돈이 그거뿐? 그럼 부모 지원은 얼마나?


저런 무례한 말을 하는 사람은 피하면 그만이었지만, 쉽게 피할 수 없는 것은 이것이었다. 그런 생각과 말들은 결국 내가 나를 스스로 패버리게 했다. 기왕이면 뭐든 많이, 빨리, 쉽게, 일찍 하면서 늘 다음 것으로 질주하는 게 좋은 것이고, 그 외의 방식은 경기를 조기 이탈하거나 결국 패배할 코스처럼 느껴지게 했다. ‘성장해야지’라는 채찍질을 계속 자신에게 때리게 했다.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더라도 문제였다. 더 성장할 수 있는 자기 자신과의 비교가 끊임없었다. 그 비교에도 부작용이 있었다.


아마도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 난 저 늪에 빠져버린 것 같다. 유학을 처음 온 고등학교 때는 알지 못했는데, 대학교에 가서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는 사실상 경제적으로 내게 올인했다는 것을. 둘 다 고졸인 엄마 아빠는 자식인 내게 기꺼이 자기들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내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걸 받아 감사한 나는 동시에 부담도 느꼈다. 그 부담감을 들고 대학교 시절을 포함한 20대 전체를 질주하듯 통과했다. 뭐든 많이, 빨리, 쉽게, 일찍 하려고 자기 계발에 열을 올렸다. 성장, 컴온! 효율 개선, 컴온! 다음 목표, 컴온!


컴온 컴온 거리며 학점 따고, 졸업하고, 취업하고, 비자 받고, 이직하고, 승진하고, 영주권 받은 내가 결국 도착한 곳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곳이었다. 내가 이룬 건 다 내 덕분이라는 착각에 빠졌고, 나 스스로에게 늘 너그럽지 못했고, ‘노오력’ 하지 않아 보이는 남에게도 박했다. 그 박함은 결국 부모에게까지 향했다. 배민, 쿠팡 주문을 할 줄 모르다니. 보이스 피싱에 속아 이상한 앱을 순순히 깔고 휴대폰 전체를 털려버리다니. 입국 심사가 두려워서 미국 방문이 꺼려진다니. 노후 준비도 포기하고 자식 둘에게 전부 줘버리다니. 객관적으로, 이런 것도 못하고 안 하는 사람이 있나? 너무 심한 거 아냐?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사실 아직도 그런 생각의 스위치를 완전히 꺼버린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제는 그게 지금 켜져 있다는 인지는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걸 늘 켜두고 싶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건 회사 일이나 주식 투자를 할 때나 켜두면 될 일이었다. 평상시에는 꺼 두기로 했다. 나도 모르게 켜지면 그 켜짐을 인지해서 끌려고 애쓴다. 아. 내가 또 줄 세우고 있구나. 줄 세울 수 없는 것도 납작하게 눌러서 비교하고 있구나. 공장 돌리면서 비즈니스 하듯 자기 경영 모드가 온 이구나. 링 밖에서 나한테, 남에게, 부모에게 맨주먹 펀치 날리는 내 안의 마크 타이슨, 스톱!


다행히 7년 만에 미국에 14년 만에 샌프란에 방문한 부모님이 왔을 때, 그 스위치는 잘 작동했다. 나도 모르게 스위치가 켜진 첫 주에는 마크 타이슨이 나댔고, 나는 부모님을 매일 일정 두세 개씩 ‘가이드’했다. 아니. 피곤하다는 두 분을 끌고 다녔다. 엄마 아빠, 여기 어때? 날씨 좋지? 음식 맛있지? 나파 좋지? 집 좋지? 뷰 좋지? 7년 만에 여기서 보니 나 잘 살고 있지? 그렇다고 말해줘요? 네?


두 번째 주에는 스위치를 잘 끄고 다녔다. 하루에 소소한 컨텐츠 하나 정도 즐기면서, 그냥 평소 사는 모습을 보여드렸다. 아빠 엄마는 뭐 비싼 것보다, 유명한 것보다, 많이 하는 것보다 그게 딱 좋았다고 하셨다. 나도 그렇게 느꼈다. 우린 다같이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뒷산을 산책했다. 엄마랑 나는 기다란 막대기를 하나씩 주워서 태어나서 처음 칼싸움을 했다. 엄마는 앞서 걸어가는 아빠 엉덩이를 막대기로 쿡쿡 찌르면서 말했다. 내가 이 인간이랑 삼십몇 년 어떻게 살았나 몰라. 너넨 잘 살아라. 폰 보면서 걷던 아빠는 뒤돌면서 외쳤다. 아이. 이 사람아, 그러지 마. 그러다 자기 엉덩이를 찌른 게 엄마 손에 들린 막대기란 걸 보고 웃으셨다. 우리 넷 다 깔깔 웃었다.


한 2주 정도 여기서 지낸 부모님이 한국에 가셨다. 우리 집엔 다시 나 와이프 고양이 워토 셋이 남았다. 요즘 워토는 내가 서재로 재택 출근할 때 자기도 서재 창문 앞으로 온다. 유투브에 풍덩 빠진 사람처럼 거기서 뒷마당에 오는 새, 다람쥐, 노루, 길냥이, 카요티를 하루 종일 본다. 가든TV 채널에 좋댓구알 다 박은 것 같다.


일하다 가끔 나도 그 창문 앞에 누운 워토를 본다. 그때 워토는 그냥 워토로 느껴진다. 얘 한 달 밥 값이 얼만지, 밥 값은 하는지, 그래도 외모가 10점 만점에 한 7점이니까 밥 값 안 해도 괜찮은지, 뭐 이런 생각들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게 참 다행이다. 아직, 고양이를 줄 세울 정도로 전두엽이 박살 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워토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털은 제발 좀 덜 빠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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