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연구 시장의 구조적 모순,..

그리고 신생 업체가 찾아야 할 돌파구

by natflat

엔지니어링업 등 학술연구 용역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려는 업체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경력이 있어야 일을 따낼 수 있는데, 일을 따내야 경력을 쌓을 수 있다”는 순환 논리의 벽 앞에서 많은 이들이 좌절을 경험합니다. 이 글에서는 헤겔의 변증법적 사고를 중심으로, 푸코의 권력론과 부르디외의 자본 이론을 함께 엮어 이 문제를 분석하고 실질적인 돌파 방법을 모색해보려 합니다.


현재의 질서: 검증된 것만을 선호하는 시스템

지금의 학술연구 용역 시스템은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정부나 공공기관은 사업 실패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박사급 인력과 수행 실적을 핵심 평가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러한 접근에는 나름의 합리성이 있습니다. 과거의 성과가 미래의 역량을 어느 정도 보증한다는 논리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미셸 푸코가 말한 ’규율 권력(Disciplinary Power)’의 작동 방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푸코는 현대 사회의 권력이 직접적인 억압이 아니라 표준과 규범을 통해 작동한다고 보았습니다. 학술연구 시장에서 ‘박사 학위’와 ‘수행 실적’이라는 기준은 겉으로는 합리적인 평가 지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행위자들만이 진입할 수 있는 배타적 규범으로 기능합니다. 이 규범은 새로운 진입자를 걸러내는 ‘보이지 않는 검문소’가 되어, 시스템 내부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합니다.


동시에 피에르 부르디외의 ‘문화자본(Cultural Capital)’ 개념도 여기서 작동합니다. 부르디외는 사회적 성공이 단순히 경제적 자본만이 아니라 학력, 인맥, 평판 같은 문화자본에 의해서도 결정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학술연구 시장에서 ‘박사 학위’는 단순한 자격증이 아니라 학계라는 특정 장(field) 안에서 인정받는 상징자본입니다. 신생 업체가 아무리 실질적 역량을 갖추었다 해도, 이 상징자본 없이는 시장에서 정당한 행위자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결국 이 시스템은 자본이 자본을 재생산하는 구조, 즉 이미 가진 자만이 더 가질 수 있는 닫힌 회로를 만들어냅니다.


신생 업체가 직면한 구조적 딜레마

신생 업체는 이 시스템 안에서 근본적인 모순에 부딪힙니다. 제도는 경력 있는 박사급 인력을 요구하지만, 신생 업체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참여하려면 경력이 필요한데, 경력을 쌓으려면 참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는 조셉 헬러의 소설 ’ 캐치-22(Catch-22)’에서 이름을 딴 논리적 모순입니다. 원래 이 개념은 “정신이상자만 전투에서 제외될 수 있지만, 전투 제외를 신청하는 행위 자체가 정상이라는 증거이므로 제외될 수 없다”는 역설적 상황을 묘사합니다. 학술연구 시장에서 신생 업체가 마주한 상황도 정확히 이와 같습니다. 시장 진입의 조건이 바로 진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제도를 탓하는 데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고통스러운 현실이 기존 시스템이 포괄하지 못하는 빈틈과 혁신의 필요성을 발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헤겔의 변증법에서 ’반(Antithesis)’의 단계는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기존 질서의 한계를 드러내는 생산적 모순입니다. “왜 우리는 안 되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어떻게 다르게 접근할 수 있을까”라는 성찰로 이어져야 합니다.


돌파구: 경계를 넘어서는 전략적 전환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열쇠는 기존 규칙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형식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있습니다. 헤겔이 말한 ’지양(Aufheben)’은 단순히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요소를 보존하면서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변증법적 행위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 가지 방향의 전략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인력 문제는 소유의 개념에서 공유와 연대의 모델로 전환함으로써 풀어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가 제시한 ‘리좀(Rhizome)’ 개념이 유용합니다. 리좀은 나무처럼 중심에서 가지가 뻗어나가는 위계적 구조가 아니라, 감자 뿌리처럼 어디서든 연결되고 증식할 수 있는 수평적 네트워크를 의미합니다. 박사급 인력을 직접 고용하여 조직 내부에 수직적으로 배치하는 대신, 프로젝트별로 전문가를 결합하는 네트워크형 조직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외부 박사급 인력을 비상근 자문위원이나 파트너로 영입하여 컨소시엄 형태의 협력 구조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이는 내부 인력 부족이라는 한계를 외부 자원과의 유연한 결합으로 승화시키는 전략입니다. 리좀적 구조의 강점은 중심이 없기에 어느 한 부분이 차단되어도 다른 경로를 통해 연결될 수 있다는 회복탄력성에 있습니다.


둘째로 경력의 개념을 재정의해야 하는데, 여기서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 개념을 빌려올 수 있습니다. 쿤은 과학의 발전이 기존 패러다임 안에서의 점진적 축적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관점의 등장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업체 차원의 공식적인 경력이 없다면, 구성원 개인의 비제도적 성과나 특화된 전문성을 기업의 역량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요구하는 거대한 연구 과제라는 기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매우 작고 구체적인 마이크로 트렌드나 신기술 분야의 연구를 선점하는 것입니다. “큰 일은 못 해도 이 작은 분야만큼은 우리만 할 수 있다”는 대체 불가능성을 확보하면, 그것이 곧 새로운 패러다임에서의 선점 효과가 됩니다. 부르디외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기존 장(field)에서 인정받는 문화자본을 축적하기 어렵다면 새로운 하위 장을 창출하여 그곳에서 선구자로서의 상징자본을 구축하는 전략입니다.


셋째로 직접 입찰이 어렵다면 우회로를 통해 실적을 축적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War of Position)’ 개념과 맥을 같이합니다. 그람시는 직접적인 권력 장악(기동 전) 이 어려울 때, 시민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점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진지전 전략을 제안했습니다. 대형 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하도급 파트너로 참여하여 실질적인 연구 실무를 담당하는 것입니다. 1순위 낙찰자는 아니더라도, 실제 연구를 수행하면서 레퍼런스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기적 자존심을 내려놓고 장기적 생존과 성장을 선택하는 실용적 결단입니다. 푸코적 관점에서 보면, 권력의 중심부를 직접 공략하기보다 권력 네트워크의 가장자리에서부터 침투하여 점차 정당성을 획득해 나가는 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연한 사고로 구조를 재해석하기

니체는 “탈피하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변화의 필요성을 넘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극복하고 재창조하는 ’위버멘쉬(Übermensch)’의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니체에게 진정한 힘은 기존 가치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능력에서 나옵니다. 신생 업체가 성장하려면 기존 입찰 제도의 표면적 요구사항에만 매몰되지 말고, 본질을 꿰뚫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합니다.


직접 소유하지 말고 연결하고, 정면 돌파가 어렵다면 우회하여 증명하며, 가장 작은 분야에서 압도적인 전문가가 되는 것. 이는 노자의 ‘무위이화(無爲而化)’ 사상과도 통합니다. 노자는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흐른다”라고 했습니다.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유연한 것이 굳은 것을 이기는 법입니다. 기존 시스템과 정면충돌하기보다, 그 시스템의 빈틈과 흐름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전략적 사고입니다.


이 과정 자체가 신생 업체가 겪어야 할 변증법적 성장통입니다. 헤겔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신은 고통을 통해서만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발전합니다. 지금의 부족함을 단순한 결핍으로 보지 말고 성장의 잠재적 에너지로 전환하여, 기존 시스템을 활용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부르디외가 말했듯, 장(field)의 규칙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 규칙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하위 장을 창출하는 이중 전략이 필요합니다.


현재 검토 중인 구체적인 연구 분야나 입찰을 고민하는 공고가 있다면, 그 상황에 맞춰 더 구체적인 컨소시엄 구성 전략이나 제안서 차별화 방안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철학적 사유가 추상적 유희로 끝나지 않고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지양’이 완성됩니다.​​​​​​​​​​​​​​​​


* 원고의 내용과 이미지는 AI 도움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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