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비용’이라는 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기회비용’이란 경제학의 주요개념으로 한정된 자원 안에서 우리는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으며, 선택된 하나의 비용은 포기한 다른 것에 대한 기회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비단 경제학에서만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적용된다.
박이문(朴異汶, 1930~2017)선생님의 저서인 『하나만의 선택』은 한 인문학자의 궤적을 통해 인간의 실존주의적 고민과 주체성을 보여줌으로써 무엇이 진정한 선택인가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도록 해준다.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박이문 선생님의 책을 한 권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필자도 『노장사상』, 『예술철학』『철학이란 무엇인가』등의 책 몇 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올해 초 갑자기 ‘박이문 인문학 전집’이 눈에 들어왔다. 소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보자마자 전집을 구매했고, 열권 중 맨 앞에 자리한 책이 바로 『하나만의 선택』이었다.
이 책은 선생의 자전적 성격의 글들을 엮어서 자서전의 기록으로 묶은 것으로 시골소년이 80대의 노학자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개인의 역사 및 철학적 성찰, 사유를 보여준다.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석사학위를 받은 뒤 바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전임교수로 발탁되었으나, 안정된 교수의 생활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나 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선생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그는 자신의 삶의 근본적인 목적을 학문에 두고, 고독하고 치열하게 그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했다. 선생의 공부는 문학으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모든 학문과 사유는 철학으로 통한다는 것에 통감하며 종국에는 철학을 공부하고, 작가이자 철학자인 인문학자로 살았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평생을 정신적 탐구와 각성을 지속해온 그에게 사회적, 관직적 성공은 또 다른 기회비용으로 본능에 얽매인 외형적인 성공에 불과했다. 선생 인생의 목표와 가치는 철저하게 투명한 지식을 갖추고, 진실 되고 도덕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데 있었다.
정말 지식인, 정말 학자가 되고 어떤 문제에 대해 발언하려면 이런 것들을 모두 알아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수록 내게는 나의 길이 너무나도 아득해 보였고, 여러 가지 여건으로 보아 처음부터 좌절감을 느끼고 나의 뜻을 단념해야 한다는 안타까움에 시달렸다. 과거와 현재에 걸쳐서 적지 않은 사람들, 아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같이 방대하고 깊은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나로서는, 그들과 같은 지적 경지에 결코 이를 수 없다는 사실에 내 자신의 ‘운명’을 탓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박이문, 『하나만의 선택』, 미다스북스, 2016, 359~360쪽.
‘무의식속에 내가 쓴 글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 선생의 글과 이야기는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느꼈을 자괴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학위를 받고 학문에 있어서 자신의 부족함과 답답함에 대해 고뇌하는 모습은 ‘대가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면서 괜한 동질감에 무릎을 치게 되기도 하고, 6.25, 정치적 테러, 가난했던 유학시절, 경제적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1970년대의 한국을 보면서 느낀 나라에 대한 슬픔과 그로부터 기인된 허무주의에 동감하게 된다. 선생은 프랑스와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11년 만에 돌아온 서울에서 한 사회의 사장으로, 중견으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자리 잡고 있는 친구들을 보고 한편으로 초라함과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자신이 선택한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어떠한 인생이 참다운 인생이며, 뜻있는 삶인가를 결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살아가는 길이 있고 인생에는 많은 종류의 할 일과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그 인생의 보배를 모두 다 동시에 소유할 순 없다. 박이문, 『하나만의 선택』, 미다스북스, 2016, 27쪽.
선생은 보편적으로 성공한 삶이라고 여겨지는 사회적 성공과 안정 대신 지적 환희와 희열을 경험하면서 자신만의 구도의 길을 걸어갔다. 논문을 포함해 펴낸 책은 100권이 넘고 60여년 가까이 강단에 서며 팔순이 넘어서도 글을 썼다.
소설가 황경신은 꿈이 이루어지는 미래를 갖고 싶다면 포기하고 타협하는 마음은 버려야 하듯이 무언가를 갖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먼저 버려야 함을 말한다. 너무도 자명한 인생의 진리이지만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은 욕심과 사회가 정해놓은 잣대, 외부의 시선은 내가 옳다고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에 대한 선택을 흐리게 하고 그 신념을 의심하게 만든다. 인생의 보배를 모두 다 동시에 소유할 수 없다는 선생의 말처럼 삶에는 기회비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무엇인지 알고, 어떤 종류의 인생을 살 것인가. 갖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부러워하기 보다는, 내 삶에서 의미를 찾고 가치를 부여하고자 하는 선생의 사유는 우리가 늘 되새겨야 할 태도일 것이다.
이 글은 2022년 7월 15일 <웹진 오늘의 선비>에 기고한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