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 모순

by 마징가

1998년 발표된 양귀자의『모순』은 최근에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소설이다. 오랜 시간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 소설은 주인공 안진진을 통하여 인생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해준다. 소위 요즘 표현대로 뼈를 때리는 문장들과 표현들, 쉽게 읽히지만 계속 곱씹어 보게 되는 내용들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십대 중반의 여주인공 안진진, 주변 인물들과 그 관계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인생의 다양한 모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주인공의 독백으로 진행되는 소설은 주인공의 반성과 사색일 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전이(轉移)된다. 책 속의 다음의 문장들은 자기중심적이고 편협한 삶의 모습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양귀자,『모순』, 서울: 도서출판 쓰다, 1998, 21쪽.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양귀자,『모순』, 서울: 도서출판 쓰다, 1998, 127쪽.


무의식중에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왜 항상 나는 잘 되어야 하고, 나의 아주 작은 결핍은 왜 이리 크게 느껴지는가. 나의 불행은 크고, 다른 사람의 불행은 잘 보이지 않는 것인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틀 밖에 있는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기 자신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며,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주도적인 삶,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하면서도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객관성을 유지하는 태도가 필요함을 되새기게 하는 부분이다. 이와 같은 주인공의 독백은 인간의 나약함과 역설적인 행동을 보여주며, 소설 속 여러 상황들과 주변 인물들, 그리고 주인공의 선택은 모순으로 점철된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양귀자,『모순』, 서울: 도서출판 쓰다, 1998, 296쪽.


인간은 자신이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는 작가의 말처럼 자신의 신념과 행동이 한결같기를 바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아크라시아(Akrasia)’와 연관 지어 이해할 수 있다. 아크라시아는 도덕철학의 개념으로 ‘사람이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지만, 그것을 따르지 않는 행동’을 말한다. 우리는 때때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에 반대되는 것, 혹은 자신이 이성적으로 더 나은 것이라고 판단한 것보다 오히려 못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한다. 이는 자신의 합리적 선택을 따르지 않는 것이 더 나은 대안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유 없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김남준, 「아크라시아 가능성 논쟁: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철학논총』, Vol.62, No.4, 2010, 4쪽 참조.) 이러한 아크라시아 현상은 철학자마다 각기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철학적 난제(aporia)이지만, 일상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이다.


중국 초나라 상인이 창과 방패를 팔면서 외치던 말에서 유래된 말인 ‘모순(矛盾)’은 서로 어긋나서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 두 대립물이 공존하면서 맺는 상호 관계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는 작가의 말과 같이 모순은 늘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절대적인 행복과 절대적인 불행은 없다. 우리는 늘 모순적인 상황과 모순적인 선택 속에서 살아간다. 인생은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한 모순적인 선택과 그 상황들로 하여금 시행착오가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다.


이 글은 2024년 4월 12일 <웹진 오늘의 선비>에 기고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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