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는 원에서 시작한다

by 나탈리


해외여행을 가면 꼭 도자기를 구매했다. 그 장소에서만 구매하는 맛이 있어서다. 예를 들면, 베를린에서는 주말마다 벼룩시장이 열린다. 그중에서 Mauerpark fleamarket을 방문했는데, 빈티지 디저트 접시 두 피스를 아주 만족스러운 가격에 구매했다. 더불어 디저트 접시에 대한 주인의 추억도 들었다. 그녀는 대학생 때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갔다가 마음에 들어 구매한 접시라고 했다. 짐을 정리하다가 발견했고, 아이들이 더 이상 쿠키를 찾지 않을 때까지 자주 사용했다고 한다. 여기에 추억을 더하자면, 이 날 미국의 유명한 TV쇼 진행자 코난 오브라이언과 같은 공간에 있었다. (역시 덕후는 계를 못 탄다고, 그를 마주치지는 못해서 아쉬웠다.) 런던에서는 포트넘 앤 메이슨에 들렀다. 애프터눈 티를 시간이 허락한 만큼 즐긴 뒤, 아래층으로 내려가 쇼핑했다. 갖고 싶었던 빈티지 제품을 무려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하고, 그 당시 신상이었던 시리즈도 구매했다. 양손 무겁게 돌아왔지만,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


도자기 수집은 취미생활로 이어졌다. 집 근처 도자기 공방에 다니면서 머그컵이나 계란 컵 같은 작은 오브제들을 만들었다. 작품은 전부 핀칭 기법으로 만든다. 핀칭할 때는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타원형 상태의 흙을 필요한 만큼 잘라 원이 되도록 뭉친다. 판이되는 부분은 원을 유지하며 밀대로 밀고, 높이가 필요한 부분은 코일을 쌓아 만든다. 원형 접시든 사각 접시든, 원에서 시작한다.


도자기는 원에서 시작한다. 사람의 성격 같다. 성형하는 방식에 따라 정제된 모양, 자연스러운 모양, 꼬임, 각진 모습 등으로 달라진다. 처음 사회생활을 했을 때, 나는 찌그러진 도자기 같았다. 이런 것도 못 하냐고 혼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백지상태라 모르는 게 당연한데 말이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능력 있는 AE들도 아무런 이유 없이 혼나곤 했다. 폰트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도형을 사용한 이유가 모호해서다. 사람들 없을 때 해도 되는 말들을 꼭,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하곤 했다. 특히 남자 대리님에게 심했는데, 별 것 아닌 걸로 또 심한 말을 들은 날, 그의 얼굴이 깨진 도자기처럼 보였다.


두 번째 회사는 조금 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퇴사 후에도 친하게 지낼 정도로 동료들과 마음이 잘 맞았다. 같이 일했던 기획자를 제외하고. 그녀는 날카롭게 각진 삼각 접시 같은 성격으로 틈만 나면 아직 건조 중인 나를 찌르곤 했다. 대체로 무시했지만, 그녀가 찌른 곳에 구멍이 생기기도 했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니, 결단을 내렸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직했다. 망가진 도자기가 되고 싶지 않았다.


지금 회사에서 지낸 지 2년이 되어간다. 이곳에서 나를 만들어 간다. 자유롭지만 정제된 형태로. 다시 원부터 시작해 코일을 쌓고, 성형한다. 원하는 대로 안 돼서 힘들기도, 엄청난 업무량에 압박감을 느끼기도 한다. 감정은 코일이 되어 쌓인다. 지층처럼 경계진 마음을 꾹 누른다. 즐거움과 힘듦, 좌절, 성취감이 하나로 이어진다. 내가 어떤 도자기가 될지는 나 자신이 선택한다.


느낌은 불현듯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도자기는 원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느낀 뒤, 커리어를 돌아보았고, 이 흐름은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다시 보는 것으로 이어졌다. <케빈에 대하여>는 자유로운 삶을 살던 여행 작가 에바(틸다 스윈턴)에게 아들 케빈(에즈라 밀러)이 생기며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에바는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케빈을 달래기보다 공사장의 소음을 들으며 한숨 돌린다. 둘째 셀리아가 태어난 뒤, 케빈의 기행은 심해진다.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겉돌던 결국 케빈은 죄를 짓고 수감된다. 에바는 잘 나가는 여행 작가에서 살인자의 어머니가 된다. 넓은 집에서 단칸방으로, 외부와 접촉을 끊다시피 하지만, 유족에게 손찌검을 당하는 등 고통 속에 살아간다. 2년 후, 에바는 소년원에서 교도소로 이송될 케빈의 면회를 간다. 에바는 케빈에게 처음으로 묻는다.


“왜 그랬어?”

“...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모르겠어.”


사람은 만들어진다. 케빈과 에바는 남들보다는 조금 늦게 자신을 만들어간다. 자신만 생각하던 에바는 타인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케빈도 변할 것이다. 소년원에서 처음으로 에바와 케빈은 포옹한다. 그 순간 케빈은 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에바와의 포옹 이후, 케빈은 자신의 모습을 바꿔나갈 것이다. 이미 많이 갈라지고 틀어진 채로 굳었지만 새 흙을 바르고, 모난 부분은 깎아가며. 에바가 교도소를 나서는 길, 햇살 한 줄기가 비친다. 원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