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일이 널널할 땐 레퍼런스를 모아놓는다. 이 광고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보여준다'. 즉, 카피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려 글이 없는 광고를 좋다고 하다니. 의아하실 수도 있다. 카피라이터는 글만 쓰는 사람은 아니다. 이미지를 구성하기도 하고, 카피를 빼자고 말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오늘 레퍼런스를 모아놓은 파일을 보면서 나는 어떻게 해왔나 봤다. 음.. 아주 거리가 멀군.
잘 쓴 소설은 인물의 대사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준다. '말 보다는 행동'이라는 속담도 있듯, 행동이 백 마디의 말을 대신할 때가 많다. 광고도 그렇다. 상품을 파는 방법은 두 가지다. 감성 또는 설명. 그리고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감성을 선호한다. 그 제품들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을 표현하는 이유에서다. 그러니 무리해서라도 명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난 달 20일, 애플이 온라인 이벤트를 열었다. 요약하자면, 환경과 고용 평등에 지대한 관심이 많은 우리 회사가 새로운 M1칩을 넣은 제품을 선보입니다! 일단 써보세요. 좋아요! 온라인 이벤트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 ‘Introducing AirTag’ 영상이다. 이 제품은 지갑이나 열쇠, 가방 등에 걸면 위치를 스마트폰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이미 삼성에서 ‘스마트 태그’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제품이다. 같은 기능을 가진 제품이지만, 애플의 영상을 보니 구매 욕구가 샘솟는다. 일단 영상을 보시라.
주인공이 외출하기 전. “열쇠 어딨지?”라고 혼잣말을 한다. 아이폰이 안내해주는 곳은 소파 안. 이곳엔 그동안 흘렸던 무수한 10원 짜리와 아이팟, 리모콘 등이 보물처럼 쌓여있다. 소파를 탐험한 끝에 주인공은 열쇠 찾는 데에 성공한다.
매해 애플 광고가 나올 때마다 놀란다. 어떻게 매해 발전하지. 어떻게 저번보다 더 잘하지. 열쇠 찾는 게 뭐라고 1분 짜리 영상을 스킵도 안 하고 보게 만들지. 15초짜리 인스타그램 스토리도 5초 보고 넘기는 세상인데. 사실 이렇게도 만들 수 있었다. ‘열쇠를 잃어버리셨나요? 아이폰을 켜세요. 그리고 위치 찾기 앱을 실행하세요. 당신의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줍니다.’ 재미없지만, 메뉴얼처럼 만드는 방법이다. 어떻게 사용하냐는 문의에 답변할 일이 없어서 비용 효율적이다. (고 생각하는 브랜드도 있다.)
애플은 다르다. 이들은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아이맥의 첫 광고는 조지 오웰의 <1984>를 패러디했다. 윈도우 컴퓨터만을 사용하는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나와 벽을 부순다. 그리고 아이맥이 보여진다.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은 아이맥을 쓴다’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아이팟이 나왔을 때도, 아이폰이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애플은 쿨하고 멋진 사람들이 쓰는 브랜드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아이폰이 방수 기능이 좋다거나 스크레치에 강하다는 것도 말하지 않는다. 그냥 보여준다. 핸드폰이 스크레치가 나건, 액정이 부서지건 신경 하나도 안 쓰고 살 것 같은 남자가 나온다. 이 남자가 사용하는 건 아이폰. 요리도 상남자처럼 하는 그는 밀가루가 묻어도, 후추통을 액정 위로 떨어트려도 신경쓰지 않는다. 아이폰이니까.
이 영상 하나로 소비자들은 아~ 아이폰은 방수 방진도 잘 되고, 튼튼한가보다. 하는 생각을 갖는다. 브랜드들은 이 한 줄을 소비자들의 머리에 심기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쓴다. 애플은 이미 몇십 년 전부터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 왔기에, 오히려 쉽다. 이제는 큰 돈을 쓰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광고를 보러 온다. 아무리 거액의 예산을 들여 광고를 만들어도, 일방적으로 제품 스펙을 말하거나 장점만을 어거지로 보여준다면 이탈률이 높다. 차라리 그럴 땐 이 기능을 이렇게 씁니다. 하고 보여주는 게 낫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오늘도 지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