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에 대해 떠들어 보자 #1
이 글은 곧 삼십대에 접어 드는 아들과의 대화에서 영감을 얻었고, 아들 또래의 청년들과 현 유럽 몰락을 망국적 복지 때문이라는 '편견'을 가진 다른 분들을 위해 써 봅니다.
유럽이 복지 때문에 망하고 있다고? 그럴리가? 그런가? 아닌가?
젊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유럽 꼴 보면 복지 확대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일 안 해도 먹고사니까 다들 놀잖아요."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유럽의 몰락은 복지때문'이란 짧은 영상과 단문이 넘쳐나니, 마치 복지가 곧 국가 몰락의 주범인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 이야기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해보고 싶다. 틀렸다고 면박을 주려는 게 아니라, 진짜 복잡한 세상을 보는 눈을 함께 키워보자는 뜻에서 말이다.
유럽이 흔들리는 진짜 이유
요즘 유럽 경제가 어렵다는 건 시사에 약간의 관심만 있어도 다들 아는 사실이다. 독일은 2023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미국과 프랑스의 1인당 GDP 격차는 2008년 3천 달러에서 2022년 3만 6천 달러로 벌어졌다. 충격적인 숫자다. 그런데 이 격차가 왜 생겼을까? 역시 비현실적 판타지에 경도된 유럽의 망국적 복지 때문일까?
전문가들이 꼽는 유럽 침체의 핵심 원인은 복지가 아니라 인구 고령화, 혁신 부재, 그리고 달러 패권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이미 1990년대에 유럽의 낮은 출산율을 보며 유럽의 어려움을 예언했다고 한다. 혁신을 이끌 청년 인구가 줄어드니 새로운 산업이 태어나지 못하고, 미국의 빅테크가 유럽 시장을 장악해도 유럽은 규제로만 맞섰지 대항할 기업을 키워내지 못한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달러를 찍어 IT 산업에 쏟아부었지만, 유로화라는 공동 통화를 쓰는 유럽은 그만큼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것이 격차의 본질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최근 격한 시위에 시달렸던 프랑스의 경우는 대규모 감세 정책(부자 감세)으로 인한 세수 감소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정부 지출을 줄이지 못하고 오히려 기업 지원 보조금 등을 늘린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생산성 향상 및 노동 개혁 실패까지 겹치면서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가 급증했다. 이로 인해 내각 불신임과 같은 극심한 정치적 혼란이 초래되며 재정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복지 정책 때문이 아니라, 혁신이 없고 인구 구조가 무너졌기 때문에 유럽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스웨덴을 들여다 보자
누군가는 "그래도 북유럽이 고복지 고세금인데 문제 있지 않냐"고 물을 수 있다. 맞다, 어느 정도는 그렇다. 그런데 그 문제의 본질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먼저 북유럽 대표적 복지 국가인 스웨덴을 들여다 보자, 현재 스웨덴은 이민(난민 포함) 문제로 심각한 홍역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갱단이 증가하고 그로인한 범죄와 총기 사건이 빈번하다고 한다. 난 가끔 스웨덴에서 만들어진 액션 스릴러를 볼때 굉장히 생경한 느낌을 받았었다.
'아니 스웨덴에 저런 깽단이 있고 미국처럼 길거리에서 총격전을 벌인다고? 에이 설정이 과하네...'
그런데 이게 사실이었던 거다.
그러니까 현 스웨덴 사회의 문제 본질은 "복지가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이민자를 받아들인 속도에 비해 노동시장 편입과 사회 통합이 따라가지 못한 구조적 실패에 있다는 것이다. 이게 뭔 말이냐고?
스웨덴에서 이민자들에 대한 복지 혜택은 차별없이 공평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겉 보기는 스웨덴이 진정한 '공평 사회'처럼 보이지만, 실제 취업 시장에서는 이민자들은(그들의 2세들까지) 이름만으로도 면접 기회조차 못 얻는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될까? 이민 자녀에 대한 차별과 소외가 범죄로 이어진 것이다. 이건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통합의 문제다.
그럼 스웨덴은 왜 이민자들에게 문을 열어 줬을까? 스웨덴 사람들이 가진 넘치는 인류애 때문에?
물론, 유럽 시민들 의식이 우리는 물론 미국과고 남다르다고는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을, 타고 다니는 차를 의식할 때 그들은 '환경'을 이야기 하고 '공존'을 이야기한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일리는 없다.
스웨덴을 포함한 유럽의 인구가 우리나라보다 앞서 줄고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인구 감소율은 일론 머스크까지 거론할 정도로 위험할 정도로 가파르지만 스웨덴을 포함한 유럽은 비교적 조용하다. 이유는 이민과 난민 수용 정책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스웨덴을 포함한 유럽은 전후 경제 성장을 위한 노동력 부족 해소를 위해 주변 외국인 노동자(노동이민) 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경제를 떠받쳤다고 한다. 다수의 외국인 노동자는 노동력 해소에 큰 도움을 주면서 주택 수요를 높이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이는 유럽 특히 스웨덴 부동산 폭등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다. 결국 스웨덴의 기득권들에게 이민자와 난민 수용은 자신들의 부를 공고히 하는 큰 도구가 된 것이다.
이를 정리하면 스웨덴이 펼친 못 사는 나라 국민들에 대한 포용적 정책은, 경제적 필요(노동력 부족)와 인도주의·인권 가치가 결합하며 유럽에서 가장 관대한 난민 정책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인간들이 가진 본성 즉, 두 손에 가득 먹거리를 쥐고도 더 가지려고 옆 사람과 어깨 싸움을 하는 그 욕심, 낯선 이들에 대한 경계와 차별을 너무 간과한 것이다. 그 결과,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다.
그럼 노르웨이는?
그럼 노르웨이는 어떤가? 노르웨이가 현재 엄청난 부국이란 사실을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노르웨이는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큰 산유국이며 그를 이용해 세계 최대 수준의 국부펀드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석유 돈을 다 풀어 세금 없애자"는 포퓰리즘의 유혹을 뿌리쳤다. 오히려 높은 세금(고소득자 40% 이상)을 유지하면서 그 돈을 교육, 연금, 의료에 쏟아붓는 구조를 선택했다.
국민에게 직접 현금을 나눠주는 중동식 모델이 아니라,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노동 참여를 강하게 장려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 결과 노르웨이 고용률은 75%로, 한국보다도 높다. 복지와 근로 의욕이 충돌하지 않는다는 살아있는 증거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손해 보는 나라"라는 주장에 대해
요즘 고소득층 일부에서 이런 말이 자주 들린다. "소득세는 계속 올라가고, 상속세도 세계 최고 수준이고, 이러면 능력 있는 사람이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다." 언뜻 들으면 그럴싸하다. 하지만 이 주장을 조금만 파고들면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 빠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여기서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고액 연봉을 받는 사람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가. 좋은 공교육, 안전한 사회 인프라, 건강보험 덕분에 아프다고 파산하지 않는 환경, 이 모든 것이 세금으로 만들어진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그 토대를 허물어 가면서 "나는 내 실력으로 성공했으니 세금 낼 이유 없다"고 말하는 건 사다리를 올라가고 나서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래도 설득되지 않는다면 유튜브에 넘쳐 나는 대표적 '국뽕' 영상 하나를 떠올려 보자
'지구촌에서 가장 안전한(치안) 나라, 그래서 새벽에도 여자들이 산책을 할 수있는 나라, 한국'
아마 유튜브에서 한번쯤은 봤을 내용이며 한번쯤은 뿌듯했을 내용이다. 그런데 이 타이틀이 공짜로 이루어졌던가? 다 세금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복지가 곧 국민의 안전한 삶으로 연결된 다는 사실, 복지는 세금으로 이루어지며 내가 우리 사회에서 누리는 건강하고 안전한 삶은 곧 내가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한다. 아쉽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