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오만과 편견에 갈팡질팡하는 우리들
얼마 전 JTBC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중동 전쟁을 다룬 이 영상에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현재의 전쟁을 "미국 중심의 중동 질서 재편을 위한 트럼프 정부의 치밀하고 계획적인 전략"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튀르키예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알파고 시나에'(참고로 '알파고'는 진짜 그의 이름이다.) 기자는 단호하게 반박했다. 현지에서 바라보는 트럼프의 행동은 계산된 전략이 아니라 그저 그의 기분 탓이라고. 오히려 전문가들이 트럼프를 너무 논리적으로 해석하려 한다고 꼬집었다.
이 장면이 묘하게 불편했던 건, 그것이 비단 중동 이야기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현상을 해석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해석이 목적이 아니라 의미 부여 자체가 목적이 된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의 발언 한 마디, 표정 하나, 침묵 하나에도 그럴듯한 음모와 의도를 끼워 맞추는 작업. 시청자와 독자는 그 서사에 열광하고, 전문가(요즘 말로 '스피커')는 다시 더 자극적인 해석을 내놓는다. 이 구조는 점점 정교해지고, 점점 현실과 멀어진다.
문제는 이 해석의 대상이 정치인이든 평론가든 혹은 우리 주변의 누구든, 결국 살아 숨 쉬는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진보 진영에서 구설에 오른 유시민·조국·김어준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그 단적인 예다. 한때 "신경안정제"라 불리던 유시민은 어느새 "모사꾼"으로 소환된다. 그의 발언 하나하나가 현미경 아래 올라가고, 전문가들은 그 안에서 숨겨진 의도와 정치적 계산을 발굴해낸다.
그런데 잠깐, 우리는 언제부터 이들에게 그런 완벽함을 요구하게 됐을까.
이들이 오랫동안 보여준 통찰과 언변, 지적 성취가 오히려 독이 됐다. 사람들은 그 수준에 익숙해졌고, 그 수준이 당연한 기준이 됐다. 그리고 그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 실수, 오판, 감정적 반응 — 곧장 배신이나 위선으로 낙인찍힌다. 전문가(이들을 가끔 난 '존문가'라 부르고 싶다. ^^)들은 여기에 기름을 붓는다.
"이 발언의 이면에는 이런 의도가 있다"라고.
그러나 이것은 비판이 아니다. 이성의 탈을 쓴 감정적 인신공격이다.
모멸감을 느낀 사람은 더 날카로워진다. 이건 진보도 보수도 없고, 지식인도 대중도 없는 인간의 본성이다. 비판을 받은 당사자가 더 공격적으로 반박하고, 더 완고해지고, 더 방어적이 된다면 — 그건 그 사람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결과다.
트럼프의 꼬라지를 보라.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이라는 지위에도 불구하고, 그의 많은 행동은 전략이 아니라 감정에서 비롯된다. 계획이 아니라 즉흥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트윗 하나, 관세 발언 하나를 두고 "이 배후에는 이런 거대한 그림이 있다"고 분석한다. 물론 그 분석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냥 기분이 나빠서 한 말일 수도 있다.
들판의 메뚜기는 이유를 모른 채 뛴다. 앞의 것이 뛰니까, 소리가 나니까, 진동이 느껴지니까. 지금 우리의 여론 지형도 다르지 않다. 전문가가 의미를 부여하면, 유명 유튜버가 이를 증폭하고, 대중은 그 소음에 반응해 일제히 방향을 튼다.
이 구조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두 부류다. 하나는 과도한 해석의 표적이 된 사람들. 다른 하나는 그 해석을 진실로 믿고 소비한 우리 자신.
비판은 필요하다. 권력에 대한 감시는 필수다. 그러나 비판과 의미 과잉 부여는 다르고, 감시와 인신공격은 다르다. 진짜 날카로운 시선은 타인을 향한 분석보다 이 해석 구조 자체를 향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누군가의 실수에 거대한 음모를 덧씌우고 있지는 않은가. 그 사람이 그냥 틀렸거나, 지쳤거나, 감정적이었을 뿐인데.
때로는 메뚜기가 그냥 놀라서 뛴 것이다. 거기에 더 이상의 의미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