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이 짤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문과 vs 이과, 어느 쪽이 더 낫나? 커뮤니티 등에서 오랜 떡밥 중 하나입니다. 문과와 이과 중 하나를 선택해야했던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고민거리가 됐을 질문이었죠.
대학 졸업 후 결국 경제생활, 취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취업이 잘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은 제조업 중심의 국가이기 때문에, 상위권 대학의 문과보다는 지방거점국립대의 공대가 낫다! 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이유였죠. 그렇다면 질문을 한 번 바꿔보겠습니다.
둘 다 갈 수 있다면 SKY 인문을 갈 것인가 지방 국립대(혹은 그에 준하는 서울권) 공대를 갈 것인가?
분명 취업은 후자가 낫다는데, 이 질문에 대해서는 전자를 택할 사람이 많다고 생각되는데요. 실질적인 취업에서의 쓸모를 제외하고도, 한국에서는 학벌이라는 간판에 프리미엄을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분들이 동의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질문을 해봅시다. SKY 문과가 이과로 교환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고를까? 반대로도 질문이 가능하겠죠? 취업이 잘되는 이과 전공을 문과와 교환하려면, 얼마만큼의 학벌 프리미엄이 필요할까?
이 질문은 사실 그간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이과와 문과 선발 기준이 크게 달랐고, 그에 따라서 수능 등의 시험 과목도 구별됐기 때문입니다. 겹칠 일이 없었죠.
그러나 문/이과 구분이 없어진 올해의 수능에서는, 위에서 했던 질문이 진지하게 고민 대상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과에서 문과로 교차지원 할 수 있는 장벽이 완화되었거든요.
어떤 상황인가?
혹시 오르비라는 커뮤니티를 아시나요. '상위권 수험생'을 표방하는 학생들이 입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 모인 곳입니다. 이 곳을 최근 뜨겁게 달군 토픽이 있습니다. 바로 '교차지원'입니다.
사진=오르비 캡처
교차지원을 주로 말하는 사람은 중상위권 이과입니다. 이과로 중상위권 공대 쓸 바에는, 학교 간판 챙기려 문과로 상위권 대학 한 번 노려보겠다는 것인데요.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이게 가능하게 된 이유는 올해부터 수능에서 문/이과 수학이 통합-선택형으로 개편되었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수능 수학은 가/나형을 나눠서 문/이과를 구분하였습니다.(가형이 이과) 그런데 올해부터 선택형 수능으로 통합되면서, 문/이과를 구분을 완화하겠다고 나섰어요. 현재 수능 수학은 공통 과목 + 선택 과목으로 구성되는데요. 문/이과 구분 없이, 공통 과목은 똑같이 봅니다. 그 다음 이제 선택 과목을 '미적분', '기하', '확률과 통계' 셋 중 하나를 골라서 나누는데요. 기존의 문과 학생들은 '확률과 통계'를, 이과 학생들은 '미적분'이나 '기하'를 보도록 의도한 것이었습니다. 공대나 의대 등 특정 학과에서는 '미적분'과 '기하'를 필수로 지정해두기도 했고요.
사진=월간교육신문 유튜브
그런데 경영학, 경제학과 등 문과의 학과에서는 따로 필수로 지정한 과목이 없어요. 그러다보니까 교차지원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교차지원은 갑자기 가능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원래도 이과생의 지원을 따로 막지 않았거든요.
그렇다면 이전에는 왜 교차지원을 안했냐? 그 전에 한 가지 다른 질문을 해봅니다.
여러분은 고등학교 이과 vs 문과 공부 중 어느쪽이 더 어렵다고 생각하시나요? TMI지만 저는 문과로 수능을 봤음에도 2학년부터 이과 수학 공부를 따로 했었는데요.(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시는 분께는 그냥 2학년 때 이과였다고 말하곤 합니다.) 제 이과 수학 실력은 엄밀히 2등급 정도로 그렇게 최상위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실력으로도 문과 수학은 상대적으로 꽤 쉽게 느껴졌습니다. 커뮤니티에서는 가형 4등급이 나형 1등급에 준한다고 하는데요. 나형 100점이 이과에서는 2~3등급에 해당하는 것에는 저도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그간 가형 4등급 = 문과 1등급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사진=커뮤니티 캡처
이전에는 이과가 문과로 교차지원을 하면, 이과를 선택한 이득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가형에서 힘들게 얻은 점수로 나형에서 비교적 쉽게 얻은 점수와 경쟁하는 것이 너무 비효율적이었거든요. 나형 100점과 가형 100점을 거의 비슷하게 두고 평가했기 때문에, 이과 상위권들은 문과나 상경계는 안 쓰는 것이 이득이었습니다. 차라리 같은 학교 공대를 쓰는게 나은 선택이었죠. 이과는 양 많고 어렵지만 컷이 상대적으로 낮아 입시는 좀 널널했고, 문과는 쉽지만 적게 틀려야하는 좁은 문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이제 선택형-문/이과 통합형 수능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문/이과는 원래 수학 가/나를 나눠서 따로 시험보고 점수를 산출했고, 입시도 따로 치렀는데요. 이제는 선택형이 되어, 따로 필수과목의 지정이 없는 학과에서는 같이 맞붙게 된 셈입니다.
이과생과 문과생의 수학 실력 차이가 큰데, 같이 맞붙으려면 기준이 필요하죠. 그래서 문/이과 통합 시스템에서 기존 이과생이 불만이 없으려면, 이과들이 선택하는 과목에 더 가점을 주어야 합리적입니다. 그래서 평가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을 씁니다. <선택과목의 수험생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으면, 가점을 부여>합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기존 이과생들이 주로 보는 '미적분' 과목 같은 경우에는 수학 잘하는 경쟁자들이 많으니까 같은 원점수라도 표준점수를 좀 더 높게 쳐주고, 기존 문과생이 보는 '확률과 통계' 과목은 경쟁자들의 실력이 다소 떨어지니, 같은 원점수라도 상대적으로 표준점수를 낮게 준다는 것이죠. 정시는 수험생의 상대적인 분포를 기준으로 한 표준점수를 기준으로 진행되므로, 가점이 높아지면 '미적분' 선택자가 '확률과 통계' 선택자보다 더 유리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적분'의 난이도가 높고 범위가 많으며 경쟁자들도 잘하기 때문에, 그 가점 받으려고 적성에도 안 맞는 미적분을 꾸역꾸역 해야하는 부담이 있죠.
2022학년도 수능 등급컷, 같은 원점수면 미적분이 표준점수가 높다. 사진=ebsi
그런데 막상 까놓고 보니, 학생들이 '확률과 통계'를 많이 안 고릅니다. 기존의 잘하는 문과생들도 '확률과 통계'를 피하고, '미적분'을 봐서 가점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분명 이과로 분류되어 경쟁도 빡세지만, '확률과 통계'에 남아서 가점 손해보는 것보다 이득이라는 계산이 있었던 셈이죠. 그렇게 해서 '미적분' 즉 이과 수학을 선택한 사람들은 역대급으로 몰리게 됩니다.
기사=베리타스 알파
학벌 일단 따두고, 반수하거나 복수전공
그럼 이제 기존의 이과생 입장에서 생각해봅시다. 기존의 이과생이 노리던 학과는 의/치대나 이공계 등 '미적분'과 '과학탐구'를 필수로 지정해뒀습니다.
그러다가 올해는 기존 문과 상위권이 대거 미적분으로 빠지고,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숫자 자체가 적어졌습니다. '상대적으로 쉽지만 적게 틀려야하는 좁은 문' 자체를 선택한 사람이 적다는 건데요. 그러니 자연스레 '미적분'을 본 이과생들이 높은 가점을 바탕으로 문과로 교차지원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히려 '확률과 통계'를 선택해서 문과의 전통(?) 루트를 탄 사람들은 경쟁자가 엄청 늘게 된 상황입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게시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진= 오르비 캡처
교차지원 이과생의 루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1)문과의 간판은 따놓되, 학과는 가기 싫으니 반수한다.
2)가서 이과 전공 복수전공 하면 된다.
제가 꼬여서 그런지 둘 다 살짝 불편하지만, 2는 진짜 문제인데요. 왜냐면 원래였으면 중상위권 공대로 갔을 학생이 우회하는 방식을 이용해서 상위권 대학의 공대를 가게 된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공정성 논란이 일어날 수도 있겠죠?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문이과 통합 수능: 수험생의 선호 편중으로 인한 선택 과목 간의 표준점수 차이 발생
2) 학생들이 전공보다는 학벌에 대한 선호가 여전함
3) (문/이과 폐지로 융합형 인재를 받는다는 명목 등등 으로) 교차지원에 대한 기준이 완화된 대학
4) 통섭형 인재를 기르겠다는 취지로 완화되었던 복수전공(전과) 장벽
각각 개별로 놓고 보면 다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럴듯한 현상들인데, 이것들이 엮이고 엮여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기존에는 가/나형을 철저히 나눠서 보호무역(?)이 작동했는데, 시장이 개방되면서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이러한 현상에 대한 대처가 어려운 이유는, 따지다 보면 관점의 충돌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 전공 전문성이 중요한 시대다. 고학벌이어도 취업 안되는 전공이면 너무 리스크가 크다. vs 학벌은 그래도 중요하다. 교육 인프라, 주변의 지인과 인맥 등을 무시 못한다.
- 통섭, 융합형 인재를 길러야 하며, 수험생의 자율적 선택을 유도해야 한다. vs 학과별로 최소한의 기준은 필요하다. 물리1, 화학1도 안 듣고 이공계? 외국어에 전혀 관심 없는데 어문학과?
- 문/이과로 구분해서 나누는 것이 효율적이다 vs 문/이과로 나누기에는 너무 애매한 대학의 전공들 존재한다 Ex) 경제학과나 응용통계학과 등은 사실 문과 아님. 산림학과나 기계공학과처럼 이과 전공들 사이에서도 편차가 너무 큼.
-복수 전공 제도 활성화로 대학생의 선택권을 높이고 열린 사고를 길러줘야 한다. vs 그렇게 하면 선택이 (취업 잘 되는 전공 등) 한 쪽으로 쏠릴 수 있고, 오히려 학습 인프라가 더 악화될 수 있으니 조절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과학 및 수학이 중요하고 그에 맞는 선발 기준을 더 디벨롭 해야한다. 기존의 문과생들은 수학도 못하면서 꿀을 빨았던 것이고, 이제야 정상화 된 것이다. vs 아니다. 반드시 수학 위주의 학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Ex. 사학과, 철학과), 그리고 '수학'에 큰 중요성을 부여하는 현행 평가 기준이 정말 합리적인가? 다른 요소가 중요할 수도 있는데? 이과 수학 3등급이 문과 1등급보다 현행 평가 기준에서는 공부를 잘한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외의 능력은 그럼 무시되는 것 아닌가?
이 모든 관점의 차이가 얽혀서 제도가 변하고, 변화에 따르는 과도기가 있기 때문에 수험생 입장에서도 대학 입장에서도, 더 나아가 인재를 판단하는 사회 입장에서도 기준을 세우기 어렵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봐도 참 어렵네요.
제 개인의 생각은 무엇이냐고요? 이것이야말로 진짜 주관적이고 근거도 확실치 않은데요...ㅎㅎ. 아무래도 한국 상황을 보면 수학과 영어는 필수인 것 같습니다. 과거 '문과'로 분류되던 학과들에서도 앞으로는 수학 실력이 더욱 중요해지지 않을까, 생각하긴 해요.
저같은 경우는(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한 술 더 떠서, 아예 수능 수학 범위를 지금보다 1.5배 이상 늘려야하지 않나, 생각은 하는데요. 솔직히 현재는 범위도 너무 좁고 내용도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해서 물리2 필수 과목 지정, 경제학 필수과목 지정, 제2외국어 선택에 컴퓨터 언어 추가를 강력 주장합니다ㅋㅋ. 사실...웃자고 하는 얘기 치고는 좀 진지합니다ㅋㅋㅋ
추가로 교차지원 건에 대해서는 학과별로 '미적분' 응시자, '확률과 통계' 응시자 티오를 따로 비율로 정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 마무리 하자면...정책이 자꾸 바뀌고, 교육 제도가 바뀌니까 수험생들이 혼란을 겪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치인과 관료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했을 때, 10대 및 수험생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학업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사회적 인식인 것 같습니다. 시대가 분명히 변하고 있고, 교육 제도나 정책도 그에 맞춰서 변해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죠. 그런데 그 제도와 정책이 수험생에게 혼란이 되는 이유는, 변화하는 제도와 정책 속에서도 결국 '공부해서 좋은 결과 내야 한다'고 말하는 기성 세대들의 압박 때문이 아닐까요? 성적이 좋으면 얻을 수 있는 것들에 지나치게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10대들이 그것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네요.
*이 글은 학벌주의를 조장하려는 목적이 아니며, 현상에 대한 주관적 분석을 담은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