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_피곤했던 건 헤모글로빈이었다

by BONNIE C


“이 주인, 달리겠다고?”


심장은 어이없다는 듯 소리쳤다. 그는 피의 기차를 모는 기관 차장이었다.


그 소리에 놀라 헤모글로빈 노동자들이 웅성웅성 모여들었다.


“8.2명이서 일을 하라니, 이건 말도 안 돼!”


혈관 기차 칸에서 서로를 부축하며 외쳤다.


“우린 최소 12명은 돼야 합니다. 산소들이 매일 밀려요. 발끝까지 못 갑니다.”


산소들은 한숨을 쉬었다. “오늘도 내리지 못하겠네.” 그들이 닿지 못한 근육들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상하지. 왜 이렇게 숨이 차지?”


나는 몰랐다. 내 안의 헤모글로빈 노동자들이 이미 파업 중이었다는 걸.



나는 게으르지 않았다. 누가 봐도 일 중독자였다. 밤 11시까지 수업을 했고, 출근 전에는 근력운동을 했다. 산에도 올랐다.


그런데 달리기만은 도저히 힘들었다. 트레이너가 버피 점프 박스라도 들고 오면 겁부터 났다. 심장이 두근대는 정도가 아니라, 안쪽 어딘가가 찢어질 듯 아려왔다.


쉴 새 없이 날아오는 테니스공을 받아내다가 “잠깐만요!” 외쳤던 기억이 덮쳤다. 다 게워 내서야 진정했던 어느 여름날의 트라우마가 늘 따라다녔다.


사정도 모른 채, 헉헉대는 나 자신에게 “도대체 왜?”라며 채근할 뿐이었다.




걷다 보니 달리고 싶어졌다. 마음과 달리, 매번 그 앞에서 숨이 막혔다.


달리기가 ’체질에 안 맞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선택의 문제’라고 합리화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 피검사 결과가 나왔다.


헤모글로빈 8.2


소위 나는 빈혈 환자였다. 그 순간 모든 의문이 풀렸다. 내 몸의 노동자들이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었다니.


잽싸게 담당 의사를 찾아갔고, 그녀는 철분 주사를 처방했다.


“목표는 13입니다.”


두 달 후, 다시 찾아가 10.3이라는 결과표를 받고 의사와 나는 의기투합했다.




이제 숨이 차오르면 중얼거린다.


“조금만 참아.”


심장이 대꾸한다.


“주인님. 이제 일 좀 할 만하네요”


그 말에 산소들이 웃는다.


“오늘은 발끝까지 가 봅시다.”


나는 그제야 안다.


게으른 게 아니라, 피곤했던 건 헤모글로빈이었다.



이전 12화에필로그_11개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