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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저녁
귀가 따가울 만큼 추워서 호다닥 뛰어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현관 앞에서부터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났다.
예전에 직장을 다닐 때 남편은 집에서 일하는 날이면
내 퇴근 시간에 맞춰서 간단한 저녁을 만들어줬었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이 확 밀려왔다.
문을 여니 남편이 완성된 요리를 식탁으로 옮기고 있었다.
남편은 오늘 특별히 최고급호텔 셰프에게 부탁해서 저녁식사를 준비했다며
너스레를 떨면서 수저를 세팅했다.
밥에 국에 반찬에 이것저것 준비해서 먹는 나와 달리
남편의 요리 스타일은 간단 깔끔한 한 끼다.
재료들을 하나로 합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 중에서 제일 잘하는 건 주먹밥인데, 그때 그때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한 입을 만든다.
냉장고에 오리고기가 있다면 오리고기를 구워서 주먹밥 위에 얹고 소스를 한 방울 찍어준다.
멸치볶음이 있다면 밥 안에 멸치볶음을 숨겨서 동그랗게 만들어준다.
오늘은 불고기가 있어서 불고기를 굽고 밥 안에 불고기를 넣고 그 위에 토핑처럼 또 올렸다.
다른 반찬 또 꺼내기 번거로우니 할머니표 무말랭이도 미리 주먹밥 위에 하나씩 얹어줬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옷도 안 갈아입은 채로 마주 앉아서
고맙다고 말하며 한입을 왕 먹었다.
크니까 베어물면서 먹으라고 했는데 이런 주먹밥은 한 입 가득 차게 넣는 게 맛있다.
불고기의 짭조롬하고 단 맛과 무말랭이의 매콤함은 같이 먹기에 최고의 궁합이었다.
오늘 공부하던 카페 옆에는 에그타르트를 파는 곳이 있었는데
남편이 에그타르트를 좋아한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오는 길에 소소하게 사왔다.
주먹밥을 5분 컷으로 끝내고 에그타르트를 꺼냈다.
맛있냐고 물어보니 내가 사와서 더 맛있다고 말해주는 게 고마워서
더 맛있는 거 많이 사올 걸 싶어 아쉬웠다.
(나는 원래 뭘 집에 사갖고 들어오는 타입이 아니다. 이 이야기도 다음에 풀어보는 걸로!)
다 먹고는 침대에 누워 딩굴거리면서 영화 한 편을 보고
요즘 매일 하고 있는 족욕을 했다.
겨우 15분 정도 하는 데도 몸이 따뜻해지면서 잠이 잘 온다.
혈액순환이 안 되거나 잠이 잘 안 온다면 아주 추천한다.
집에서 해야할 일이 많아지고, 남편과 함께 붙어있는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잊고 있었던 나의 루틴.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
그것들을 다시 상기시키고 있는 요즘.
공부하러 떠나는 혼자만의 외출이 나를 일깨워주고 있다.
그 하루의 끝에는 나를 기다리고,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