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도 잘 먹겠습니다

by 자연




조기입학을해서흔히들말하는칼졸업과칼취업을했다. 인생에 그렇게 공백이 없었다, 저 문장처럼.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직장에서 막내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나와 같은 해에 발령 받은 동기와 몇 년을 나란히 막내역할을 했다. 이것저것 알려주는 사람들이 많은 울타리 안에서 영영 막내일 것 처럼 세월을 흘려 보냈다.



그리고 작년, 처음 만난 어느 여자애가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에, 그 불문율이 깨지고야 말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공공년생…….”

그 다음 말은 기억이 잘 안 난다. 나보다 어린 사람이 있다고?



이미 취업도 했고, 결혼은 아직 간절하지 않고, 다시 학생으로 살고 싶다고 결심에 다짐에 선언까지 했으면서, 나는 내가 가진 숫자에 무슨 충격을 그리도 받았던 걸까. 아마도 나만의 문제이거나 내 연약한 내면의 문제는 아니리라 믿는다. 언제부턴가 유행처럼 번지던 '반오십'이라는 신조어라든가, 아니면 '서른'을 무슨 케르베로스의 개가 있는 저승의 문턱처럼 여기는 사람들이라든가, 혹은 나처럼 '숫자에 약하지만 공포에 잘 질리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사회 현상일 것이다.






어른이 된 지 한참 되셨으니까 키오스크 정도는 쓸 줄 아셔야죠. 굳게 닫힌 창구 대신 새로 생긴 버스표 발권 키오스크 옆에 서서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다 신물이 나버린 점원의 표정에서 읽히는 문장이었다. 할아버지가 단어를 읽을 새도 없이, 녹음된 자동 안내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버튼을 툭툭 누른 점원은 뚝딱, 십초도 안 되어 표를 쥐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표를 받고서는 주춤주춤하며 떠나셨다. 그 모습이 안쓰럽기야 했지만 사실은 내 앞에 진을 치고 선 할아버지가 답답해지기 시작했던 참이었다.



그러니까, 그랬는데.



운동이 끝나고 딱 여섯시에 들린 맥도날드에는 슬슬 사람이 밀려들기 시작했고, 나는 처음 써 보는 맥도날드 키오스크 앞에서 사투 중이었다. 뒤에 있는 줄이 얼마난지 돌아보기는 무섭지만 대충 뒤통수에도 눈이 있는 선생님만의 능력을 발휘해 보자면 그 숫자가 꽤나 대단할 것임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난 세트 안 먹고 단품만 먹고 싶다고. 아니, 나 이런 거 추가 안 하고 싶다고!

판촉 능력이 지대한 키오스크는 자꾸 내 눈 앞에 무언가를 들이밀었고 급한 마음에 장바구니가 과부하되었다.겨우 제대로 주문한 햄버거 하나를 도망치듯 들고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이 마치 영겁 같았다. 뒤에 있던 사람들은 분명 이 기다림에 불평했을 것이다. 그 때 내가 할아버지에게 가졌던 마음처럼.





숫자와 성취의 불균형이 주는 무서운 시사점은 이제 더 이상 누군가가 '기다려주는' 나이는 지났다는 것이다. 받아쓰기를 느리게 해도 기다려주던 선생님도 이제는 없고, 익숙치 않은 직장 내 메신저로 겨우 보낸 쪽지를 기다려주던 선배님도 이제는 없고. 이 나이쯤 됐으니 합격통지서든 집 문서든 혼인신고서든 성과를 내놓으라고 재촉하고. 키오스크가 세상에 나온지 몇년이 지났으니 사용법 따위를 익힐 시간은 허용하지 않고.


어른들은 쉽게 인내심이 바닥난다. 모두가 똑같은 속도를 가질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떡국 속에 망각의 약이라도 타서 먹고 있는건지, 자꾸 그 중요한 걸 까먹는다. 그래도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주길 바라는 순간은 꼭 오고야 만다. '취업은 했을 나이'와 동의어쯤 되는 '서른'은 적성을 찾는 동안 기다림이 목마르다. '세상살이 다 아는 나이'와 동의어쯤 되는 '노인'은 신문물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각자의 느릿함을 이해해준다면, 기다림의 미학을 아는 날이 온다면, 그 날은 나이가 맛있어질지도 모르겠다.





여기 ㅇㅇ보험인데요, 좋은 상품 있어서 안내 드리려고요. 혹시 집에 어른 계시나요?

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러니까, 이런 전화에 대응할 수 있는 어른이 될때까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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