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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뜨고 지듯, 나의 28년

28년차 자가면역질환자의 생활기

by 나바드

별이 뜨고 지듯, 나의 28년


별이 뜨고 지는 일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것을 기뻐하는 이도, 슬퍼하는 이도 없는 그저 그런 하루. 어쩌면 나도 그렇게, 조용히 90년대 초 어느 날 태어났다.


기억이 시작된 1997년, 나는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향했고, 그 해를 병원에서 보냈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이후 평범한 삶을 꿈꿀 수조차 없다는 것을.


퇴원 후에도 내 일상은 평범하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평범한 삶이야말로 가장 이루기 힘든 꿈같은 것이라는 걸.


희귀한 케이스, 운이 좋다고?


현재 다니고 있는 대학병원의 담당 교수는 내게 종종 이렇게 말한다.


“환자분은 정말 보기 드문 케이스예요. 보통 유아기 때 발병하면 성인이 될 즈음에는 완치가 되는데, 환자분처럼 28년간 투병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하지만 정말 불행스럽게도,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운이 좋다니?

교수님은 내게 설명한다.


“저는 수십 년 동안 의사 생활을 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병을 앓으면서도 신체 기능을 일반인과 다름없이 유지하고 있는 환자는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묻는다.

“그럼 완치될 수 있을까요?”

“아니요. 아직은 어렵습니다.”


왜 수십 년째 재발하는 건지,

무엇이 원인인지 물어봐도 답은 같다.


“자가면역질환 환자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변수입니다. 몸의 균형이 깨지면 재발하는데, 정확한 원인을 찾아낸다면 그건 노벨 의학상을 받을 만큼 위대한 발견이겠죠.”


“지금도 가장 강한 치료법인 표적 항암 치료를 받고 있지만, 이마저도 내성이 생기면 더 이상 쓸 수 있는 약이 없습니다.”


“하지만 환자분은 늘 잘 버텨왔잖아요.

앞으로도 그렇게 견디면 됩니다.”


완치될 거란 말은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신약이 개발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투석이나 이식이 필요한 날이 올지도 모르죠. 현재까지는 다행스럽게도 잘 유지하고 있지만, 미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저 “지금처럼 잘 견디세요.”

그것이 내가 매번 듣는, 영양가 없는 답변이었다.


잠드는 것이 두려운 이유


오랜 시간 약을 복용해 온 탓에, 나는 다양한 부작용을 경험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부정맥과 수면장애는 내 삶을 가장 깊게 파고든다.


정신과 상담 중에 나는 말했다.

“제 심장 소리가 직접 들려요.

그리고 잠드는 게 너무 무서워요.”


의사는 약물 부작용으로 인해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약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잠자는 것이 왜 무서운지, 그 이유를 더 알고 싶습니다.”라고 물었다.


잠들면 사라질까 봐


나는 1997년부터 아팠다.

그때부터 중학교 입학 전까지,

나는 특이한 수면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애착 인형을 안고 자는 아이들처럼,

나도 뭔가를 꼭 끌어안아야만 잠들 수 있었다.


그것은 엄마였다.


나는 병원의 좁은 병상에서 엄마와 함께 잤다.

그리고 늘 무서웠다.


“엄마가 날 두고 도망갈까 봐.”

“어느 날, 나만 병실에 덩그러니 남겨질까 봐.”


그래서 나는 늘 엄마의 목을 끌어안고 잠들었다.

그 습관은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도 유지되었다.


상담을 통해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그것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내가 버려질까 두려웠던 기억의 흔적이었다.


아침이 오는 게 싫었다


또 하나, 나는 아침이 오는 것이 끔찍하게 싫었다.


눈을 뜨고 나면, 부모님은 가장 먼저 내 다리를 만져보고 얼굴을 확인했다. 왜냐하면 나는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변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나를 바라보는 표정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그날 우리 집의 분위기는 오롯이 내 몸 상태에 따라 바뀌었다. 그러니 눈을 뜨는 것이 무서웠다.


“오늘 아침도 나는 변해 있을까?”

“부모님은 또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내가 변한 모습을 마주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나는 잠드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 되었다.


부모의 사랑, 그리고 남아 있는 상처


부모님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부모가 없는 아이는 고아,

남편을 잃은 여자는 과부,

아내를 잃은 남자는 홀아비라고 부른다.


그런데, 자식을 잃은 부모를 지칭하는 단어는 없다.

그만큼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부모님의 한숨과 지친 표정이,

아픈 자식을 위해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는 절망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하지만 어린 나는 그런 시선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잠드는 것이 두렵다.


그날 아침, 또 변해 있을까 봐.

그 변화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표정을 마주할까 봐.


28년을 살아오며


나는 28년째 희귀한 케이스로 살아가고 있다.

완치되지 않은 채, 그저 잘 버텨내는 삶.


이제는 질문도 하지 않는다.

“완치될까요?”

“언제쯤 이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대신, 나는 살아 있는 오늘을 버티기로 한다.

별이 뜨고 지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살아가기로.


지금도 나는 잠드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내일도 다시 눈을 뜰 것이다.


그렇게, 나는 또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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