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의 창고
병실에서 쓴 어느 밤의 시
나는 나를 위로할 줄 몰랐다.
아무도 없는 새벽 병실의 창문 너머
가느다란 불빛 하나가 지워지듯 스러질 때에도
나는 나를 한 번도 토닥인 적 없었다.
스물여덟 해,
침대 위에서 자라난 시간을 나는 낱낱이 기억한다.
수십 번의 재발, 열여섯 번의 항암, 끝내 완치라는 단어는, 어느 문장에도 오지 않았다.
문득, 나는 아픈 것이 죄인 줄 알았다.
버티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있는 줄 알았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말했다.
“겉으론 멀쩡하네.”
그 말 뒤에 숨은 나의 이틀 치 피로를,
서른 잔 약물 위에 쌓인 부작용을,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늘 준비했다. 내일이 끝일 수도 있다는 각오를.
그러나 정작, 가장 아팠던 건
내일이 계속 온다는 사실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 나는 울었다.
그날을 맞이하지 못할까 두려웠던 날들이
눈물로 쏟아졌다.
중학교 졸업식 때도,
고등학교 입학 날도,
대학교 합격자 발표도.
나는 모두 울었다. 기적이라는 이름은
내게 너무 조용히 찾아왔기에
눈물이 먼저 그것을 알아챘다.
나는, 사람이 무너지는 소리를 안다.
그 소리는 뼈보다 더 안쪽에서
부서지는 마음의 소리다.
그래서 나는 지금, 아무에게도 ‘힘내’라는 말을
감히 하지 못한다.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므로.
내가 아팠던 만큼
부모는 늙어갔다.
아버지는 평생을
비상근무의 이름으로 내 삶을 떠받쳤고,
어머니는 내 얼굴에 스치는 체온 하나로
계절을 바꿨다.
나는 그 사랑 안에서 자랐다.
부끄러움과 감사가 뒤섞인 채로.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여전히 자가면역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혀 있다.
문이 없는 방에서, 하루를 산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새벽을 사랑한다.
숨이 아픈 날도, 손끝이 떨리는 날도,
나는 여전히 이 생의 기록자이고 싶다.
삶이 시들면,
나는 시를 피운다.
슬픔이 번지면,
한 줄로 눌러 적는다.
“나는 나를 위로할 줄 몰랐지만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잠시, 자기 삶을 이해한다면
그것으로 괜찮다.”
살아 있는 동안
나는 계속 쓸 것이다.
병실의 새벽도,
약물의 시간도,
다시는 오지 않을 봄의 햇살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도
나는 기억할 것이다.
이 모든 건, 한 사람의 고요하고 무거운 생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