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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원래 놀리고, 진심은 타이레놀처럼 늦게 온다.

습작의 창고

by 나바드
2015년 여름 그 어느 날, 2050년에 다시 또 올리겠습니다.


2000년 어느 3월,
꽃잎이 번지듯 그들이 내 삶에 들어왔다.


나는 그때부터 ‘봄’이라는 계절을
조금은 믿게 되었다.


창밖의 벚꽃은 아직도 남의 것이지만
그들은, 이상하게 내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친구란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그는 친구가 없었던 거다. 우리가 하나의 영혼이라면 그건 해리성 정체감 장애다. 우리는 늘 싸운다.
만나면 싸운다. 안 싸우면 이상해서 서로 눈치를 본다.


토마스 풀러는 “멀리서 나를 좋게 말하는 사람”이
진짜 친구라 했지만, 우리는 화장실만 다녀와도
서로를 소재 삼는다. 우리의 농담은 유통기한이 없고, 기억은 필요 없고, 25년 전 일도 오늘처럼 싱싱하다. 그럼에도 너희는 유일하게
내 앞에서 내 과거를 까면서도, 내 오늘을 챙기고,

내 미래를 웃으며 기다려준 사람들이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팔에 한 줄, 가슴에 한 줄,
내 인생에서 만난 가장 독한 이별이자,
가장 큰 행운들”이라는 대사가 있었다.


그때부터 난, 그 두 줄의 완장 대신
두 줄의 웃음을 갖게 되었다.

언젠가 내가 사라져도,
놀리지 마라. 이번엔 진짜 잠든 거라고
아주 오래 자는 거라고.


그냥 그렇게 말해줘.
그리고 제발, 내 흑역사는 무덤까지 같이 가져가라.

친구란 원래 놀리고,
진심은 늘 타이레놀처럼 늦게 온다.
그게 우리다.


2025년 어느 4월,
꽃잎은 또 떨어지고, 나는 그 위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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