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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이라는 이름의 뒷모습

습작의 창고

by 나바드
출처는 없습니다. 제 사진입니다. 믓쟁이 어르신


나무 바닥 위에 가지런히 놓인 청바지들 사이로, 한 사람이 뒷모습을 보이며 천천히 걸어 나간다. 매장은 조용했고, 빛은 온화했으며, 청바지들은 마치 그들만의 질서를 지닌 듯 묵묵히 걸려 있었다. 이 공간은 단순한 옷가게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어딘가 시계가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간은 흐르는데, 사람들은 이 안에서 각자의 과거와 미래를 고르고 입는 것 같았다.


청바지란 그런 옷이다. 한때 광산에서 일하던 이들의 거친 삶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가장 일상적인 옷으로 자리 잡았다. 찢겨도 멋스럽고, 바래도 멋지다. 그건 마치 우리의 삶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새긴다. 누군가는 이런 옷을 힙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힙함이란 결국, 고유함을 지키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누군가가 입은 헐렁한 청바지, 돌돌 말아 올린 바짓단, 색이 바랜 캔버스 백팩, 튀는 듯 그러나 이상하게 조화로운 신발 한 켤레. 그 모든 디테일 속엔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는 무언의 언어가 담겨 있다.


그의 뒷모습은 말이 없지만 말이 많았다. 어디론가 향하는 걸음에서 자유가 느껴졌고, 주눅 들지 않은 태도에서 삶의 강단이 보였다. 청바지 매장을 걷고 있는 어떤 순간, 그는 단지 옷을 고르러 온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태도 하나를 걸치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서 있었다. 청바지 하나를 고르는 일이, 단지 스타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날의 나를 고르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우리가 매일 입는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늘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입고, 벗고, 다시 걸어 나간다. 누군가에게는 힙하게, 누군가에게는 조용하게. 그러나 결국, 자신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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