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의 창고
어느 사흘의 기록
10시간의 긴 피아노 소리다. 이걸로 사흘을 버텼다. 혹시나 버텨야 하는 분이 있다면, 강력하게 추천한다.
나는 보통 일기를 쓰지 않는다. 굳이 특별한 날이면, 그날 만난 사람이나 장소 정도를 달력에 간단히 메모해 두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일기를 쓰고 싶다.
기록이라는 것은, 어쩌면 꼭 남겨야 할 순간에 아니라, 그냥 남기고 싶은 순간에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근 2주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저번 주 주말에는 한 달 전부터 예정돼 있던 일이 있었는데,
역시 습관이라는 건 무섭다. 미리 하지 않는 버릇은 여전했고,
결국 일이 코앞에 닥쳐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래도 올해는 뭔가 유난히 좋은 기운이 흐른다.
과정을 누가 본 것도 아니고, 결국 결과는 좋았다.
그걸로 됐다.
그리고 이번 주 목요일, 또 다른 일정이 급작스럽게 생겼다. 10일 전쯤 정해졌지만,
앞선 주말 일정 때문에 제대로 손도 못 댔다. 주말 일정을 마치고 나니 몸살 기운까지 겹쳐 이틀을 퍼져 있었다. 내게 남은 건, 고작 나흘.
처음엔 고민했다. '다음으로 미룰까? 물리적으로 시간은 너무 부족해. 무리야.'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 한다면 오히려 성취감이 생기지 않을까?’ ‘나태의 늪에서 벗어날 기회일지도 몰라.’
라는 묘한 충동이 들었다.
사실상 나흘 중 하루는 이미 병원도 다녀오고, 평소처럼 러닝도 하고,
일상에 묻혀버렸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남은 시간은 사흘. 당일은 준비할 수 없으니, 딱 72시간.
몸이 버텨주기를 바라며 쿠팡에서 에너지 드링크 24캔을 주문했다.
나는 평소에 그런 걸 마시지 않는다. 심장에 부정맥이 있어 카페인에 민감하다.
그래도 커피는 좋아하고, 이번만큼은 마셔야 했다.
그렇게 시작된 이틀간의 밤샘.
아침은 생략, 점심과 저녁은 바나나 한 개로 대체.
핫식스 하루 두 캔, 커피는 물처럼 들이켰다.
이틀을 꼬박 새우고 마침내, 일을 처리하러 나섰다.
당일 아침, 잠깐 망설였다.
‘가지 말까? 굳이? 시간만 낭비되는 건 아닐까.’
하지만 밤을 갈아 넣은 내 노력이 아까웠다.
무언가를 끝맺고, 집에 돌아가 마음 편히 잠들고 싶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운이 좋았다. 최근 글이 뜸했던 것도 사실 이런 일들 때문이었다.
이제는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몇 년째 놓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던 어떤 일들도
어젯밤에 정리했다. 미련 없이, 후회 없이.
마음이 홀가분하다.
이제 정말, 무엇이든 내가 원하고 선택하는 대로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이 기록을 남긴다.
이 사흘의 고비와 그 후의 안온함을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정말 목요일부터 오늘까지는 정신없이 잠만 잤습니다.
이제야 글을 씁니다. 다시.
여러분들에게 물어봤던. 영화들은 백색소음처럼 잘 틀어뒀습니다.
댓글 남겨주신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마음을차분하게 해서 집중을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