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민요 <Sally Garden>
최근 클럽 버닝썬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저는 음악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어요. 화려한 조명을 배경으로 중독성 있는 전자음악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곳. 젊은이들에게는 현실의 중압감과 무력감을 잊게 하는 삶의 탈출구임이 분명하지만 그곳에서 사용되는 음악이 오히려 비루한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됐어요. 클럽의 트랜스 음악은 물리적 존재로서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닌 자신을 잊게 하며 무아지경에 빠져들게 하는 명상적 효과가 있는 음악이죠. 그러나 그 음악에만 심취할 경우 동물적 욕망에 사로잡혀 영혼의 존재로서 자신의 본질을 망각하게 되요. 그래서 트랜스 음악을 듣고 난 후 뒤이어 명상음악을 들으며 깊은 호흡을 통해 달아오른 몸과 마음을 이완시킬 때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게 되죠. 또한 억압된 스트레스에서 빠져나와 홀가분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탐욕만을 부추기는 클럽의 빠른 음악은 좋은 음악일까요?
한편 이런 일도 있었어요. 필자가 몇 년 전, 성탄절을 앞두고 어느 가정집에서 열린 하우스콘서트에 참석했었는데 바이올리니스트와 기타리스트가 협연하는 연주회였어요. 한눈에 봐도 연주력이 뛰어나 보이는 두 사람이 연주를 시작하자 거실에 모인 20여 명의 관객들은 숨을 죽인 채 공연에 빠져들었어요. 첫 곡과 두 번째 곡이 클래식 특유의 행복한 기분을 불러일으켰기에 관객들은 오늘 음악회가 감동적인 무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다음 곡을 기다렸지요.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요? 세 번째 곡부터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곡들이 연주되는 거에요. 필자도 처음 듣는 난해한 곡이었는데 불규칙적인 리듬에 바이올린과 기타의 선율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곡이 연주되자 관객들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버렸어요. 두 사람의 음악적 호흡은 여전히 매끄러웠으나 관객들의 감정은 오히려 불편했고, 행복과 감동은커녕 연주회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어요. 다섯 번째 곡이 끝나자 바이올리니스트가 관객들이 표정이 얼음처럼 차가워진 것을 눈치챘는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어요. “연주자가 혼신의 힘으로 연주를 할 때는 관객들이 즐거운 표정을 지어주는 게 예의예요. 예의 끝까지 지켜주시고요. 계속 연주하겠습니다.” 그 말을 마치고 두 곡을 더 연주했는데 지루함을 넘어 짜증이 밀려들었어요.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는 연주회를 찾은 것이 후회되기도 했어요. 필자의 마음에서는 ‘콘서트를 찾은 관객들이 클래식 애호가가 아닌데, 좀 더 대중적이고 성탄절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따뜻한 곡을 연주해야지, 자신의 예술적 고귀함을 자랑하려면 공연장에서 연주를 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거칠게 항의하고 있었어요. 어렵고 난해한 곡을 연주해야만 훌륭한 연주자라는 인식을 가진듯한 두 연주자의 공연은 필자뿐만 아니라 그날 모인 관객들에게도 전혀 감동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았어요. 과연 그날,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지 못한 그 음악은 좋은 음악일까요?
그렇다면 좋은 음악은 무엇일까요? 좋은 음악이란 기분을 좋게 하는 음악을 말하죠.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행복과 기쁨, 환희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에요. 그 단계에서 더 깊이 감동하고 전율을 느낄 때 경이로움과 황홀함,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그런 음악이 아름다운 음악이죠. 특히 요즘 같이 좌절과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많을 때는 열정과 용기를 불러 모이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가슴을 깊이 울리면서 마음을 맑고 향기롭게 하는 음악, 영혼을 떨게 하는 음악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아일랜드 민요 ‘Sally Garden'을 들으며 따뜻한 봄날의 행복을 만끽해보길 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