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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섬광

오르락내리락 사라락

by 경계선

1.

잡았다 놓친 단어와 문장 사이에서 매일 씨름한다.

읽는 일과 쓰는 일이 살아가는 일의 일부여야 하지만,

때로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지치고.

때로는 읽는 것과 쓰는 것만 하고 싶고.


2.

머리 꼭대기에 해가 올라서면 하루가 절반보다 적게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르는 일보다 내려가는 일이 빠르듯이,

천천히 정오를 오르던 해는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내리막길을 뛰어간다.

작은 조각도 남김없이 끼워 맞추듯 하루를 빼곡히 보내고 나면

해는 사라지고 매캐한 도시의 공기와 아파트 도색작업 페인트 냄새가 나를 기다린다.


3.

시작부터 포슬포슬 내리던 비는 1000m 고지를 넘어서며 세찬 비바람으로 바뀌었다.

방수 재킷 안은 빗물과 땀으로 흥건했다.

구름이 봉우리에 걸려 넘어진 듯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산속의 구름을 마시고 뱉기를 반복했다.

몸에서 나온 물과 밖에서 맞이한 물이 같은 것이 되어 다시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단풍은 화려했고, 운무에 가려 나를 미치게 했다.

걷어낼 수 없는 베일은 환상적이다.

등산부터 하산까지의 모든 길의 비는 축복이었을지도 모른다.

설악산을 잊지 않게 하려는 축복.

욱신거리는 다리의 통증이 아스라이 사라지는 하루하루가

산이 내게서 다시 완전히 소실되는 것만 같다.

일박이일의 산행임에도 대청을 포기하고 내려온 것이,

물러설 때를 알고 물러서는 자의 용기인지, 그저 일상에 쫓긴 비겁한 자의 변명인지에 대해

건조해진 팔다리로 입씨름만 열나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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