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륜(天倫)

태어나 처음으로 맺는 인간관계

by navygrey

# 부모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그 순간부터 맺어지는 인간관계.

바로 다름 아닌 '부모'라는 존재.

좋든 싫든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인생은 부모와 인연을 맺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시작점이었던 첫 숨과 첫 울음부터를 기억하고 살기란 불가능하다.

눈을 떠 처음 마주한 세상, 그 공간이 병원인지 아닌지에 대한 인지조차 없으니

설령 사진으로 남아있어도 내 기억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는 세상이다.


심지어 영유아 시절 내리 약 몇 년 동안은 내가 부모로부터 어떻게 보호받고 예쁨 받았는지를 기억하기란 어렵다. 그렇게 몇 년간은 지나고 난 뒤에라야 비로소 유치원 또는 초등학교에 가게 될 즈음을 전후하여 순간순간 스냅샷 형태로의 기억 단편들만 조각조각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무의식에 가깝게 숨만 붙어있는 그 시점에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바로 '부모'이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세상'과 동일한 존재가 바로 '부모'이지 않은가.


지금의 나도 한 아이의 부모가 되었지만, 나에게 있어 부모는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나는 우리 아이에게 있어 어떠한 부모인가? 질문의 대상이 전혀 다르지만 나를 기준으로 했을 때의 답이 그리 다르지 않은 듯하다. 많은 생각을 해봤지만, 나의 부모는 한 마디로 '감사하면서도 가장 큰 서운함을 주는 존재'다. 내가 성인이 되어 결혼하여 이제껏 사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무탈하게 양육해 주셨음에, 그리고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고 곁에 있어주심에 참으로 감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녀인 나를 이해하고 공감해 주기보다 본인들을 우선하는 모습들에 있어 상처를 주는 존재라는 것. 내가 성인이 된 지도 사실 20년이 넘게 흘렀고, 가정을 이뤄 자녀를 낳아 기르는 입장까지 되었기에 이미 부모로부터 보호받을 시기가 훨씬 지났음을 잘 알지만... 최근 가장 힘들고 필요로 할 때 선을 긋고 각자의 삶이 존중되기를 바라는 모습에서 마음을 다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더 나아가 정작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부모인지를 생각해 보면... 부모로서의 의무만을 다할 뿐,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를 헤아려 공감해 주고 배려해주지 못하는 모습이 있어서일까? 흉보며 닮는다더니, 나도 내 자녀에게는 나의 부모와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아무리 부모-자식 관계일지라도 신뢰나 공감의 관계가 잘 쌓이지 않았다는 것은 자녀입장에서도 그 책임이 있다 할 것이고, 내가 부모로서 자녀에게 잘해주지 못하는 책임은 또 그 나름대로 내가 모자라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천륜이라 끊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인데 좋고 나쁨의 관계도 아니고, 아무런 관계가 아닌 것도 아니다. 서로 잘하면 얼마든지 좋아지는 관계, 그렇지 않으면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기도 하지만... 아무런 상관없는 관계가 될 수는 없는 관계.


이래서 부모는 유형으로 정의되는 관계가 아닌 그냥 '천륜'인가 보다.

하늘이 정해준 변할 수 없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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